밥 먹었어, 엄마
"언니. 지영이 카톡에 사진 다 지웠더라.
만나던 애랑 헤어진 걸까.
언니 안 들려? 내 얘기 듣고 있어?
언니 뭐라고?... 일단 알겠어
지하철 안이야 다시 전화할게"
지하철 안.
은우는 중년 여성이 통화하는 것을 들으며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도 늘 그랬다.
프로필을 바꾸면 어김없이 전화가 와서
"너, 여자 친구랑 헤어진 거야?"
다그치듯 묻곤 했다.
"내가 헤어지든 말든 엄마가 왜 그렇게 난리야.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돼?"
다 큰 자식의 연애사까지
알고 싶어 하는 엄마의 관심이
간섭처럼 느껴졌고,
그럴수록 짜증이 났다.
프로필 사진 하나 바꿨을 뿐인데,
"무슨 일 있니?"
피곤해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면
"무슨 일 있지?"
끝까지 물으셨다.
어릴 땐 그게 좋았다.
나만 바라봐주는 엄마가 있어
세상이 든든했다.
엄마는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성인이 되자
그 관심이 부담이 되었다.
"엄마는 내가 아직도 어린애인 줄 알아?
나도 이제 성인이라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엄마도 엄마 인생을 살아"
말을 하고 나서
너무 차가웠나 싶었다.
그리고 정말로
엄마에게서 연락이 끊겼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하던 엄마가
며칠째 아무 연락이 없다.
'내가 하지 말랬으니까...'
스스로를 달래 보았지만
점점 걱정이 밀려왔다.
'엄마, 진짜 화가 난 건가.....'
며칠 만에 퇴근길에 엄마 집으로 향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니
적막이 감돌았다.
이 시간에 어디를 갔나 생각하며
엄마 방문을 열었다.
책상 겸 화장대 위에 두꺼운 노트 한 권.
겉표지에는 '10년의 기록'이라고 적혀 있었다.
'언제부터 이런 걸 쓰셨지?'
은우는 무심코 첫 장을 펼쳤다.
연도별, 월별로
엄마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놓은 듯했다.
엄마의 기록인데 그냥 덮으려다
호기심에 넘겨본다.
2018년 5월 16일
은우가 기숙사로 떠난 날.
방문을 닫고 나니 생각보다 조용하다.
"엄마도 독립해야지"
네가 웃으며 말했던 게 자꾸 떠오른다.
그래.. 나도 독립해야지.
2025년 6월 16일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다.
대화가 통하는 여자친구를 만나 즐겁다고 했는데..
전화하면 귀찮아하겠지.
그래도… 안부는 묻고 싶다.
2025년 7월 17일
은우한테 전화했는데 또 안 받네.
다 컸다고 해도,
난 아직도 네 기분을
사진 하나만 봐도 알 것 같은데
그냥..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걸로 충분하다..
은우는 노트를 덮고
얼굴을 두 손에 묻었다.
아직도 자식에게서 독립하지 못하는 엄마가
답답하면서도
'이 세상에 엄마가 없다면 나는 어떨까'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두 번, 세 번..
"엄마."
"응, 은우야 밥 먹었어?"
"엄마...
엄마 어디야? 나 집에 왔는데"
엄마의 짧은 한마디.
"밥 먹었어?"가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인사처럼 느껴졌다.
엄마.
내가 사랑하는,
우리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