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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Jan 23. 2020

말 같은 말

회사를 다니던 때, 후배들과의 술자리를 끝내고 집 현관문을 닫을 때면 늘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오늘도 내가 말이 너무 많았네... 하면서 그 자리에서 내뱉었던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다시 곱씹고 후회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화장을 지웠다. 마음만은 많이 듣겠다고 다짐하고 자리에 앉아도 막상 취기가 오르고 이야기에 흥이 붙으면 조잘조잘 내 이야기를 풀어내느라 여념이 없는 내가 늘 거기에 있었다. 


'라떼는 말이야...'를 꼭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이 듦은 어쩔 수 없는 세대차이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고, 나 역시도 그 굴레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는 없는지라, 가급적이면 입을 무겁게 해야지 하면서도 애정이라는 핑계로 늘 내 입은 한없이 가볍게 나불거렸다. 한 개인이 유연하게 사고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세월이 주는 묵직함은 누구나 가지게 마련이다. 말이 잘 통한다 하더라도 나는 이제 후배들에게 연차가 꽤나 차이나는 '어른'일뿐이었고, 내가 그들에게 '해 줄 수'있는 일은 맛난 요리를 사주고 많이 들어주는 것, 그리고 적당한 때 자리를 떠주는 센스 정도가 전부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전,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특히나 퇴근 후 이어지는 술자리에서는 일과 관련한 이슈들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고, 그 당시의 나보다 한참 어른들이었던 그들은 늘 비슷한 말들로 마무리 지었다. '하면 된다.' 거나 '위기는 기회다.'라고. 술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시늉만 하면서 속으로 나는 딴생각을 했던 기억이다. 하면 늘기는 하지만 될지 안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며, 위기는 닥치기 이전에 피하는 게 현명하고 이미 닥친 위기는 빠져나오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 소모전일 뿐이지 않은가 라고.


타고난 삐딱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시기라 더욱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지금도 저 생각에는 큰 변화가 없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반감이 터져 나오는 지점이 하나 더 있다. 어느 조직이나 모임에서 누군가가 어떤 이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주체할 수 없는 오지랖 걱정이 앞선다. 결국에 자기 그릇만큼을 살다 가는 인생에서 누가 누구의 멘토가 된다는 것 또는 누군가를 롤모델로 정하고 살아보겠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위험한 일인 것 같아서.


부대끼며 존재해야 하는 사회생활에서 다만 내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아마 하지 않았던 시도를 해보거나 없었던 방법을 찾아내거나 하는 등의 아주 작은 변화의 물꼬를 트는 정도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다음은 다음 타자가 알아서 할 일일 뿐. 내 인생 나만 산다는 극단의 이기적인 마음도, 또는 내가 모두 바꿔보겠다는 잔다르크적 마음도 내가 먹기에는 역부족이다. 어쩌면 내 한계를 어느 정도는 알기에 다 이뤄내지 못함을 구구절절 술자리의 잔소리로 풀어내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정말 더 쌓일 연차밖에 남아있지 않은 내가 품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혹여라도 나중에 내가 하는 말이 조금 더 '말 같은 말'이었으면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려면 지금부터 말보다 행동하는 지성이 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것도 안다. 다만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의 거리가 가장 멀다는 것 또한 너무 잘 알기만 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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