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나 Dec 01. 2019

돌아왔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돌아왔다는 표현을 오는 내내 오래 생각했다. 당장에 머무는 곳이 먼 이국땅이니 집으로 돌아온 게 맞기는 한데, 나는 이전에 내가 살았던 곳으로 잠시 돌아갔었고 엄마와 아빠와 가족들이 머무는 곳으로 잠시 돌아갔었다. 그래서 지금도 집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극적으로 나지 않나 보다. 함께 사는 이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간 나누지 못한 근황을 이야기하다 보면 '아~내가 다시 돌아오긴 했구나.'싶은 생각이 번뜩 들기는 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손때 묻은 살림이 구석구석 자리한 집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불과 몇 달 전 이곳에서 나름 치열하게 버텼던 하루하루를 곱씹었다.


두 달여에 걸친 시간 동안 나는 또 조금 변했을 것이다. 비슷한 고충을 나누는 작은언니와, 중년에서 노년으로의 삶을 이어가는 부모님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여전히 살아남은 큰언니를 각각 마주하며 수많은 생각을 했고 그 끝에 나는 조금 변했다. 그들은 예전부터 지금껏 내 곁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시간을 두고 가까이에서 마주한 나의 가족들을 보며 한참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많은 것들을 발견했고 깨달았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이 다행이거나 행복한 것들만은 아니다. 조금은 씁쓸하고 안타까움도 있었고 그래서 더욱 애달파지는 마음도 생겼다.


그리고 세 딸이 사는 가지각색의 모양새를 마주한 엄마는 퍽이나 마음이 무거우셨는지 한참을 울었다. 감기 걸린 막내딸이 떠나기 이틀 전부터 떠날 날 입을 옷을 걱정하며 눈물을 훔쳤고, 그 눈물은 단지 입고 갈 옷 때문만이 아니었음을 나는 알았다. 각자의 침대에 누워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헤어짐이 아쉬워 둘은 울먹거리며 잠을 청했다. 그리고 나는 울면서 생각했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내 보호자에 이름을 올렸던 엄마는 이제 내가 보호자가 되어야 할 나이에 이르렀고, 슬프지만 나는 그 사실을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떠나기 전부터 이렇다 할 계획이나 거창한 목표 따위는 없었던 여행인지라 돌아와서 아쉽다거나 뿌듯하다는 등의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시간을 들여 누군가의 삶의 모양을 찬찬히 들여다본다는 것의 조금 다른 의미를 알았다. 내 인생 하나 살아내기도 버겁다는 핑계로 모른척했고, 어쩌면 모른척함으로써 한켠에 생기는 일말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싶은 욕심에 스스로만 바라보고 살아온 세월이 무척 길었다. 그리고 또 어느 시절엔가 내 삶이 조여 오고 팍팍해지는 때가 되면 예전에 그랬던 내가 고개를 빼꼼 내밀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관심 있게 바라보고 이해하며 포용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어떠한 관계든 굴러가게 마련이라는 이치를 알게 된 이상, 그게 내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는 해뒀다. 여전히 작지만 조금 더 큰 사람이 되고 싶은 나는 그 시작을 위한 준비운동 정도를 마친 기분이다. 그리고 바라건대 나의 이런 마음이 변하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