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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Dec 15. 2019

선물하는 마음

의례적이나 형식적으로 해야 하는 것 말고, 아무 날 아닌 날에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편하게 건넬 수 있는 선물을 좋아한다. 어떤 날에는 생각지 못한 커피 한 잔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벼르고 벼르지만 늘 벼르기만 하고는 사지 못했던 어떤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선물이라는 것은. 선물하기를 즐기는 이는 대부분 받는 것 또한 좋아한다. 주는 행위를 좋아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받을 때의 즐거움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특별한 날만 받는 선물 말고 그저 내가 생각나서 챙겨 온 선물 받기를 좋아하며, 선물을 고르기 위해 받는 사람의 취향을 고민하고 선택하는 그 과정 또한 내겐 즐거운 일들 중 하나이다.


언젠가는 선물 포장에 눈이 가서 아주 잠시 배웠던 적이 있다. 물건과 주는 이와 받는 사람의 모든 것이 잘 어울리는 포장지로 선물을 감싸는 그 행위 자체가 참 좋았다. 하지만 그저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선물을 할 기회가 잘 없기도 하거니와, 사실 있다고 해도 온라인으로 전해지는 상품권 등이 보편화된 이상 선물이나 포장이 갖는 고유한 의미는 많이 사라진 게 사실이다. 나는 그 사실이 못내 아쉽다. 선물은 꼭 무슨 날이 아니어도 그저 주는데 의미가 큰 법인데... 한편으론 살면서 그런 의미까지 찾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는 것도 이해는 간다.


태어나서 만난 사람 중 가장 물욕이 적은 남편이 얼마 전 연구에 필요한 컴퓨터를 한 대 주문했다. 만만찮은 비용의 전부는 아니지만 일조를 했다는 생각 때문인지 마치 내가 선물이라도 하게 된 양 기분이 좋아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 좋겠네? 새 컴퓨터 쓰게 돼서~" 했더니 돌아온다는 대답이 "그냥 뭐 딱히..." 원래 무엇 하나 호들갑스레 호불호를 이야기하는 편이 아닌 사람인지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무덤덤해도 극히 무덤덤했다. 하지만 며칠 후부터 남편은 컴퓨터의 배송을 매일같이 확인하며 아닌 척 기다리고 있었고, 배송이 오기로 돼 있던 날 아침잠이 유독 많은 그가 알람까지 맞추고 일찍 일어나 물건을 받는 걸 보고 알았다. 역시 그도 좋아하고 있었구나.


배송을 받고 상자를 풀던 그 표정이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덩달아 그 표정을 보는 내 기분도 좋아졌다. 전 같으면 나는 왜 받지 못하는 거냐며 남편에게 장난섞인 볼멘소리를 했겠지만, 주는 마음만으로도 조금은 풍요로워질 수 있음을 살면서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비싸고 좋고 유명한 그 어떤 것도 아니지만, 학교를 가는 날이면 내가 좋아하는 주전부리(하리보 젤리라든가 바움쿠헨 빵과 같은)를 하나 이상 꼭 사 오는 사람이다. 너무 일상처럼 지나는 일이라 별 감흥이 없어질 만도 하지만, 늘 집에 돌아오면 가방을 뒤적뒤적하며 무심한 척 과자봉지를 내미는 그가 나는 더 고맙다. 


한국에 잠시 머물던 동안 큰언니와 함께 엄마에게 안경을 선물했다. 날이 갈수록 시력이 나빠지던 엄마는 끝까지 괜찮다며 만류했지만, 일상이 흐리게 보이는 답답함을 알기에 꼭 선물하고 싶었고 결국 엄마는 안경을 쓰게 됐다. 언니가 보내준 엄마 사진에서 더 이상 찡그리지 않고 휴대폰을 만지는 엄마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선물은 사거나 받게 되면 비용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주고받는 그 순간에는 받는 이의 고마움과 주는 이의 풍요로운 마음이 훨씬 크게 남는다. 그리고 건네진 선물이 어떤 형태로든 받는 이에게 가깝게 가 닿을수록  그 마음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건네는 사람이 온 마음을 다해 고른 그 어떤 것이라도 선물이 될 수 있고, 그걸 받게 되는 어떤 이는 느낀 만큼의 고마움을 전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일상 속에서 선물이 조금 덜 거창하고 덜 부담스러워졌으면 한다. 마음을 전하는 일이 꼭 말이나 글이 아니더라도 가끔은 핸드크림이 될 수도 있고 양말 한 켤레가 될 수도 있으며 밥 한 끼, 커피 한잔도 제각각에게 선물로 다가가는 날이 많아지는 삶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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