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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Dec 12. 2019

열 달 후, 그는 나의 배우자가 됐다

나와 남편은 만난 지 열 달 만에 결혼했다. 사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어떻게 10개월 만난 사람과 결혼하게 됐는지 스스로도 가끔 놀라울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은 변하지 않고, 다행히 그는 여전히 내 곁에 남편으로 존재하며 7년째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길지 않은 시간을 만나고 결혼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묻는다. 도대체 어떤 마음이 들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됐나요? 혹은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결혼하게 된 건가요?라고. 늘 대답하지 못했다. 못했다기보다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게는 '이 사람이다' 하는 느낌 같은 건 없었기 때문인데,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당시 내가 느꼈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말로 표현할 방법을 잘 몰랐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결혼생활이라는 걸 이어가면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생각했다. 나는 왜 이 사람과 결혼하게 됐을까. 한참을 생각한 후에 어렴풋이 답을 찾았다. 내게 그는 싫은 점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싫은 점이 하나도 없는 사람을 실제로 만난 기분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그리고 처음 만나서부터 지금까지도 그는 내가 싫어한다고 표현했던 많은 것들을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해 주는 것보다, 타인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노력의 품이 훨씬 더 크게 든다는 걸 알기에 나는 그의 그런 점을 높이 산다. 그리고 그는 꽤나 오랜 시간 그 모습을 한결같이 유지했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겠지만 특히나 부부 사이에서 배우자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들고, 그만큼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 점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쓸데없는 잔소리를 확연히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나긴 결혼생활에서 겨우 잔소리가 뭐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랴 싶겠지만, 현실 속에서 결혼은 생활이다. 그것도 공동생활. 둘 이상의 개인이 모여 사는 공동생활에서 잔소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단순히 필요 없는 말이 줄어든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 작은 행동 하나가 상대를 배려하고 있다는 큰 의미를 내포하며, 잔소리라고 표현되는 그 모든 불필요한 소모전과 시간낭비, 감정싸움 등을 꽤나 많이 줄여준다. 


그렇다고 몇 년을 살면서 정말 모오오오든 남편의 모습이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현실이고, 배우자도 엄연한 남이기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속속 보이게 마련이지만, 시간이 쌓아온 끈끈함 덕분에 눈감고 넘어갈 수 있는 유연성이라는 게 조금 더 길러졌다고 보는 게 맞겠다. 그리고 하나 내가 높이 사는 배우자의 모습이 있다면 무엇이든 한결같이 꾸준하다는 것이다. 내 사소한 말 한마디를 그냥 넘기지 않는 그도, 유별나게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그도 참으로 일관성 있게 한결같다. 한결같음의 형태와 내용은 동전의 양면 같을 때가 많아서 좋은 모습에서야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지만, 무심해 보이는 어떤 모습들에서는 참 너도 너다 싶은 혼잣말이 나오게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포인트는 '그저 한결같다'는 것이기에 거기에 방점을 찍고 넘긴다.


타고나길 나와 잘 맞는 성향인 사람을 운이 좋게 배우자로 맞아 크게 부딪치지 않고 잘 지내는 건지 아니면 그도 속으로야 힘들지만 내색하지 않고 내게 맞춰주려 노력한 결과 잘 맞춰지고 있는 것인지 인과관계의 순서는 알 길이 없지만, 배우자로 만난 남편이 나는 여전히 좋고 고맙다. 입버릇처럼 '세상에 내 맘 같은 사람은 없다'고 말하고 다니는 나지만, 어느 정도는 마음의 모양새가 비슷하게 생긴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선택하고 배우자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의 실체를 알게 해 준 그가 그 사람이어서 조금 더 고마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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