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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Dec 11. 2019

기껏해야 영양제 한 알

불과 수년 전 까지만 해도 나는 건강보조식품이나 몸에 좋다는 식재료들에 무관심했었다. 물론 지금도 어떤 음식이 몸에 좋은지를 나서서 찾아보거나 스스로 챙겨 먹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때의 나에 비하면 관심이 꽤나 많아진 게 사실이다. 이런 변화는 아마도 괜찮은 건강상태를 꾸준히 유지하며 사는 삶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가까이 들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이따금씩 병원신세를 진다거나 몸이 내 맘같이 움직여지지 않음을 느낄 때면 건강을 관리한다는 게 과연 어떤 것인지 조금 더 현실적으로 고민하게 됐고, 그와 더불어 생각도 조금씩 변해갔다.


어디에선가 '00이 해독에도 좋고, 염증도 가라앉히고 어쩌고~'하는 장황한 효능을 듣고 있자면 예전의 나는 코웃음 치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게 정말 저렇게 다 좋은 거면 세상에 아픈 사람 한 명도 없어야 하게 라며. 아마도 1년 중 아팠던 날이 손에 꼽을 만큼 당연히 건강할 나이였기에 오만했었고, 딱히 무엇인가를 챙겨 먹지 않아도 보통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던 때이니 관심이 가지 않던 게 당연했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조금씩 힘에 부치던 날들이 이어지면서 결국 고장신호는 건강에서부터 가장 먼저 오기 시작했고 크고 작게 아팠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자고 일어나면 어딘가 아픈 날이 있었고, 회식 다음날 되려 보통날들보다 더 일찍 출근하던 나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얼마 전 한국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짐을 싸던 중, 확연히 변해있는 나를 발견했다. 남편과 내가 늘 무엇을 해 먹고 사는지가 가장 궁금한 우리 엄마와 시어머님이 가장 많이 챙겨주신 건 건강식품과 요리 재료들이었다. 예전 같으면 스스로 챙겨 먹지 않을 걸 알기에 받아오지도 않았을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챙겨주시는 고마운 마음과 한편으로는 그래 한번 먹어나 보자는 생각에 주신 모든 것들을 이고 지고 싸왔다. 그리고 하나씩 재료들을 써서 밥을 지어먹고, 영양제를 남편과 나눠먹는다. 아직 나보다 상태가 나은지 남편은 내가 권하는 이런저런 음식들 중 몇 가지만 골라먹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거부하던 예전에 비하면 그도 조금은 달라졌다.


이런저런 것들을 챙겨 먹는 내가 나는 아직도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먹으면서 또 생각한다. 아프지 않고 괜찮은 건강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비단 나에게만 좋은 일일까? 드라마 주인공들은(특히 여주인공은) 연약하고 아프곤 해야 남주인공과의 로맨스도 뭔가 더 잘 풀리는 것 같고, 어딘가 여성성이 보다 강조되는 느낌이 짙다. 하지만 현실은 말이 좀 다르다. 일단 아프면 내가 가장 힘들고, 다음으로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진다. 이것은 단지 남녀 사이를 떠나 가족과 친구, 지인 모두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미웠던 사람도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게 인지상정인데, 마음을 나누는 가까운 이가 아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무겁고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조금 다른 구석에서는 그런 마음도 든다. 깨어있는 생각과 마음을 가진 이가 주변에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처럼, 그들이 신체적으로도 아프지 않고 스스로를 잘 돌봤으면 하는 욕심 같은 마음. 힘든 일에 대한 걱정과 위로는 나눌 수 있지만 이를 견뎌내는 것은 오롯이 그 사람만의 몫이기에, 스스로 아프지 않고 괜찮은 건강상태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결국에는 서로가 좋은 모습으로 오래 함께할 수 있는 기본기가 아닐까 싶다. '건강'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고서부터 '아프지 말고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를 전할 때 보다 진심을 담게 된다. 예전엔 너무도 당연한 건강을 인사말로 쓴다는 것이 격식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지만, 이제는 진심으로 그와 그녀의 건강을 염원하며 인사를 건넨다. 


생각이 조금씩 바뀐다는 것은 나 스스로가 젊음으로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없는 나이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 하지만 그저 세월만을 탓하기에 시간은 너무도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오롯하게 그 시간 위에 내가 놓여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주 작은 건강보조식품 하나라도 이게 뭐 얼마나 도움이 되랴 라는 의심 섞인 마음보다는 오늘도 내일도 잊지 않고 잘 챙겨 먹어보자라는 평평한 마음으로 영양제 통을 연다. 그리고 보통날이 쌓여 어떠한 것이 만들어지듯, 한 알의 영양제들도 시간이 쌓여 꾸준함을 얻고 나면 괜찮은 건강상태를 유지하는 내 속의 어느 한 구석이 되어있으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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