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상을 산다. 목적하는 바가 뚜렷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다는 그 의미만으로도 여행은 그래서 더욱 각별해지는 가보다. 평범한 하루들이 한 뭉텅이씩 모여있었기에 그 평범함을 벗어나는 어떠한 하루가 새롭게 느껴졌고, 다시 돌아온 다른 하루에는 해야하는 일들과 고민들이 여전하다. 잠시 손을 떼어둔 내 살림에는 남편 나름의 손길이 닿아있었지만 역시나 내것은 내 맘대로 해 둬야하는 성격 탓에 돌아와서 가장 처음 한 일이 부엌 정리였다. 정리를 하다 문득 유통기한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는 나를 보며 생각했다. 음식들의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것처럼 인생을 대한다면 나는 지금처럼 시간을 무한히 두려워하고 막막해하기만 할까?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마침표가 있다. 하지만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는 그 사실을 없는 것처럼 잊고 살고, 그러다 갑자기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마주하거나 하게 되는 때가 오면 나의 그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인생이란 아주 긴 시간이라(사실 길지 아닐지도 모르고 살면서) 우리는 자주 거의 매일 망각하지만 죽음은 항상 있었고 지금도 있다. 생산된 제품의 수명이 있고 식재료의 유통기한이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주어진 저마다의 시간이 있을 텐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우리는 참 잘도 잊고 지낸다.
꽤나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남편의 학업을 기다리다 지친 나는 언젠가 남편이 나중에라는 말을 꺼냈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의 나중이라는 시간에 내가 곁에 있을 거라는 단단한 믿음이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대단한 나중보다는 소소한 지금이 훨씬 소중하다."라고. 아마 서로가 많이 지친 때에 오갔던 말이라 그 속에 가시가 있었겠지만, 맥락을 제외하고 사실로만 바라봐도 여전히 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실로 그랬다. 그때 내게 필요했던 건 잠들기 전 남편과 나누는 술 한잔과 시시한 대화 정도가 전부였으므로.
지금도 나중도 결국에는 끝이 있을 시간의 어딘가 일 테고 나는 여전히 그다음의 어딘가를 지나고 있는 중일 것이다. 굳이 죽음이라는 무거운 이야기에 늘 깨어있지 않더라도, 알 수 없는 나중을 기약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지나가고 또다시 온다. 이 묘한 돌림노래 같은 이치를 한참 생각하다 보면 인생이 갑자기 무서워지기도 했다가 결국에는 꽤나 단순해진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 라고. 애석하게도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 같은 것은 타고나질 못했기에 그저 지금을 가급적 최선을 다해 사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다는 걸 알았다.
언젠가부터 입버릇처럼 '안 할 거면 모르지만 이왕에 할 거면 제대로 하자.'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도 이를 깨닫고 난 후부터였다. 대충 해도 제대로 해도 사실 결과에는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지만, 단 하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어떻게 하든 그것을 했던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 글을 쓰며 내가 누군지 알아가려고 했던 것 또한 지금을 나라는 사람으로 온전히 살아내보고 싶다는 마음의 발로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시간이 그리고 지금이 계속된다는 사실이 아주 조금 막연하긴 하지만 조금씩 애틋해지기도 한다.
다시 일상의 궤도에 천천히 오르면서 다양한 마음을 마주했고, 이미 겪었던 것들도 다시금 몰려오는 것 같아 두렵기도 했지만 아주 조금 내려둘 수 있게 됐다. 결국에 끝이 있을 지금이 너무 소중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지금을 사는 내가 조금 더 나답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렇기에 지금을 제대로 살아보자라는 마음이 조금 더 크게 자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짧게는 곧 오늘이 끝날 시간이 오고, 길게는 언젠가 생을 마감하는 날이 오는 것처럼 단순한 이치 속에서 나는 또 식재료들의 유통기한을 확인하며 장을 보고 밥을 지어먹으며 그저 지금을 사는 일로 인생을 채워갈 것임을 희미하게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