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다가 실제로 쓰게 된 이후 내게 생긴 변화라면 '나와 내가 잘 지내는 법'을 조금 더 정확히 알게 됐다는 것이다. 어떤 힘듦이 무엇 때문인지 조차 명료하게 보이지 않던 흐리멍덩한 시간을 보내던 때, 나는 그 누구와도 잘 지내지 못했다. 나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족과 동료, 친구 그 누구에게도 곁을 내어주지 못했고 나 또한 그들의 손길을 온전히 잡지 못했다. 1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흐르는 동안 방황도 기쁨도 맛보고 나니 이제야 내가 좀 선명하게 보인다. 12월이 끝나갈 무렵에서야 나는 나와 어떻게 하면 잘 지내는지를 세밀하게 알게 되었다.
거처를 옮기고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나는 내가 마음에 드는 구석이 단 하나도 없었다. 이러다가 내가 나를 많이 미워하고 싫어하게 되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생길 만큼 나는 내게 탐탁잖았다. 환경이 바뀐 탓으로 돌려보고도 싶었지만, 속내는 알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대부분의 나는 지금껏 쭉 그래 왔던 나였으며, 이제와 선명하게 그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두려운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거라고. 그래서 내가 차리는 밥상부터 혼자 하는 공부도, 이런저런 고민들도 그리고 나 혼자 끌어다 놓은 주변의 걱정들까지 모조리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해 본 이들은 알 것이다. 좋아하고 동경하는 일보다 미워하는 그 일이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지치고 힘겨운 시간이었다. 하물며 남을 미워해도 그럴진대, 내가 나를 미워하는 매일의 시간을 보내던 때는 지금 생각해도 조금 아득하다. 그리고 미워하기만 하고 그쳤다면 어쩌면 지금도 하루 걸러 하루가 지옥인 날을 자주 경험하며 지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주변의 따스함과 생각지 못한 여유와 글쓰기가 미움 속에서 허덕이던 나를 뭍으로 조금 끌어내어 주었다.
그리고 그 덕에 나는 이제 나와 조금 더 잘 지내게 되었다. 사실 겉으로야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나만 아는 나는 꽤나 많이 변했고 많이 너그러워졌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내 선택에 깃드는 불안감이 너무도 무섭고 싫어서 확실한 것들만을 선망하고 선택했다. 어린아이처럼 내가 하는 모든 선택에 따르는 불안을 제로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살았던 나를 뒤늦게 발견했다. 그렇게 쓸데없는데 힘주고 사느라 되려 진짜 그렇게 해야 할 때가 됐을 땐 이미 지쳐 많은 것들을 놓아버렸다.
지금의 일상에도 분명히 불안은 깃들고 그것은 때 이른 걱정과 근심을 줄줄이 가져다 놓곤 한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는 조금 더 팔을 크게 벌려 그 모든 것들을 품어보려 애쓰는 중이다. 아직도 다 품지 못하는 불안은 있게 마련이지만, 다행인 건 이제 모두 품지 못하는 나를 내가 탐탁잖게 쏘아보지는 않게 됐다는 정도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와 죽을 때까지 함께 해야 한다는 무서운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이제부터 해야 할 건 내가 나를 좀 더 찬찬히 관찰하고 잘 보살펴주려는 따뜻한 시선을 갖는 일이다. 가끔은 차갑게 식어버리기도 하지만, 다시 온기가 도는 따스한 시선으로 바꾸는 일 또한 나의 몫임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크리스마스다 연말이다 하여 뭔가 알 수 없게 뒤숭숭해지는 12월의 막바지에 나는 올해 무얼 했었나.. 곰곰이 생각하다 발견한 나와 잘 지내는 법이 썩 마음에 들어 다행이다. 미움 한가운데서 뭍으로 올라왔으니 이제 단단한 땅을 디디고 자유롭게 설 수 있게, 느리지만 자꾸만 나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