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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Jan 20. 2020

삶의 질

무심코 들었던 팟캐스트에서 나왔던 '삶의 질'이라는 단어가 한참 머릿속에 남았다. 너무도 흔히 듣는 말이라 이제는 구태의연하게 느껴질 정도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매일을 살아가면서도 정작 삶의 질을 곰곰이 고민해 본 적은 사실 많지 않다. 나는 타고나길 큰 그림을 그리거나 중장기적 목표 혹은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타입인지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 내고, 할 수 있는 게 분명해지면 그제서야 그게 잘하고 싶어서 노력하는 타입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삶을 대하는 큰 명제들, 이를테면 행복이라든지 잘 사는 삶이 무엇인가 등에 대한 별다른 고민이 없었고 그에 대한 목마름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지내왔다.


그러다 문득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욕심 같은 마음이 생겼다. 욕심 같은 마음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마도 이것이 구체적이거나 가시화된 목표라고 설명할 수 없는 무형의 내 마음속 상태이기 때문인데, 사실 그 마음을 지칭하는 말은 그리 중요치 않다. 그러한 마음이 내게 들었다는 사실이 훨씬 더 사건 같은 일이기에. 워낙에 계획도 없이 살아오던 인생에서 갑자기 '삶의 질'을 높이며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게 내 마음이지만 나도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게 그래서 도대체 무어냐고 따져 물으면 똑 떨어지는 대답 없이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는 지금의 현실이 조금 더 당황스럽지만, 어찌됐건 그런 마음이 생겼고 나는 그렇게 살아볼 작정이다.


지금보다 어렸던 어느 시절에는 아마 삶의 질을 높인다는 것이 좋은 옷을 입고 비싼 가방을 들고 정기적으로 여행을 떠나며 월세보다 전세, 전세보다 자가인 집을 구해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저것 들 중 내가 지금 부릴 수 있는 여유를 선택하고 그것을 누리며 내 삶에 단기적인 만족감을 채웠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 짧은 만족의 효용은 점점 더 짧아지기만 하고, 결국 만족감에 대한 내성만 강해져서 자꾸만 더 크고 대단하고 그럴듯한 무언가를 바라보게 만든다. 그렇다고 단기적인 만족을 안겨주었던 저 모든 것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속성을 조금 더 빨리 알아채지 못한 스스로가 이제와 보니 꽤나 짠하게 돌아봐진다는 정도가 남는 감정의 대부분이다.


이왕에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상, 그런 마음을 먹게 된 나를 조금 더 찬찬히 관찰하고 알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삼으려 한다. 누군가의 시선, 어떠한 역할에 구애받지 않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좋아하고 특히나 어떤 것을 극도로 좋아하지 않는지 찬찬히 알아보고 싶다. 사실 내 이름으로 삼십몇년을 살았지만 나도 나를 잘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두렵고, 하지만 아직 알아갈 것들이 조금 더 남아있다는 게 위로가 되기도 하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 기준과 관점을 세우고 그것에 따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선택하고 판단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르는 후회가 조금은 적은 삶을 살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마 그렇게 꾸준히 살다 보면 지금은 어버버 대답할 수밖에 없는 내 삶의 질이 조금은 더 나아져 있지 않을까 하는 옅은 기대도 함께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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