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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Feb 25. 2020

알아서 잘하겠지

"그래서 남편은 졸업하고 뭐할 거래?" 

만학도 남편을 둔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다. 수도 없이 많이 받았던 질문이라 그 의도와 궁금증은 이해하나, 나는 저 질문에 한 번도 그들이 속 시원하리만치 명확한 대답을 한 적이 없다. 진심으로 나는 그가 앞으로 어떠한 인생을 살지 알지 못하기에, 타인의 인생 그것도 앞날에 놓여질 일들에 대해 내가 가타부타 말을 얹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가당치 않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내 남편이 현재 공부 중이 아니라면, 혹시 여전히 회사원으로 지내고 있다 해도 비슷한 부류의 질문을 서슴없이 할 수 있을까? 다만 공부를 조금 늦은 나이에 한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의 앞날에 대한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의무는 누구에게도 없다. 아니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질문 자체가 어쩌면 무척 우매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질문하는 자들의 의도가 다분히 악의적이지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기에 그저 대답을 얼버무리고 넘기기 일쑤다. 하지만 질문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명쾌하지 못한 나의 대답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에는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아니 부부사인데 그걸 잘 몰라? 남편이 무슨 공부를 하는지, 앞으로 뭘 할 건지 잘 모른다고?"식의 대화가 이어지면 당장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 진심으로 나는 모른다. 나는 내 남편이 아니기에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내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다. 


불편한 질문들이 이어져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알아서 잘하겠죠."가 전부다. 그리고 저 말은 진심이다. 누구나 스스로의 인생이 가장 애달프고 잘되길 바라는 건 마찬가지 일터. 나보다 남편 스스로가 본인의 주어진 삶에 대해 깊고 넓게 고민할 것이고, 나는 그저 함께 길을 걸어가 주는 동행자 정도이다. 부부 사이란 자고로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나눠야 하며, 모르는 것이 있으면 비정상적이라는 생각 자체가 나는 조금 비정상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이 살아낼 수 있는 인생은 오롯이 내게 주어진 시간이 전부일 뿐, 그 너머는 그저 지켜보고 곁에 있어주는 것 말고는 없다. 모두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가족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면 무언가 더 특별한 것을 나누어야 한다고 믿고 싶어 지는 듯하다.


나는 부부 사이란 모든 것을 말할 필요는 없지만,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믿어주는 것, 지켜봐 주고 진득하게 기다려주는 것이야말로 남이 아닌 가족이 할 수 있는 특별함이 아닐까. 나도 불안함이 엄습하는 어느 순간에는 남편에게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 닦달하기도 했고, 이어지는 답답함에 우울해하기도 했었다. 그 모든 근원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불안함이었고, 그 불안을 제로로 만드는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며, 그저 공기처럼 삶에 당연히 따라붙는 것임을 시간이 흐르고 알았다. 깨달은 순간부터 묻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묻지 않기 시작하면서 내 불안은 조금씩 줄어갔다.

 

알아서 한다는 말의 힘을 믿는다. 무책임하게 내버려 두며 알아서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나는 당신을 믿기에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 고민을 존중하고 기꺼이 지켜보며 기다릴 마음이 있다는 뜻이 내포된 알아서 한다는 말은 분명한 힘이 있다. 그리고 그 말의 힘은 꽤나 시간을 들여야 눈에 보여지며, 가끔은 실패하기도 한다는 것도 안다. 간섭하지 않아도, 조언을 얹어주지 않아도 각자의 삶은 그 자체로 고민의 연속이고 고민 끝에는 항상 선택의 기로가 놓여있다. 누구나 불안이라는 줄타기를 하고 있는데 굳이 보태어 줄을 흔들어보며 튼튼한 게 맞냐며 걱정거리를 더해줄 필요는 없다. 줄이 튼튼했는지 좀 느슨했었는지, 아니면 중간에 끊어질지도 직접 디뎌본 후에야 알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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