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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May 01. 2020

올해 들어 학교를 나가는 일이 부쩍 줄어든 남편과 나는 거의 하루 종일을 같은 집에 머물며 시간을 보낸다. 한 집에 있지만 엄연히 밥 먹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는 그의 책상에서, 나는 내 방에서 보내는 각자의 시간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어찌 됐든 우리는 한 집에서 거의 매일을 함께 지낸다. 문득 생각했다. 노년에 접어들 즈음 은퇴 이후의 시간이 아닌 지금의 나이에 우리가 이렇게 하루 종일을 매일같이 붙어있을 시간이 또 있을까? 


결혼을 하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함께 살기는 했지만, 과거의 그와 나는 각자의 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주말이나 되어야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할 여유가 있었다. 시댁이나 처가 등 더 넓은 범위의 가족들을 만날 일이 한 달에 두어 번은 생기게 마련이니 그마저도 넉넉하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함께 살지만 사실상 함께하는 시간은 많지 않은 신기한 일상을 매일처럼 보내던 때에는 모르던 것들을 그렇게 살지 않게 된 지금에야 안다. 곁에 있어준다는 것이 가지는 본질이 어떤 것인지.


사실 곁에 있어 준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있어주는 것이 생각보다 꽤나 큰 위로와 즐거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배운다. 아마 그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서로가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시간들이 얼마간 있었기에 지금을 더욱 절절히 체감하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수저를 들고, 같은 드라마를 보며 웃고 함께 싱크대에 서서 설거지를 하는 그 잠깐씩의 일상이 내게는 생각지도 못하게 큰 위안을 가져다주었다. 이 곳에 와서도 다양한 감정의 기복을 지나지만, 우울하든 기쁘든 심심하든 그 곁에는 항상 그가 있다. 내가 무척이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곁에 있어주는 것'이 사실은 타인이 해 줄 수 있는 대부분임을 실감했고 조금 반성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사실 내가 무엇인가 해 줄 수 없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임에도 멋모르던 나는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을 바에야 모르는 척해 주는 것이 더 낫다는 밑도 끝도 없는 믿음에 사로잡혀 많이도 외면했고 지나쳤으며 모른척했다. 멋모르고 우습게 봤던 것들 중 가장 크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이 '곁에 있어 주는 것'이다. 곁에 있어 주겠다는 마음과 실로 그렇게 곁을 내어주는 것이 살아가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내어줄 수 있는 참으로 크고 엄청난 영향력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간다. 무엇인가 더 보태려 하지 않고 그저 있어줌으로써 전해지는 묵직한 위로가 있다. 말 조차도 필요 없는 위로. 인생 혼자지만 결국 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무언으로 알려주는 무엇. 그래서 곁에 있어주는 사람은 중요하고, 그 곁을 알아채는 마음 역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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