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서 여름을 거치는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솔직히 서랍장에 담아둔 글은 몇 개 남짓인데, 완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저 담아만 둘 것 같은 글들이 있을 뿐, 글쓰기라는 행위에 몰두하지 않고 지냈다. 처음에는 '음... 그래도 시작한 일이니 꾸준히 써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자주 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니 사실 글을 자주 쓰던 내가 가물가물해졌고 서서히 쓰지 않는 일상이 익숙해졌다. 최근에서야 왜 꾸준히 쓰지 않게 됐는지가 선명하게 궁금해졌다. 분명 과거에 어떤 마음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을 텐데, 그렇다면 쓰지 않게 되는 마음은 뭘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딱히 해야 할 것도 정해져 있지 않던 어느 시간 즈음에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치 헤엄칠 줄 모르고 물에 그저 둥둥 떠있기만 하던 내가 조금씩 움직여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손을 휘젓고 나름의 발차기를 시작한 것과 비슷하달까. 사실 글을 쓴다고 해서 바뀔 건 없었다. 현실은 단순했고, 그 속에서 나의 가동범위 역시 명확했다. 하지만 무기력이 엄습한 일상에는 우울만이 떠다녔고, 현실에서 직시한 나는 내 생각 속의 나보다 한없이 초라해서 많이 놀랐고 낯설었다.
신기하게도 별생각 없이 시작한 글쓰기가 내게는 보이지 않는 위안이 되었고, 유/무형의 위로가 필요하던 나는 글을 쓰면서 뭉근하게 나아졌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고,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기만 하는 생각들을 일목요연하게 글로 적다 보면 참 별 것 없다 싶은 생각이 항상 들었다. 다양한 생각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상 나의 사고 범위는 꽤나 편협했고, 일방적이었으며 단순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넓어졌다거나 하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하나 정확하게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생각하는 나는 실상의 나보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과소 혹은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법을 전혀 모르고 수십 년을 지내왔다 싶었다.
그렇다면 왜 자발적으로 시작한 글쓰기에서 어느 순간 글을 쓸 마음이 사라졌을까?
답을 찾으려면 내 마음을 시간의 역순으로 더듬더듬 추적해 봐야 했다. 과거 어느 시점의 나는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참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자주 오래 들었다. 그래서 일단 그냥 써보기나 하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이것저것 생각이 떠오르면 정리해서 적어나갔다. 하지만 봄에서 여름이 되는 시점을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그냥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마음에 남아 오래 곱씹는 생각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지겨울 법 한 단순한 일상에 익숙해졌고,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던 불안과 걱정들이 결국 내 능력 밖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뒤늦게 체감했던 것 같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며, 미래라는 것 또한 반복되는 오늘의 연속일 뿐이라는 단순한 이치에 눈을 떴다.
간사하게도 마음이 살만해 지자 나는 글을 멈췄다. 시간을 반추해서 찾은 나의 대답이 참으로 어이없으면서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에 혼자 웃었다. 삶도 나도 이렇게 단순한 이치였는데 나만 그걸 몰랐다. 단순하면 안 될 것 같고, 왠지 더 복잡하게 사는 것이 진짜 인생 같다는 생각에 쓰잘데기 없는 걱정과 생각과 마음을 부여잡고 오래도 지냈다 싶었다. 솔직히 앞으로도 계속 쓰기를 이어갈지 또 한동안 멈출지 모를 일이다. 다만 글을 쓰며 몰입하는 순간과 그 정적이 좋아서라도 쓴다는 행위 자체를 단칼에 그만두지는 않으리라는 것만은 희미하게 안다. 물론 내 마음의 풍요도에 따라 빈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쓰고 싶은 나는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