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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Jan 22. 2020

친절하지 않지만 따뜻한 사람

지나온 시간을 이리저리 뒤적여 봐도 내가 누군가에게 아주 친절했던 적은 많지 않다. 아마 말수가 적은 탓도 있겠지만, 나 스스로가 과한 친절을 불편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순간부터 조금씩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필요 이상의 웃음이나 실속 없는 이야기들이 주는 피로감이 내게는 친근감보다 훨씬 컸다. 아무말 하지 않음이 곧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왜 이해하지 못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기도 했다. 대화나 관계의 공백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은 곳에서 나는 조금씩 겉돌았고, 그런 시간이 쌓일수록 내게는 차가운 사람,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길게 이어졌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주 생각하는 과거 어느 시점들이 늘어간다. 좋았거나 힘들었거나 하는 다양한 기억 속에서 꾸준하게 나를 괴롭히는 생각은, 그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던 어느 순간들이다. 아무런 의도가 없었던 내 말에 악의가 다분하다며 분노를 표출했던 동료도 있었고, 자신이 내게 준 성의만큼 돌려주지 않는다는 서운함을 화를 내면서 이야기했던 친구도 있었다. 물론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한참 어렸을 때였으니 그러려니 하며 넘길 수 있는 그저 사건 같은 시간들이지만,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대도 나는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겪었던 대부분의 불화들은 각자가 정해둔 친절함의 기준이 달라서였을 뿐인데, 가끔은 그 기준치가 조금 낮다는 이유로 나만 당한 것 같은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또 나라서 그때의 나나 지금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다름의 차이를 수용하는 폭이 그때 보다야 한 뼘 정도 넓어지지 않았으랴 하는 추측만 더할 뿐. 과거의 어느 시점을 돌이켜보며 내가 억울하다고 느꼈던 건 아마, 단지 친절하지 않았다는 태도 자체에 대한 억울함보다 거기에 묻힌 내 진심에 아쉬움이 남아서였을 것이다.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나는 친절하지 않음이 곧 냉정함이나 관심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는 엄연히 다른 영역의 문제이며, 그 두 가지는 오래 두고 보아야 알 수 있는 진면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우스갯소리처럼, 타고난 천성은 마음먹은 대로 고치기가 어렵다. 지난 시간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까지 미치지 못하는 나를 애달파 할 수 없는 이유다. 다만, 비록 친절하지는 않지만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타고나길 무뚝뚝한 천성을 고치려는 의미 없는 노력보다는,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오래도록 지켜보며 기다려주고 헤아릴 줄 아는 마음을 가져보려는 시도를 조금 더 많이 하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꼭 친절하지 않아도 괜찮은, 보이는 모습에 보여지지 않는 진심이 쉬 가려지지 않을 수 있도록 세상이 조금 더 여유로워졌으면 하는 욕심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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