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나 Dec 17. 2019

낭만에 대하여

낭만적이다 혹은 낭만을 꿈꾼다 처럼 '낭만'이라는 단어는 있는 사실 그대로가 아닌 어딘가 주관적인 느낌이 짙은 표현과 어울린다. 실제로 낭만적이라고 여기는 그 어떤 것도 물리적으로 설명이 어려운 주관적인 것이기에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그만큼 무채색의 일상에서 낭만을 찾는다는 것은 꿈꾸는 일처럼 막연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역시 낭만이라는 것이 실질적으로는 무용한 어떤 것일지 모르나,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하는 작은 힘이 있다고 믿고 있다. 


나는 저녁노을을 좋아한다. 세상천지에 똑같은 노을은 없듯, 매일의 해지는 풍경은 날마다 다르고 그래서 매일 한참을 바라보게 한다. 한국에 살던 시절, 남서쪽 지방으로 이전한 회사를 따라 거주지를 옮기고 팍팍했던 타지의 삶에서 유일한 낙은 천천히 오래 떨어지는 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름에서 늦가을까지는 퇴근 후에도 부옇게 떠 있는 해가 가득 든 집 거실 창에 서서 넋을 놓고 바라봤고, 해가 짧아진 겨울 어느 날엔가는 사무실 밖으로 분홍과 보라가 뒤섞인 노을이 하도 예뻐서 팀원들과 함께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바라보기도 했던 곳이다. 해지는 풍광은 일상처럼 매일 있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그 색감과 장관이 눈에 박히는 날에는 여지없이 낭만을 떠올렸다. 눈을 사로잡던 노을은 항상 낭만적이었다.


거처를 옮겨도 해는 뜨고 지게 마련이고, 높은 건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미국 서부 시골의 해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두 눈에 가득 하늘만 보이는 풍경은 도시에서의 삶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그 가득한 하늘이 붉고 노랑고 파랗게 물들어가는 노을의 색감이 더해지면 실로 말을 잃게 만든다. 하늘이 총 천연색으로 바뀌어가며 서서히 저녁이 오는 즈음이면 창밖에 달라붙어 노을을 구경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말한다. "매일 지는 해가 뭐가 그렇게 좋다는 건지..." 그 말에 별다른 대꾸를 붙이지는 않지만, 속으로 말한다. 낭만이 없어 낭만이.


누군가에게는 예상치 못한 꽃 한 송이 선물이 낭만적일 수 있고, 감성 가득한 노래 한 소절이 그럴 수 있으며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며 애써 노력하는 어떤 모습이 낭만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만큼 낭만적이라는 것은 사실 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하다거나 없다고 불편한 무엇은 아닌 게 확실하다. 다만 무용하다고 해서 무가치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낭만이라는 것에 가치와 쓸모를 부여하는 그 자체가 무용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저 한참을 웃음 짓고 바라보고 감동하고 벅찬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하는 어떠한 힘이 낭만적인 것들에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이왕에 살게 된 인생에 조금이라도 낭만을 덧붙여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그저 그런 일상에 조금 더 욕심내어 마음이 풍요로운 하루를 살고자 하는 마음이 든다면 어떠한 것이든 스스로에게 낭만적인 무엇을 찾아보시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내게는 매일 다르게 지는 노을을 바라보는 일이 그렇고, 짱짱한 겨울 햇빛 드는 창가가 그러하며, 고소한 라떼 한잔과 느리게 보는 책 한 권이 그렇다. 대단치는 않지만 크게 품 들이지 않고도 누리는 나만의 낭만이 구석구석 많아지는 생이 되길 바래본다.

작가의 이전글 메일 한 통에 담기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