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프라이싱의 비밀
장어 맛집을 알아보다 눈길을 끄는 집을 발견했다.
2인분 기준 54,000원 (1kg 손질 후 500g).
대부분 장어집이 7만~10만 원대인 걸 감안하면 직관적으로 ‘싸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케터의 본능이 작동했다.
이건 잘 짠 프라이싱이다.
사실 정말 저렴한지는 g당으로 따져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것.
어떤 곳은 ‘2인분’, 어떤 곳은 ‘1kg’, 또 어떤 곳은 ‘3마리’… 정확히 비교하기가 어렵다.
결국 소비자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1인분에 얼마냐’라는 절대값뿐이다.
여기서 사장님의 전략이 빛을 발한다. 시장에서 통용되는 ‘2인분’을 기준으로 가격 비교가 가능하게 만들고, 경쟁업체보다 저렴하게 보이도록 책정한 것이다. 실제로는 다른 집의 장어양 대비 조금 줄여 마진을 확보했지만, 소비자는 직관적으로 '싸다'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진짜 신의 한 수는 따로 있었다.
장어를 주문하면 인원수대로 매콤한 낙지볶음을 서비스로 내주는 것.
느끼함을 잡아주는 낙지는 장어와 환상의 궁합이다.
덕분에 양이 적다고 느낄 새도 없이 배부르고 만족스러운 식사가 완성된다.
사장님은 마진율을 지키면서도 고객 만족도를 끌어올렸다.
낙지볶음은 ‘서비스’가 아니라 ‘진짜 메뉴’였다. 가격표만 없었지, 1~2만 원대 단품처럼 푸짐했다.
“다음에 장어 먹고 싶을 때 또 오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맛집 리스트에 이곳을 저장했다.
어쩌면 사장님은 우리가 생각한 만큼 저렴하게 판 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확실히 “가성비 맛집”이라 느꼈다. 핵심은 가격 자체보다 소비자가 어떤 프레임으로 경험하게 되느냐에 있다.
결국 소비자는 가격표가 아니라 경험으로 가격을 평가한다.
숫자는 쉽게 잊히지만, 낙지볶음의 맛은 오래 남는다.
마케팅은 ‘얼마에 팔았는가’의 싸움이 아니라,
‘어떻게 기억되었는가’의 싸움이다.
✔ 앵커링 효과 (Anchoring Effect)
사람은 기준점이 있으면 이후 판단이 그 기준에 영향을 받는다. '2인분에 7만 원'이 기준이 되면, 5만 원대는 무조건 싸게 느껴진다.
✔ 프레이밍 효과 (Framing Effect)
같은 정보라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판단을 하게 된다. ‘2개월분 2만 원’과 ‘500g 2만 원’은 다르게 느껴진다.
✔ 서비스 키커 (Service Kicker)
고객 만족도를 극대화하는 보조 요소. 핵심 상품의 단점을 보완하거나, 경험을 풍성하게 만든다. 낙지볶음이 바로 그 역할을 했다.
✔ 가성비 포지셔닝 (Value-for-Money Positioning)
가격 대비 높은 만족감을 주면, 고객은 제품의 본질보다 가격 대비 성과를 기억한다. 이때 기억은 곧 충성도로 이어진다.
✔ 인지된 가치 (Perceived Value)
실제 가격보다 ‘느껴지는’ 가치가 더 중요하다. 싸게 샀다고 느끼면, 그건 이미 싸게 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