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으로 읽는 단편영화
안녕의 세계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니?'
나는 금숙이다.
명래여고 담임.
금숙의 말은 영신에게 닿기도 전에
후드득.
그럴 줄 알면서도
금숙이 내뱉은 흡사 긴 한숨 같은 그 말.
대본리딩
이 영화는
친구의 무단결석으로 인한 소문과 균열을 다룬
여고생들의 마음 시린 어느 겨울날의
이야기이다.
지칠 대로 지쳤어
감독님이 내게 말해 준 여고 담임 금숙의 캐릭터.
화장기도 목소리도 힘을 뺐다.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는 걸 아니까.
촬영 전 기운 없는 몸을 만들어야지.
식단조절도 했다.
그래도 눈초리만은 예리하게.
그럼에도 목소리는 강단있게.
그렇게 푸석푸석한 강철금숙이 되었다.
우리들의 세계는 안녕할까
영화 덕분에 40년 만에 다시 찾은 교실.
부디 안녕하길 바랐다.
돌이켜보면 나의 학창 시절이라고
별반 달랐을까.
미주알고주알 스타일은 아니었던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색하는 게 서툴다.
나를 닮은 금숙의 속 타는 한숨소리를
들어보자, 씬 13의 대본이다.
S#13 INT. 교무실 – 명래여고 (오후)
방과 후의 교무실,
금숙의 옆자리에 영신이 앉아있다.
금숙은 영신을 보지도 않고
본인의 일을 처리하는 중이다.
금숙
왜 안치던 사고를 치고 그래?
영신
… 아니에요.
금숙
뭐가 아닌데.
금숙이 그제야 의자를 돌려
영신을 본다. 깊은 한숨소리.
금숙
뭔 일 있으면 좀 말하면
어디가 덧나니?
교직생활 동안 이런 애들은
또 첨 본다.
혼잣말하듯 말하는 금숙을
영신이 빤하게 본다.
금숙
가봐.
(안녕의 세계, 13 씬 대본)
그래도 한 번쯤 말이나 꺼내볼걸.
저 진짜 힘들거든요.
알면서도 모르는 척.
계속 말을 캐물으며 마음만 탐색할 뿐.
그래서 이 영화의 인물들은 누구 하나,
속시원히 털어놓지 못한다.
영신과 준희,
그리고 아이들과 금숙조차도.
그저 떠도는 소문과
균열된 파열음만이 무성할 뿐.
어느것 하나 명확하거나 선명하지 않다.
곱씹어보면,
우리의 일들이 뭐 하나 선명한 것들이
있을까도 싶다.
고민도, 불안도, 걱정도, 소문도, 두려움도,
그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품고 있던가.
아니면 흘려 보내든가, 같이 흘러가든가.
학창시절의 나 역시도 달랐을까.
어쩌면 그 시절의 계절은
겨울일지도 몰라.
안녕하길 바랬고
여전히 안녕하길 바라는 우리들의 시절.
정연지 감독의 기억 한 조각에서 시작된
이 영화는 아이들처럼 날마다 자라고 있다.
2년 연속, 여러 영화제에 러브콜을 받았고
관객들과 만났으며 수상의 기쁨도 함께 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되게 하는 일.
그것이 영화가 지닌 힘이 아닐까.
<서울독립영화제(2023), 춘천영화제(2024), 서울여성독립영화제(2024)에서> 서울여성독립영화제에서 <안녕의 세계> 팀들과 안녕의 세계
2023/Fiction/Color/20min
각본/연출: 정연지
출연: 장재희, 이한누리, 장마레, 권기하, 김진구, 김은총, 남은주, 한아름, 이단비, 김수민, 김지명, 김지연
심혜빈, 이세민, 이윤희, 이채원, 정유진, 최지원, 김주은, 문해준, 박승범, 유예인, 김진우
같이 만든 사람들: 이나경, 장명공, 김진우, 김주은, 유예인, 소지인, 김우주, 김원, 정지애, 박기용, 김경관, 김권환, 한상규, 유수민, 이누해, 이두원, 임석현, 박정빈, 허태경, 고은상, 성진혁, 정수지, 이우정, 문혜준, 그리고 포스트핀(배급)
제44회 청룡영화상_청정원단편영화상 본선(2023)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_로컬시네마부문(2023)
춘천영화제 단편경쟁부문 선정(2024), 서울여성독립영화제(2024) 단편경쟁 선정 및 심사위원상 수상
우리들의 안녕에 주목한
정연지감독의 영화로운 시절을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100명의 마레가 산다'
단편영화 <안녕의 세계>를 시작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연재에 미숙해 브런치북 목록에 올리지 못한
브런치스토리 세 편의 글들을 옮기며
더해지고 덜어낸 이야기들.
이로써 단편영화 20편의 글과 맺음말까지
총 21편의 브런치북 연재 목록이 완성됐다.
이제 시즌1과의 굿바이 인사를 해야지.
안녕~
시즌 2에서 다시 만나자.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수요일 장마레의 브런치북.
시즌1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