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개성으로 인정하는 시대다. 당연했던 관습들은 구태의연하고 케케묵은 것들이 되어버리고 단어조차 생소한 것들은 물밀듯이 쏟아져 나온다. 어른의 섣부른 발언에 대해 꼰대라며 서슴없는 손가락질도 가능해졌고, 젊은이의 발언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위치가 되었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덕분에 다양한 의견에 대해 틀린 것이 아닌 다름이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다름을 인정하라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더불어 오해가 생겨났다. 다름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불편하다는 것을 말하기 어려워졌다. 불편은 틀림을 내포하고 있다고 인식이 됐다. 불편하다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공격을 받게 됐다. 무언가를 불편해할 자유를 빼앗긴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유연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누군가가 말하는 의견에 수긍을 하고 동의를 해야 한다. 자신의 의견은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틀림이 되니.
빼앗긴 들에 봄이 오는가, 다름을 인정한다며 끄덕이는 의미 없는 고갯짓은 자신의 의견을 털어버리는 몸짓이 되어버린다. 이것에도, 저것에도 고개를 끄덕이다 줏대 없는 사람으로 전락해 박쥐라며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다름과 다름이 만나 새로운 관점이 생겨난다.
다름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불편한 것임을 토로해도 괜찮은 순간이 찾아오길, 인정의 범위가 조금 더 유연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