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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Sep 12. 2022

선물의 의미

여행이 끝났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가? 나는 샤워를 할 때 비로소 깨닫는다.

집에서 쓰는 샴푸로 머리를 감고 바디 워시로 샤워를 할 때 익숙한 향기에 떠났던 정신이 돌아오고 비로소 집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난다. 나에게 향기란 익숙함, 정서의 문제이다. 그렇기에 향이 들어간 선물은 나에게 달갑지 않다.

사실 향뿐만이 아니다. 나에게 선물은 대단히 달갑잖은 것이다. 그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인가 싶겠지만, 선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선물을 고를 때 기뻐할 상대의 얼굴을 상상한다. 상대가 현재 필요한 것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건 상대에게 적잖은 피로감을 안겨 주는 행위이다. 다짜고짜 필요한 물건을 말하라는데 어찌 편안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게 너무 가정적이거나(세제나 물티슈 등) 사소한 것이라 부끄러워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가정해야 된다. 모든 인간은 E가 아니다.


나는 항상 선물이 부담스러웠다. 물건을 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옷을 사는 것부터 생필품까지 항상 여분까지 감안해서 사두기 때문에 그 이상의 물건은 나에게 부담이다. 작은 집에서 살 때부터 익혀진 이 습성은 넓은 공간으로 옮겨진 지금에서도 마찬가지다. 공간에 맞게 물건을 사면되는 거 아니냐는 반문도 들어봤지만 공감이 가지 않았다. 나의 범주를 벗어나 공간에 맞춰 물건을 사는 것이 맞는가? 그건 말 그대로 낭비 아닌가? 남은 물건을 닳을 때까지 모조리 사용할 자신이 있다면 괜찮다. 하지만 그것을 소모하는 동안 다른 물건을 모아댄다면 더 큰 낭비를 야기하는 행위이다.


선물은 자기만족의 산물이다. 거기다 상대의 기쁨까지 요구하는 것이니 어찌 보면 이기적인 행태로 볼 수도 있다. 당장 필요도 없는 물건을 선물로 받고 기뻐하는 연기를 해야 되니 고문에 가깝기도 하다.


모든 선물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가장 큰 기쁨과 감동을 주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마음이 담긴 선물이다. 단돈 몇백 원밖에 하지 않는 종이에 마음을 담아 적은 편지가 대표적인 예다. 같이 하루를 보내주는 것도 좋다. 상대의 마음이 온전히 느껴지는 모든 선물은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릿한 행복을 느끼게 한다.     

가까운 누군가를 축하할 일이 있다면 한 번쯤은 물질이 아닌 마음을, 순수를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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