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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Lu Mar 15. 2016

#5. 매몽점(買夢店) : 베이글 가게

"당신의 꿈을 삽니다"


#5.


“유럽에는 베이글 가게가 많아요. 가게 밖에는 철제 의자와 테이블을 두고, 안에는 아이스크림 가게처럼 유리로 된 선반에 야채들과 연어, 베이컨 같은 재료들이 들어있는 그런 샌드위치 가게들. 배낭여행자에게는 저렴한 가격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어요.”


노인 앞에 앉아있는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아슬아슬하리만큼 높은 남색 하이힐을 신고 검은색 바지 정장에 핑크색 스카프를 매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가는 목선이 훤히 드러날 만큼 짧게 자른 커트머리는 여자의 세련된 자태를 더욱 맵시 있게 보여줬다. 여자는 영화 [노팅힐]에 나오는 여배우처럼 크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빨간색 립스틱을 촉촉이 바른 입술을 크게 벌려 주변 사람들까지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그런 큰 웃음. 


“유럽 여행하면서 봤던 그런 가게였는데 꿈에서 나타난 걸 보면 아무래도 다시 유럽 가고 싶나 봐요.”


여자는 가게에 들어설 때부터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있었기에 노인은 찻잔을 한 잔만 채우고 여자의 마주편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음, 차 향기가 정말 좋네요.”


“한잔 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향기만 맡아도 좋아요.”


여자의 목소리에는 성숙한 여인의 향기가 묻어 있었다. 노인의 가게를 포함한 이 오래된 거리에 가장 어울리지 않을 듯한 존재였지만 여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꿈에서 저는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어요. 지금 사는 곳이 아니라 오래전 살았던 동네였어요. 산을 낀 동네였기에 언덕길을 올라야 집에 다다를 수가 있었죠. 하지만 차가 다니는 큰 일이었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 그렇게 외진 곳은 아니었어요. 꿈에선 늦은 시간이었는지 대부분의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인적도 드물었죠. 가로등 불만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을 때, 한 가게 눈에 들어왔어요.” 


여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노인의 진지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꿈을 자주 꾸는 편이 아니었기에 누군가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는 일도 처음이었지만, 상상했던 역술인 같은 노인이 아닌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노인의 모습과 가게 분위기가 여자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깜깜한 거리에 그 가게만 홀로 불을 환하게 켜고 영업 중이었어요. 가까이 가보니 가게는 그리스의 산토리니 분위기처럼 하늘색과 하얀색으로 페인트 칠했더라고요. 마치 디즈니랜드에나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랑스러운 가게였어요. ‘베이글 샵'이라고 써진 간판이 걸린 가게는 유럽 여행할 때 즐겨 찾던 그런 유럽 거리의 베이글 가게와 똑같았어요. 술집이 아닌 이상 그 어두운 밤에 영업을 할 일이 없는 가게인데 말이에요. 마침 출출하기도 했고 반가운 마음으로 가게로 들어섰어요. 유리 선반에는 싱싱한 야채들이 한가득이었어요. 양상추, 적양파, 브로콜리 샐러드, 크림치즈, 올리브 등. 전 패스트푸드를 좋아하지 않아요. 사람이 먹을 음식인데 사람의 손길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런 음식들을 먹는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인 것 같아요. 하지만 싱싱한 야채들과 신선한 재료로 정성껏 만드는 간단한 샌드위치는 정말 좋아해요. 시간도 아끼고 건강도 챙기고. 그래서 가게 안의 유럽식 분위기며 한 눈에 볼 수 있는 신선한 재료들이 눈 앞에 펼쳐지니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약간 들뜨기까지 했던 것 같아요.”


여자는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노인에게 말했다. 사실 여자 혼자서만 말을 이어가는 일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자에게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했는데, 사실은 여자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어떻게든 자기 자신에 대해 어필하기 위해 말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살고 있는 세상의 유행어는 ‘내가 말이야’였다. 


‘내가 말이야, 왕년에는’

‘내가 말이야, 검사 시절에는’

‘내가 말이야, 5층짜리 빌딩을 샀는데’


…….


하지만 여자는 개이치 않았다. 여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의 매력적인 웃음을 유지할 수 있는 자기만의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형편없는 인간들 사이에 앉아있어도, 형편없는 말들이 공중분해되는 상황에서도, 그녀의 빨갛게 칠한 입술 끝은 언제나 부드럽게 올라가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가게를 찾는 ‘내가 말이야’족들을 외로운 영혼들이라 생각했다. 그들에게 그녀는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영화 [노팅힐]에 나오는 여배우처럼 웃을 줄 아는 성모 마리아였다. 여자는 그 외로운 영혼들을 기꺼이 자신의 젖가슴에 품고 안아줄 수 있었다. 다만 가게 찬장에 세워진 값비싼 술들을 깨끗이 비워준다는 조건 하에서.   


“프런트 쪽은 좁은 편이었지만 안쪽은 카페처럼 정말 넓었어요. 가게 밖과 가게 안 사이에 마치 시차가 존재하는 것처럼 가게 안은 사람으로 가득했죠. 프런트에도 주문을 기다리는 사람과 베이글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어요. 주문을 하기 위해 저도 줄 끝을 찾아 섰어요. 드디어 제 차례가 되었고 유럽에서 즐겨 먹었던 연어 베이글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기다렸죠. 잠시 후 드디어 제 번호표가 불려졌고 신나는 마음으로 샌드위치를 받았는데 막상 베이글 사이에는 연어가 들어있지 않았어요. 종업원에게 말했더니 샌드위치가 잘못 나왔다면서 다시 만들어 주겠다고 했죠. 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제 샌드위치는 나오지 않았어요. 그동안 주문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 샌드위치를 받아 들고나가거나 카페 안 쪽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저 혼자 프런트에 서 있었어요.”


여자는 마치 영화 속 여배우처럼 침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꿈에서의 시간 개념은 좀 특이한 것 같아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만 혼자 그대로인데 주변의 풍경들은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그런 느낌처럼 말이에요. 한참을 기다렸더니 드디어 제가 기다리던 베이글이 나왔어요. 종이처럼 투명하게 썰은 얇은 양파와 양상추 사이에 연어가 가득 들어있었고 베이글 양 쪽에는 크림치즈가 발라 있었어요. 다시 포장지를 싸고 가게를 나서려고 하니 종업원이 절 부르더군요. 테이크 아웃이냐며. 가지고 가겠다고 말했더니 그럼 잠시 기다리라고 했어요. 종업원은 프런트 뒤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잠시 후 한 아이를 데리고 나왔어요.”


여자의 세상은 어른들의 세계였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었을 밤에 여자의 세상은 시작되었고, 여자의 가게에는 아이를 위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여자가 나누는 대화에는 아이에 대한 대화가 없었고, 여자 는 주변에 아이가 있는 사람을 마치 사람 형태를 띤 손이 많이 가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특이한 사람들 정도로 여겼다. 여자의 세상은 어른들의 세계였다. 완전한 어른들의 세계. 


“종업원의 손을 잡고 나타난 아이는 7살, 8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였어요. 헝클어진 머리와 낡고 때 묻은 옷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의 얼굴이었죠. 또래 아이들과는 다른 차가운 눈빛에 어딘가 소름 끼치게 생긴 얼굴…. 마치 보면 안 될 것을 봐버린 것처럼 온몸에 싸해지는 기분이 들 정도로 아이는 정말 무섭게 생겼었어요. 사실 얼굴이 기억나진 않아요. 괴물의 얼굴을 했다거나 뿔이 달린 것도 아니었지만, 그 아이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공포심은 아주 뚜렷이 기억나요. 종업원은 프런트를 지나 제 앞으로 아이를 데리고 왔어요. 저는 제가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종업원이 제게 말하더군요. 베이글을 가져가려면 이 아이도 함께 데려가야 한다고.”


 그런 여자의 완전한 어른들의 세계에 아이가 등장한 것은 그 꿈이 최초는 아니었다. 한 달 전, 여자는 전혀 생각지 못한 전화를 받았었다. 전화기 너머로 경찰이라고 밝힌 사람은 여자에게 경찰서로 방문할 것을 요청했다. 여자의 친언니에게 일어난 일 때문이라며. 지난 10년 동안 생사도 알지 못했던 친언니였다.  

여자는 언니를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집을 나오던 날 마지막으로 보았다. 부모를 일찍 잃고 언니가 시집가기 전까지 할머니와 함께 셋이 살던 집이었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형부는 장례식장마저 찾아오지 않았다. 장례식장 안쪽 방에서 잠시 눈을 부치던 여자를 언니가 깨워 앉혔다. 언니는 여자에게 간절히 말했다. 형부의 빚을 갚기 위해 할머니의 집과 슈퍼를 모두 팔게 도와달라고.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할머니는 작은 슈퍼를 운영하며 손녀 둘을 키웠다. 할머니의 슈퍼는 여자와 언니에게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었고 선반 하나하나에 할머니의 손길이 묻은 곳이었다. 여자는 어이가 없었다. 도박에 빠진 형부와 함께하는 언니의 절망적인 결혼생활은 지켜보기 힘들었지만 처음부터 반대했던 자신의 말은 조금도 듣지 않고 사랑에 눈이 멀었던 언니가 야속하기만 했었다. 여자는 검은 소복을 입은 언니에게 하늘이 무너져도 형부가 도박을 끊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어차피 빚을 갚아도 반복될 일이니 이혼을 하라고 말했다. 언니는 이번 빚만 갚으면 다시는 형부가 도박을 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했다. 빚이 있는 이상 형부는 계속 도박을 할 거라고, 그러니 빚만 갚으면 도박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여자는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할머니의 집과 슈퍼는 인간말종 형부의 빚을 갚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언니는 이미 여자가 할머니의 장례식을 지키는 동안 할머니의 서랍에서 나온 서류들로 집과 슈퍼를 부동산에 내놓고 있는 중이었다. 여자의 언니는 여자의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라 여자에게 통보하기 위해 말했던 것 이었다. 여자에게 할머니의 죽음은 세상이 무너지는 재앙이었지만 여자의 언니에게 할머니의 죽음은 기회였다. 자신의 남편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 여자는 그런 자신의 언니가 몹시 낯설었다. 할머니의 유골을 고향 앞바다에 뿌리고 돌아온 날, 여자는 자신의 얼마 되지 않는 짐들을 챙겨 집을 나왔다. 언니는 여자를 붙잡았지만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여자에게 언니는 죽은 사람이었다. 집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경찰서를 찾은 여자의 앞에 앉은 담당 경찰은 여자에게 언니와 형부가 아이를 옆 집에 맡긴 그날 밤 동반자살을 했다고 말했다. 여자가 이름조차 모르는 조카는 다음날 아침, 옆집 아줌마가 화장실 간 사이를 틈타 아빠가 항상 숨겨두던 비상키를 꺼내 집으로 들어갔고 안방 허공에 매달려있는 자신의 엄마와 아빠를 발견했다. 침착한 목소리로 엄마, 아빠가 죽었다고 119에 전화한 것도 아이였다. 119 요원들에게 대문을 열어주고 안방이 어디인지 안내한 것도 아이였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시신이 실린 들것이 지나갈 때 자신을 뒤돌아 세워 못 보게 하는 옆집 아줌마가 신기했다. 이미 다 봤는데. 이제 와서 무엇을 못 보게 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경찰의 용건은 간단했다. 연고가 없는 조카를 데려가 맡아줄 수 있는 것이었다. 도박에 미쳐있었던 형부는 고아였고 그나마 언니의 동생이었던 여자가 유일한 친척이었다. 하지만 여자의 세계는 어른들의 세계였다. 거기에 아이를 위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여자는 자신의 앞에 앉은 경찰이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 생각했다. 


“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어요. 베이글을 가져가려면 아이를 데려가야 한다니. 장난이 지나치다고 말했죠. 하지만 종업원은 완고했어요. 아이를 제 앞으로 떠밀었어요. 그제야 종업원이 진지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렇다면 베이글을 안쪽에서 먹고 가겠다고 말했더니 종업원이 한번 가지고 가겠다고 결정했으면 바꿀 수 없다며 테이블 쪽으로 앉으려는 저를 막아섰어요. 테이블에 앉아 베이글을 먹던 사람들이 모두 저를 바라보더군요. 몇몇은 일어나 제가 서있는 곳으로 걸어왔어요. 멀리서 ‘데려가’라고 말했어요. 사람들은 점점 한 목소리로 저에게 ‘데려가’ ‘데려가’ ‘데려가’라며 외쳤어요. 목소리는 점점 하나로 모아졌고 가게 안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저에게로 다가왔어요. 몇몇의 손에는 베이글을 먹던 포크와 나이프가 들려있었어요. 베이글 하나를 가져가기 위해 아이를 데려가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설명했지만 왜 좋은 일을 하지 않는 거냐며, 선행을 베풀라고 말하더군요. 저는 베이글을 바닥에 던지고는 뒤돌아 가게를 나가려 했어요. 하지만 이미 가게 문은 사람들이 막아서고 있었어요. 종업원은 베이글을 주워 저에게 다시 건네며 말했어요. ‘선행을 베풀어’ 종업원의 말이 메아리 되듯 사람들은 그 말을 되풀이하며 말했어요. ‘선행을 베풀어’ ‘선행을 베풀어’…. 몇몇이 절 잡아끌어 가게 안으로 밀었어요. 어떻게는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사람들은 저를 둘러싸고 마치 좀비처럼 제 목을 쥐려고 했죠. 계속해서 같은 말을 하면서…. ‘선행을 베풀어’ ‘선행을 베풀어….’ 지독한 악몽이었어요.”


노인은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좋은 꿈이든 싫은 꿈이든 꿈은 꿈일 뿐이라는 것이 꿈의 장점 같아요. 끝이 있잖아요, 꿈에는. 아무리 지독한 악몽 이어도 꿈에는 끝이 있어요. 꿈에서 어떤 결정을 내린다 해도 꿈에서 깨고 나면 현실에는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죠. 하지만 현실은 다르잖아요. 선택 하나하나가 삶에 끼치는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아요. 매 순간의 선택들이 인생의 넥스트 스텝을 결정하니 결코 쉬울 수가 없어요.”


“그렇기에 인생이 꿈보다 더 재밌는 것 아닐까요. 선택에 대해 후회가 든다면 그 선택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 또한 가지고 있으니까.” 


한 달 전, 여자의 선택은 분명했다. 그 아이는 받지 말아야 하는 아이였다. 여자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만약에’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여자의 세계에 아이가 들어올 틈은 없었다. 꿈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목을 죄며 말하던 ‘선행을 베풀라’라는 말은 동화 속에나 존재할 법한 이야기였다. 마땅한 도리라 말해도 의무로 인한 선행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일이었다. 여자는 아이를 자신의 오피스텔로 데려올 수가 없었다. 아이가 잠든 시간 동안 아이를 혼자 두고 가게에 나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가게를 접을 수도 없었다. 아이의 교육이며, 성장이며, 무엇하나 아이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사실 여자는 여기까지 생각지도 않았다. 경찰의 말을 듣자마자 여자는 불가능하다 말했다. 여자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여자는 경찰이 쓸데없는 말들로 여자를 설득하게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아저씨도 아이를 데려갔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여자는 질문을 던지고도 자신의 꿈속의 아이를 말하는 것인지 어디로 갔을지 모르는 언니의 아이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글쎄요. 아이가 베이글의 사은품도 아니고 가볍게 데려갈 수는 없는 일이죠. 아무리 불쌍한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좋은 일이라 해도 그 일을 강제로 해야 하는 것은 손님에게도 아이에게도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경찰서에 다녀갔던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함께 일한 가게의 바텐더에게 조차 말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여자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누구의 조언도 들을 일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여자 앞에 앉은 노인이 여자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었을 때 여자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안도감도 위로도 아니었다. 그녀는 적어도 아이의 이름이라도 물어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서랍에서 첫 번째 봉투를 꺼내 들었다. 여자는 노인을 보며 물었다.


“왜 꿈을 사시는 거예요?”


“손님은 꿈에 끝이 있다고 하셨죠.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꿈은 영화나 소설처럼 엔딩이 존재하지 않아요. 대부분의 꿈 이야기는 중간까지만 있어요. 어찌 보면 엔딩이 존재하지 않는 허무한 이야기지만, 그렇기에 우리 삶과 가장 가까운 이야기라고 생각 듭니다. 우리의 지금은 언제나 인생의 중간이지요.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인생의 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이 어제와 내일의 사이에 있듯이. 그래서 저는 영화나 소설보다 꿈 이야기가 더 재밌게 느껴집니다. 서점에서 소설책을 사듯,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표를 사듯, 그저 그렇게 꿈을 사는 겁니다.”


“금액이 적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나요?”


“아직까지 돼지꿈을 판 사람은 없어서 그런지 그런 불평은 들어본 적이 없네요.”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여자는 노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가게 문을 나섰다. 


며칠 후, 여자는 다시 경찰서를 찾았다. 경찰은 아이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준. 여자의 언니가 어렸을 때부터 나중에 태어날 자신의 아이에게 지어주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던 이름이었다. 여자의 가슴으로 그렇게 사랑했을 아이를 두고 왜 그렇게 떠나야만 했는지 싶은 언니에 대한 원망과 함께 익숙한 아이의 이름에서 전해지는 알 수 없는 애정이 솟아올랐다. 여자는 경찰에게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건네며 자신의 조카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제 선택은 조카의 몫이었다. 조카 역시 생면부지의 이모와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경찰서를 나온 여자는 부동산을 찾았다. 지금의 오피스텔에는 아이가 짐을 풀 수 있는 방이 없었다. 

 

여자의 어른들이 세계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그것은 여자의 선택이 가져온 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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