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cyLu Aug 21. 2018

매몽점 #7 : 물고기 인간

당신의 꿈을 삽니다

#9.

“문을 좀 열어두어도 될까요?”


남자는 등 뒤로 문을 열어둔 채 노인에게 물어보았다.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의 꼬리처럼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남자의 등 뒤로 따라 들어와, 노인의 뺨을 부드럽게 스쳤다. 노인은 긍정의 의미로 남자에게 연한 웃음을 건네며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냄새가 나거든요.”


남자의 목소리는 산속에서 재잘거리는 풍경소리처럼 맑았지만, 그가 건넨 말에 노인은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남자가 가게로 들어서자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어디선가 생선 비린내 비슷한 냄새가 가게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병 때문이라 어쩔 수가 없네요.”


남자는 차분한 표정으로 노인에게 말했다. 사람들의 불쾌한 표정은 남자에게 익숙한 표정이었다. 사람들이 남자를 바라보는 그 날카로운 시선은 남자가 세상을 지각하기 시작한 나이부터 지금까지 평생에 걸쳐 모든 기억 속에 함께해온 풍경이었다. 다만, 익숙해진다는 것과 무뎌진다는 것은 달랐다. 노인은 남자의 덤덤한 말투 속에서 그의 삶 속에 쌓여온 고단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남자에게는 비릿한 생선 냄새가 났다. 하지만 수산시장이나 부둣가에서 맡을 수 있는 그런 생선 비린내와는 달리, 코를 찌르는 쉰내도 섞여 있는 냄새였다. 부패한 생선의 냄새를 맡아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냄새에 가까웠다. 노인은 남자에게 차를 건네며 말했다.


“많이 불편하시겠습니다.”

“그렇죠. 가족들도 힘들어하는걸요.”

“아니, 손님이요.”


남자는 잠시 노인을 바라보며, 문득 학생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려서부터 몸에서 악취가 났던 남자였기에 초등학교를 입학하자마자 남자의 집은 다른 학부모들의 전화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얘를 왜 안 씻겨 보내냐고, 자기 자식이 집에 와서 불평한다고. 남자의 엄마는 아침, 저녁이고 남자의 온몸 구석구석을 여러 번 비누칠하며 남자를 씻겼다. 하지만 그 어떤 방법도 남자의 악취를 씻어내지 못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치여 지친 채 집에 돌아온 남자는 안방에서 목소리를 낮춘 채 전화기에 대고 연신 사과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벽을 통해 들으며 울다 지쳐 잠들었다. 남자의 모든 주변 사람들이 남자로 인해 불편해하고 있었다. 엄마 역시 남자 때문에 매일 밤 항의 전화를 받아야만 했다. 남자는 세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단 한 번도 세상이 아닌 남자 자신이 받는 불편함에 대해서 돌아본 적이 없었다. 그럴 여유도 없었다.   


 담임선생님이 항상 교실에 있었던 초등학교는 그나마 버틸만했다. 중학교에 진학한 남자는 입학한 첫날 점심시간이 끝나기도 전, 쓰레기통을 뒤집어쓴 채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쓰레기 냄새와 자신의 악취에 범벅이 된 남자를 껴안고 남자가 원한다면 학교에 가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다. 남자는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조용히 끄덕였다.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남자의 엄마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남자를 직접 가르치기 시작했다. 남자는 엄마와 함께 공부하는 것이 즐거웠다. 엄마의 교실에는 남자의 머리 위로 쓰레기를 던지는 아이들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화를 내는 학부모도 없었다. 하굣길에 마주해야만 했던 코를 부여잡고 눈을 찡그리는 행인도 없었다. 


“꿈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좀 낯서네요. 시작도 끝도 없는,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지만 왠지 이곳에 와서 이야기하면 속이 후련할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노인은 인자한 미소로 남자의 말에 답해주었다. 노인의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열린 문 사이로 조용히 들어오는 바람 때문인지 남자는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가끔 꾸는 꿈인데, 마치 조금씩 이어 가는 이야기처럼 꿈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갔다가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그런 꿈이었어요. 최근 몇 년간은 꾼 적이 없어서, 조금 그립기도 한… 그런 꿈이죠. 꿈에서 저는 아주 깊은 물속에서 깨어나요. 바람 소리나 새소리, 파도 소리조차도 닿지 않을 만큼 아주 깊은 물 속이죠. 하지만 숨을 쉬는 것이 어렵진 않아요. 처음 그 꿈을 꿨을 때는 가위를 눌린 것처럼 꿈에서 깨어난 후 가슴이 답답했는데, 몇 번 비슷한 꿈을 연달아 꾸고 난 후로 제 호흡도 그 꿈에 익숙해진 것 마냥,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숨쉬기가 어렵지 않았어요. 아주 깊은 물속에서 편안히 숨을 쉴 수 있다는 경험은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아주 놀라울 만큼 황홀하죠. 마치 그 누구에게도 없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가진 그런 기분이라고 할까요? 물론 평생 남들을 피하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기는 했지만, 기분이 나쁠 필요가 없는, 미안할 필요도 없는 그런 능력이니 슈퍼맨이 된 듯한 그런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마치 좀비를 피해 도망치듯 숨죽이고 사는 그런 기분 아세요? 크게 하품을 제대로 뱉어본 적도, 한숨을 깊이 내쉰 적도 없이 살아왔어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하려고, 말 그대로 숨죽인 채 살아왔는데, 그 꿈에서만큼은 정말 가슴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답답했던 모든 숨을 깊이 내뿜으며, 큰 소리로 숨소리를 내며, 내 코에서 터져 나오는 공기 방울을 느껴보며 그렇게 말이죠.”


남자가 23살에 미국으로부터 날라 온 진단서를 받았다. 약 1년을 기다려온 진단서였다. 


[트리메틸아민뇨증(Trimethylaminuria) : 일명 생선악취증후군] - 양성 판정


치료법은 없었다. 하지만 남자에겐 위로가 되는 진단서였다. 병이었다. 병이었을 뿐이었다. 병이라는 진단이 이렇게 반갑고 위로가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날 밤 남자와 남자의 엄마는 서로 부둥켜안고 몇 시간을 울었다. 


생선비린내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이 병은 대사 과정에 이상이 있어 생기는 희소질환으로, 생선이 썩은 듯한 냄새를 내는 트리메틸아민이라는 화학물질이 환자의 소변이나 땀, 그리고 호흡에서 과다하게 분비되어 악취를 유발하는 병이었다. 유전질환이라는 의사의 말에 남자의 엄마는 가슴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혹시나' 싶었지만 아니기를 바랐다. 남자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며,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다. 내 잘못도 아니고 엄마의 잘못도 아니라고.


"꿈에서 깨달았던 것인데 물속에서는 냄새를 맡을 수가 없어요. 물론 알고는 있었지만 물에 들어가면 숨을 참기 바쁘지, 냄새를 맡아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니, 물속에서는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것이 궁금할 일도 아니었죠. 하지만 꿈에서 그것을 깨닫고 나니 감격에 차오르더라고요. 내가 냄새를 맡을 수 없다면, 이 속에 있는 모든 생명체도 내 냄새를 맡을 수 없겠구나 싶어서요. 완전한 자유. 저는 물고기가 되는 그 꿈을 그렇게 불렀어요. 이것은 완전한 자유다. 완전한..."


검정고시를 치고 나서 남자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싶었다. 대학교에 가야 할까? 아니 학교 자체를 가지 못해 집에서 공부해왔는데, 이제 와서 무슨 학교에 가겠다는 거지.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몇 년 동안은 검정고시를 합격한다는 목표가 분명했었다. 하지만 그 몇 년 동안 검정고시 다음의 행보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모두가 같은 길을 걸어가듯 수능을 봐야 하는 것일까. 수능을 보고 나면, 대학을 가야 하는 것일까. 대학을 가면 나는 다시 쫓겨나 집으로 돌아오겠지. 나는 어디에 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어디에 속해있는 것일까. 


"매번 그 꿈을 꿀 때마다 더 깊이 들어가려고 온몸으로 수영을 했던 것 같아요. 아주 깊이 들어가서 다시 물 밖으로 나올 수 없을 만큼 깊이 말이죠. 물속으로 깊이 들어가려고 할 때마다, 피부를 스치는 물의 느낌은 마치 비단 같아요. 비단으로 만든 이불을 온몸으로 둘둘 말아 아주 푹신한 침대 위에서 몸을 조금씩 움직이는 그런 느낌이죠.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 허리를 움직여서 조금씩 더 깊이 들어가다 보면 햇살에서조차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죠. 빛이 자취를 감출 만큼 깊이 들어오고 나면 다시 몸을 뒤집어서 물 위를 쳐다봐요. 물속에서 마주치는 물고기들은 굳이 저를 피하지 않아요. 가끔은 아주 가까이 까지 다가왔다가 지나가기도 하죠. 그저 지나가는 행인 1이 되는 기분. 나의 존재가 익명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 길을 걷든, 버스를 타든, 어느 곳에 있든 모두 뒤를 돌아보거나 옆을 쳐다보며 주목받게 되는 현실과는 정반대의 장소. 그때 저 멀리 바닥에 조금씩 부서져 가는 낡은 배를 발견했어요. 저기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허리를 움직여 더 깊이 들어가 보았죠."


남자는 검정고시 합격을 확인한 후, 고민 끝에 바닷가로 여행을 떠났다. 집에서 그렇게 멀리 떠나온 적은 처음이었지만, 꿈에서 만났던 그 바다를 현실에서도 만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검정고시를 마치고, 방황하는 남자를 걱정했던 남자의 부모는 남자의 결정에 아무 말도 더하지 않았다. 남자는 기차에 올라타 도착지에 도착할 때까지 승객 칸과 화장실 칸 사이의 출구에 있는 간이 의자에 앉았다. 자리는 불편했지만, 화장실 칸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남자의 악취에 대한 핑계를 가질 수 있어 마음은 편했다. 오가는 사람들이 '이게 무슨 냄새지?'라고 한 마디씩 던질 때가 있기는 했지만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인가 하며 원인을 남자에게서 찾지 않았다. 남자는 자신이 속한 곳이 승객 칸이 아니라 화장실 칸이라는 사실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남자의 눈 앞에 펼쳐진 바다는 몹시도 눈부셨다. 부모와 몇 번 바닷가를 와본 적은 있지만, 학교를 그만둔 후로 이렇게 혼자서 바닷가를 찾아와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집에서 이렇게 먼 곳에서 혼자가 되어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먼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남자의 몸 구석구석을 어루만져주었다. 바다는 남자의 냄새를 개의치 않아했다. 바다는 남자를 불편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바다에 도착한 남자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물속에서 오랜 시간 방치된 듯한 배는 이미 원래의 모습보다는 바다의 일부분 같은 모습으로 많이 변해있었어요. 어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소형 어선 같았는데, 구석구석 낀 이끼며, 여러 곳이 부식되어 부서진 상태여서 오랜 세월 동안 그곳에 있었나 싶었죠. 혹시나 배가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지만, 문과 문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물고기들을 보니 저도 들어가 보고 싶더라고요. 갑판을 지나서 선실로 향했죠. 오랫동안 헤엄을 쳐서 그런지 다리의 움직임이 약간 달라진 느낌이 들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어요. 거기는 물 속이었고, 제가 두려워할 것이 별로 없는 듯한 그런 해방된 기분이었으니까요. 선실로 들어가는 문은 이끼가 잔뜩 껴 있었지만, 문이 반쯤 열려 있어 들어가기에 어렵지 않아 보였어요. 문틈 사이로 지나가려는 순간, 내가 이렇게 날씬했나? 여기를 이렇게 쉽게 지나가다니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뒤돌아 문을 보려 했는데, 목이 돌아가지 않았어요. 목이 이렇게 움직여지지 않는 거죠. 신기하게도."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깨를 갸우뚱하며, 노인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뒤를 돌아볼 수가 없더라고요. 몸을 움직여보려 했는데 마치 가위눌린 것처럼 몸도 뒤로 돌릴 수가 없었어요. 어딘가 분명 이상했어요. 그 순간, 선실에 걸려있던 거울을 보게 되었어요. 맙소사, 거울 속에는 물고기가 있었어요. 제가 아니라, 물고기 말이에요. 아주 커다란 눈을 끔뻑끔뻑 깜빡이는 물고기 말이죠. 하하.."


남자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게 전부라는 듯이 말을 멈추고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노인은 남자가 처음 꿈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내심 의아스러웠다. 흔히 이 정도 냄새가 나는 질병을 가졌다면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심각한 피해의식과 공황장애가 생겼을 만한데도 남자는 평범한 사람에게도 없을 평온함을 갖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강력한 무언가가 남자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을 믿는 것일까? 그에게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남자가 말이 없자 노인이 조용히 물었다. 


"아까, 요즘은 그 꿈을 꾸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언제부터 그 꿈을 꾸지 않았나요?"


"아... 부끄럽지만 지금의 와이프랑 처음 같이 자던 날부터였던 것 같아요. 꿈속에서 물고기인 나를 보고 깜짝 놀라 잠에서 깼는데, 그녀가 제 손을 잡아주더군요. 여기 이 명치부터 마치 제 영혼까지 그녀의 손이 닿아 꿈에서 저를 쑤욱- 꺼내 올리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어요. 더는 그 꿈으로 도망가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그녀는 꿈속에 빠져있던 저를 현실 밖으로 꺼내 올렸어요.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었어요. 그저 움찔한 저를 무의식적으로 손을 잡아줬던 것뿐이죠. 하지만 그녀가 제 손을 잡아준 순간 앞으로 제 인생이 아주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그날 밤 아주 오랫동안 제가 혼자 울었다는 것을 그녀는 아직도 모르고 있죠."


 남자의 신부는 15살이 되던 해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 어부였던 아버지는 남자의 신부와 남동생만을 옆집 아주머니에게 맡긴 채 몇 달씩 돌아오지 못하는 배를 타고 바다로 향해야 했다. 남자의 신부는 어려서부터 수만 번 아버지의 배가 돌아오지 않는 상상을 해왔었다. 너무나 무섭고 끔찍한 일이라 상상조차 두려웠지만, 아버지가 집 밖을 나설 때마다 그녀의 상상은 아버지가 다시 문을 열고 돌아오는 순간까지 몇 날 며칠 밤이고 반복됐었다. 그 상상이 현실이 되던 날, 남자의 신부는 나름 수많은 상상을 토대로 준비가 되어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상상은 무의미하고 준비란 존재하지 않는 거였다. 혼자가 된 남자의 신부는 옆집 아주머니의 식당 일을 도우며 남동생을 뒷바라지 해왔다. 바닷가에 있는 식당답게 여자는 매일 생선을 손질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여자의 손에는 생선 비린내가 깊이 배어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손이 부끄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여자의 하루를 짧았고 여자는 매일 피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식당 근처 공사장에 새로운 잡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사장과 연계를 맺고 있었던 식당으로 얼굴 가득 거뭇거뭇 흙이 묻어있었지만 웃는 미소가 따뜻한 젊은 남자였다. 여자의 하루는 조금씩 달라졌다. 매일 무겁고 피곤한 하루가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여자는 아침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어려서부터 집안 가득 생선 비린내가 풍기기 시작하면 아버지가 돌아오셨다는 안도감에 다시 깊은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고 했어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악취이고 괴로움이고 불편한 제 냄새가 아내에게는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향기라고 하니 참 아이러니하죠. 다음 달이면 아들이 태어나요. 그 아이도 저처럼 냄새가 날까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유전병이라 그럴 확률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니까. 처음 아내가 임신테스트기를 보여줬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설레고 기다려져요. 저와 같은 병이 있다면 아이에게 쉽지 않은 세상이 되겠죠. 제가 지금까지 겪어온 모든 과정과 시선이 기다리고 있는 세상. 하지만 머리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그런 용기가 생겼어요. 아이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이 외로운 세상을 지금까지 살아온 제가 있고, 그 세상을 온몸으로 안아줄 아이의 엄마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 정도면 잘 버텨왔구나, 잘 참아왔구나, 살아있길 잘했구나 싶어요. 사람이 꼭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말처럼요."


남자는 찻잔에 남은 차를 한 번에 모두 마셨다. 오랜만에 나온 육지에는 이제 남은 볼일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이 가게 이야기를 본 후로, 남자는 잊고 살았던 꿈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다. 노인은 그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좋은 상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 값이라고 건네는 노인의 하얀 봉투를 받고 남자는 가게 문을 나섰다. 꿈 이야기를 하고 나니 오래된 친구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 어서 물가로 내려가 바닷속으로 시원하게 몸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작은 바닷가 마을. 남자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번 이야기는 아래 글을 읽고 매몽점의 한 이야기로 풀어 보고 싶어 써낸 글입니다


http://haezuk.com/humor/86988


매거진의 이전글 #6. 매몽점(買夢店) : 날다, 앵무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