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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맘 Feb 28. 2021

아빠는 여행 중

다시 여행을 한다면, 낙타를 타고 달에 가듯이-

아이 아빠는 휴가를 떠났다. 각자 삼십여 년을 혼자로 살아오다가 어느 날 둘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셋이 되었으니, 결혼 이전의 삶이 얼마나 그리울지 가늠이나 되겠는가. 아이 출산부터 지금까지 줄곧 둘이서 합을 맞춰 키워온 탓에, 누구 하나 쉴 틈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또 그 덕에 누구 하나 지쳐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 리프레시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제주에 있는 몇몇 에어비엔비를 알아보던 중, 정말 머무르고 싶은 공간을 발견했다. 일정을 물어보고 가격을 듣고 아차차 싶어 아기가 한 명 있는데 괜찮냐는 말에, 주인은 아이가 머무르기엔 부적절한 공간이란 답을 보내왔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 당연히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내 섣부름이 부른 섭섭함이겠지만, 아쉬움이 꽤나 오래 남았다.


​그럼 나 혼자서 하루만 다녀오면 안 되겠냐는 말을 꺼냈다가 가벼운 다툼에 이르기까지. 출산 후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란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고 이토록 어렵다. 이후로도 부쩍 잦아진 다툼에 지치기도 했고, 일에 파묻혀 조금의 틈도 없어 보이는 남편이 안쓰러워 삼일 정도 여행을 다녀오는 게 어떠냐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게 말이 되냐며 한사코 거부하던 남편이 어젯밤엔 문득 여행권을 쓰겠다는 것. 일박 이일로 쉬고 오겠다고 하기에, 이박 삼일은 돼야지! 하며 흔쾌히 다녀오라 말했지만, 가슴 한편에 헛헛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아가는 잠들고 남편은 없는 이 시간, 무알콜 맥주 한 캔을 세워두고 나 또한 오래간만에 밤의 적막함을 마주한다. 한동안 여행이란 단어를 떠올려본 적이 없다.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금 여기가 이토록 편안하고 행복하니 굳이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최근 들어서부터는 종종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난다. 왜 그럴까- 불행한가, 만족스럽지 못한가 등등 그 답을 찾아가 보면, 답은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내게 여행이란 혼자 걷고 또 걷고, 보고 먹고 듣고 느끼고 그리고 쓰는 시간을 말한다. 근데 혼자의 시간이 이제는 아득해졌다. 여행이 떠나고 싶을 때 하지만 상황상 떠나지 못할 때 하는 나만의 방법들이 있다. 가고 싶은 지역을 배경으로 그린 영화를 본다던가, 혹은 내가 다녀온 곳이라면 그 장소의 사진과 그날의 일기를 본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이 적막함이 그날의 밤과 닮아있는 모로코에서의 시간을 잠시 불러온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여행지에서 제주로 떠나오기 전날 밤의 일기다.


2017.02.11

사막의 밤을 동경한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 내가 내딛는 발자국이 길이 되고 행여 무서워 뒤를 돌아보면 유일한 달빛이 더 가도 좋다고, 다시 돌아와도 좋다며 나의 길을 위로하던 밤. 하루 종일 옥상에 앉아 하염없이 사막의 곡선에 시선을 두고 있던 내가 심심해 보였는지, 친구는 자신의 고독의 여정을 보여주겠다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오직 달빛만 내려앉은 사막의 곡선을 달리고 달려 우리는 모난 것 하나 없이 둥그런 세상 속에 도착했고 그 안에 파묻혀 맥주를 마셨다. 이대로 내달리면 닿을 것 같던 보름달을 보며 친구는 말했다. '보름달 뜨는 날이면 내 낙타와 함께 달에 가고 싶어.' 순수하고 아름다운 친구의 말에, 앞으로 만날 보름달 곁에는 어느새 달에 다다른 친구와 그의 낙타가 환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다.

여행의 기억, 누군가와 즐거운 식사를 함께 한 시간, 누군가에게 상처받았던 날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흘렸던 눈물. 어쩌면 기억의 모든 것은 사람과 연관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머나먼 타국에서의 한 해가 뜻깊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갈 올 한 해도 모든 날을 생생하게 살아가고 싶다. 마주할 일상을 또다시 흘려보내게 될까, 생의 기쁨을 모르는 기계가 되어버릴까 봐 두렵지만, 생생하게 기억에 남을 날들을 살기 위해 노력하자. 단 하루도 헛되이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언젠가는 365일을 모두 채색하는 날이 왔으면 한다. 그리고 꼭 이곳, 사하라로 다시 와야지. 또다시 햇살에 반짝이는 모래언덕을, 쏟아질 듯한 밤하늘 별들의 향연을, 해 질 무렵 핑크빛으로 물드는 사막 위의 도화지를, 순수한 이곳 사람들 아니 친구들의 눈망울을 만나고 싶다. 올겨울 다시 이곳으로 오자. 아니 올해가 아니라 늦어지더라도 그때는 배낭 하나 둘러메고 가볍게 오자. 낙타를 타고 달에 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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