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맘 Jun 25. 2021

 행복은 여기저기, 줍는 사람이 임자

이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삶이 되는 거라면,

생일에 뭐 하고 싶냐는 남편의 질문에, 물어 뭐 하냐는 표정을 지으며 ‘혼자 있고 싶어!’라고 냉큼 답했다. 결혼 전부터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했던 나로서는 출산 이후 지금까지 내 나름 알뜰살뜰히 혼자만의 시간을 벌어왔다. 남편이 집에 있을 땐 한두 시간 정도 카페에 간다던지, 남편이 일이 있을 땐 유성이를 업고 숲에 간다던지. 걷다 보면 잠들고 마는 아이를 옆에 내려놓고 잠깐의 내 시간을 즐긴다던지 하면서 말이다. 근데 어찌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는데, 요즘 내 시간을 내기가 영 쉽지 않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박 2일 정도면 딱 좋겠는데.. 그건 불가능하겠지?

그럼 하루 반나절이 생긴다면 뭘 하면 좋을까. 오랜만에 걸을까? 숲에 갈까?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하루 종일 책을 읽을까 아님 골목골목 서성여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매번 답이 나오기도 전에 지쳐 잠들곤 했다


그러다 오늘이 온지도 모르게 생일날이 와버렸고, ‘오늘 어떻게 할 거야? 혼자 뭐 할 거야? 차 필요해?’ ‘갖고 싶은 건?’ 하며 자꾸만 궁금해하는 남편의 말에, 왠지 거창한 계획을 말해줘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꼈지만 사실 아무런 계획도, 갖고 싶은 것도 없었다.

‘별 계획 없어- 갖고 싶은 것도. 그냥 그때그때 하고 싶은 대로 할게’ 하며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한 주의 아침을 시작했다. 아이 등원 후, 어린이집에 보낼 아이의 여름이불을 사러 번화가로 나섰다. 수국 사이로 고개 내민 수레국화를 보니 여름이 오고 있구나- 싶었다. 걸어가는 길의 시작부터 좋아하는 카페의 부름이 들려왔다. 작은 정원을 정성껏 가꾸는 브런치 카페인데, 6차선 도로가 옆에 붙어 있어 차 지나다니는 소리가 쌩쌩 들려오는데도 이 안에 있으면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은 고요한 곳이다.

 ‘아니야. 유성이 낮잠시간에 맞추려면 지금은 이불이 더 중요해!’ 하는 말이 카페를 지나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 스무 걸음 정도 갔을까. ‘그래도 생일인데, 밥은 먹어야지~’하는 목소리가 결국 이겼다. 소담한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애정하는 자리에 앉아 건강한 아침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걸어서는 처음 둘러보는 번화가. 구시가지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골목골목은 오래된 상점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오랜만에 시간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으로 사잇길들을 비집고 다녔다.



여기까지가 혼자만의 시간의 마지막 기억이다. 분명 혼자 있고 싶었는데 어느새 남편 손을 잡고서 짜장면 두 그릇을 비우고 있었고, 일터로 가 내일 장사 준비를 하다가 하원하는 아이에게 달려가 환한 미소를 주고받고 있었다. 분명 혼자 있고 싶었는데.. 어느새 셋이 되어 저녁엔 바다로 갈까 숲으로 갈까 고민하는 게 자연스레 이어졌다.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 셋은 가까운 자연 안에 머무르다가 또 밥시간이 되어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진심으로 회에 소주 한잔이 땡긴다며 어머니 찬스를 써? 말어?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은 집 베란다에서 초밥에 무알콜 맥주를 부딪히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남편은 옆에서 행복이 이런 거지 뭐!, 나는 덩달아 그래 너무 좋아 너무 좋아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집이 좋아서 그런가, 동네가 편안해서 그런가? 전에 살던 집은 생각도 잘 안나‘ 남편이 말했다.

-그래? 나도 서귀포 생활이 참 좋아. 바쁜데 여유로워. 근데 가끔씩은 우리 셋 함께 누워 장난도 치고 뒹굴거리던 좁은 안방이 그립기는 해. 이상하게 그 방만 생각하면 되게 따뜻해져 온다? 참, 그 영상 기억해? 여보가 책 읽어주고 유성이가 추임새 넣듯 앙앙! 멍멍! 하던 그 영상 말이야. 분명 너무 좁아서 엉덩이 붙일 곳도 없던 거실인데, 그래서인지 셋이 더 붙어 앉아 밥 먹고 놀 수 있었나 봐. 좁아서 옹기종기. 그에 비해 여긴 너무 넓어.’ 조금씩 어스름이 묻어나는 하늘을 보며 내가 답했다.

‘그래? 그럼 재계약은 하지 말지 뭐.’라는 남편의 말에, ‘아니야 근데 난 또 이사 갈 자신은 없어.’ 라며 피곤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이가 얼마 남지 않은 장국을 엎는 것으로 만찬이 끝났다.

‘이제 생일이 다 끝나가는데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음, 있어. 갑자기 생각났는데 침대! 얼른 옮겨서 오늘부터 셋이 같이 자자!’

이사 온 지 두 달, 패밀리 침대로 붙여서 쓰던 침대가 안방에 다 들어가지 않아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때 이른 각방을 쓰고 있던 우리 부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거실에서라도 함께 자자며 침대를 옮기기로 한지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청소도 못하는데 침대를 옮길 수 있을 리가. 오늘따라 웬일인지 남편의 입에서 선뜻, ‘그래 좋아!’라는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시곗바늘이 아홉 시를 향해가는데 우리는 또 일을 벌였다. 항상 이렇게 마지막까지 남은 에너지를 쭉쭉 쥐어짜 써버리고 마는 성격들. 하필 줄자는 또 어딜 갔는지, 인간 줄자랍시고 냅다 뻗어버리는 모습을 보며 한바탕 배를 잡고 웃었다가, 매트리스를 들고 이 방 저 방으로 돌아다니며 먼지를 얼마나 마셨는지 모른다. 아이는 얼른 끝내고 자고 싶은 부모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트리스를 내려놓을 때마다 뛰놀며 어찌나 신이 나 하는지. 코미디 같은 침대 소동을 끝마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도 넓어진 침대에 세 식구 나란히 누우니 이사 오기 전, 꼭 붙어자던 안방 생각도 나면서 마음이 괜스레 따스해졌다.


 성인이 되어 낮은 자존감으로, 사회에 발을 내딛을수록 점점 쪼그라드는 자신감으로 힘들어하던 때가 있었다.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뒤따라 가야만 하는 것이 못마땅하기도 했고 주저하다 보면 자꾸만 뒤처지는데 그건 또 불안하고. 스스로 가야 할 길을 찾아야 했고 그 길을 가겠다고, 또 가고 있다고 주위 사람들을 납득시키기도 해야 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발이 닿은 제주라는 이곳에서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아주는 사람들 곁에서 함께 성장했다.

마음 한켠에서는 ‘도대체 나한테 왜 이리 잘해주는 거야.’ 하며 호의를 의심하기도 했고, 마음이 부담스러워 ‘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잘하는 것도 없는데 내가 여기에 어울릴까’ 스스로 끊임없이 되묻기도 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분명 행복의 속삭임이 도처에 널려있었을 그때에도 나는 자격지심에, 완벽주의의 덫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하루들이 쌓여, 정말이지 겨우겨우 지금까지 왔다.


‘행복하게 해 주세요. 달님 별님 햇님 하느님 부처님 제발 저 좀 행복하게 해 주세요.’ 행복이 뭔지도 모르고, 행복하고 싶다는 바람만 가득했던 날들. 그러다 언젠가 우주가 소원을 들어주듯, 행복을 한 아름 가져다주었을 때엔 손에 쥔 이 행복이 사라질까 불안해하기도 하고,  또 이걸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했던 시간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요!”라고 내뱉었다가, “세상에 나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을 거야”라고 집어삼켰다가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행복의 양면을 들여다보며 골몰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자연히, 행복한 날도 행복하지 않은 날도 있는 거라며 행복에 대한 강박에서 한걸음 물러나 스스로를 다독인다.


이런 게 행복이지 뭐. 분명 육아에, 일에 치여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결혼 3년 차에도 여전한 남편과의 기싸움으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느라 마음이 힘들기도 한데, 도대체 뭔지 순간순간 찾아오는 이 행복이 모든 걸 잊게 하고 얼어붙은 마음을 사르르 녹여주는 것 같달까.

‘누구더라 유희열인가? 육아와 결혼생활을 365일이라 비유한다면, 그중 5일은 행복, 360일은 지옥이라고. 5일의 행복으로 남은 360일을 버티고 살아가는 거라더라? 완전 공감.’하며 남편이 말한다. 허허 끄덕거리며 서로 한 마디씩 덧붙이기를, ‘그래,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네 뭐.’


그림책, 과자가게의 왕자님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행복이란 건 골칫덩어리일 뿐이야. 가장 큰 문제는 말이야. 이미 행복한 적이 있었다는 거야. 행복은 신이 내린 벌이야. 행복할 때는 그걸 느끼지 못한다고. 그 생각은 하지도 않아. 네가 이렇게 맛있는 도넛이나 케이크를 최고의 친구와 함께 먹고 있어도,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모르는 거야. 뭐 적어도 오늘은 말이지. 행복은, 그러니까 진짜 행복은 모르는 사이에 지나가 버려. 내일, 아니면 일주일 뒤, 아니 언젠가 올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금 눈앞의 행복은 못 알아보는 거지.”... “내가 행복해도 되는 걸까, 생각하면 힘들어. 사실 난 한 번도,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좋은 왕자는 아니거든. 내가 가진 것만큼 잘하지도 못했고. 그리고 이 행복에 대한 대가를 확실히 치러야 한다는 생각도 힘들어. 분명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겠지. 대가를 치른다는 건, 무슨 벌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거야. 내가 너무 행복했다가는 조금 있다가 아주 불행해질 것만 같거든. 훗날 불행하지 않으려면, 지금 행복해하면 안 될 것 같은 거야. 이 세상엔 기쁨과 슬픔이 정확한 균형을 이루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 그러니까 진짜로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고 느끼게 되면, 분명히 그 대가로 나쁜 일이 따라올 거라는 거지. 하지만 사실 최악은 따로 있어. 그건 바로, 행복이 곧 끝난다는 거지. 우리가 지금 이 과자가게에 함께 앉아서 맛있는 과자로 배를 채우며 행복해하지만, 이런 행복은 영원하지 않아. 영원하지 않다는 건, 어쩌면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과자가게의 왕자님, 마렉 비에인칙]


카스텔라를 꾸역꾸역 집어넣어 목구멍이 막힌 왕자에게 탄산수를 부어주듯, 칵투시아는 이렇게 말하는데,

“정말이지 이해가 안 되네. 행복이 행복이지 무슨 문제라고!... 그럼 여기 더 앉아 있자. 아무 데도 서둘러 가지 말고. 맛있는 걸 좀 더 시키고 여기 더 있자고.”
[과자가게의 왕자님, 마렉 비에인칙]

 생각해 보면 오늘만큼은 분명 혼자 있고 싶었지만 어느새 남편과 둘이 되고 아이와 셋이 되어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처럼 삼십 대의 시작도 마찬가지. 분명 혼자 살아가려 했는데, 어느새 남편과 둘이 되고 아이와 셋이 되어 함께 살아가고 있듯이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계획하고 실천하며 살아가긴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태반이다. 운이 좋아 술술 풀릴 때는 그저 풀리는 대로, 또 안 풀릴 때는 안 풀리는 대로 내버려 두고 그저 오늘 하루에 집중하는 것. 지금의 순간을 만족스럽게 보내면 그게 한 날이 되고, 그날들이 더 해지다 보면 삶이 행복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지 않을까. 덧셈의 공식처럼.




이전 04화 아빠는 여행 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