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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맘 Jul 21. 2021

달에게 보내는 편지

달아, 세상 밖에서는 더욱 크고 아름다운 사랑을 줄게.


달아, 오늘 엄마는 가진통이라는 걸 처음 느꼈어. 우리 달이가 엄마 아빠 품으로 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했지.
사실 오늘 아침에 너에게, ‘달아! 언제든 네가 용기가 날 때, 마음의 준비가 되면 세상 밖으로 나오렴.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을게. 건강하게 만나자 우리!’라고 짧은 편지를 썼는데, 그 마음이 전해졌나? 싶기도 했어. 물론 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앞선 때이기에 아무런 준비도 안된 터라 두렵기도, 조급하기도 했지만 아빠와 함께 침대에 누워 통증을 느끼면서 달이가 곧 우리 곁으로 오겠구나-하는 설렘도 함께 느꼈어. 엄마가 된다는 것, 정말 떨린다. 이제 얼마 후면 품 안에 안겨있을 달이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내. 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갔는데, 모두 우리 달이를 떠올리며 하하호호 웃음꽃이 피어났단다. 우리 복덩이!

의사 선생님은 12월에 아이가 태어나면 억울하게 한 살 더 먹게 된다는 말을 자꾸 하셔. 또 달이가 너무 커버리면 엄마 자궁에서 밀어내기 힘들다고 겁을 주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엄마는 마음 단단히 먹었어. 우리 달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그러니 달이가 엄마 뱃속에서 있고 싶은 만큼 머물다가, 준비가 되면 그때 엄마에게 신호를 줘! 알았지? 엄마는 네가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나올 수 있도록 운동도 하고, 여러 준비들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을게.

사랑해 달아, 세상 밖에서는 더욱 크고 아름다운 사랑을 줄게. 우리 곧 만나자! 건강한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며-
2019.12.01


 밤하늘에 환하게 뜬 달을 가리키며 아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오? 오오! 엉?’

“어? 유성이 달 보는 거야? 달 가리키는 거야 지금? 하얗게 밝은 게 신기해? 저건 보름달이라고 하는 거야. 유성이 뱃속에 있을 때 엄마 아빠가 달이라고 불렀는데 기억하는 거야?” 하며 괜히 내가 더 들뜬 날이었다.

한 손으로는 내 검지를 붙잡고, 또 다른 손으로는 달에게 손짓하며 하늘로 끌고 가려는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가족 모두가 한참을 웃었다.


아이를 임신하고서 ‘태명이 왜 달이에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었다. 남자아이니까 태양으로 해야 하지 않나? 하며 음양을 논하는 사람도 있었고, 둘째는 별님, 셋째는 햇님? 하며 농담을 건네는 사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나는 입을 다물었고, 남편은 ‘아내가 달을 좋아해요’라는 답변을 돌려주곤 했다.


달. 참 좋아하지-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달을 올려다보면, 아니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달을 만나면 눈물이 핑 돌만큼 위로받는 순간이 많았다. 힘든 일이 있어서도, 슬픈 일이 있어서도 아니라 그저 고개를 들었을 뿐인데, 달빛을 만나는 날이면 그랬다. 초승달이 뜨는 날이면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보다가 괜히 그가 쓸쓸해 보여서,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나와 눈을 맞추고 빵긋 웃어주는 것만 같아서.


어쩌면 달과의 추억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사막에서는 별을 이불처럼 덮고 잔대!’라는 말에 동경을 가득 품고서 떠난 인도 여행, 사막에서 비박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한창 저녁 준비를 하다가 볼일 볼 곳을 찾는데 문득 비현실적인 달을 만났다. 이제 막 지평선에서 뜬 보름달이 사막능선을 넘어 낙타의 등허리에 걸쳐져 있었는데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크기로 또렷이 빛나고 있었다. 팔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그 모습에 한참을 넋 놓고 바라봤던 그날 밤, 다들 침낭 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쏟아지는 별들을 기대했건만 훤한 보름달 덕에 별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밤새 무서워 눈을 뜨면 달이 있고, 추워서 뒤척이면 달이 있어 마음이 놓였었다. 그때도 달에게 속삭였었지,

‘달님, 행복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몇 해가 지나고, 또 한 번 사하라 사막에서 만난 달. 겁도 없이 한 밤 중에 친구와 향했던 사막, 밤이 되어 차갑게 식은 모래를 밟으며 거닐던 그날에도 환한 보름달이 떠 있었다. 달이 비추고 있어 밝은 면의 능선을 넘어서면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사막이 펼쳐지고, 뒤돌아보면 밝은데 다시 앞을 보면 어두워 발걸음을 떼기가 무서워지곤 했다. 그때마다 하늘에 높게 뜬 달을 올려다보며 걸었다. 달은 계속 저기 있다고, 시간이 지나면 여기가 밝아질 거라고 다독이면서. 그때 달이 비춰준 내 그림자를 기억한다. 캄캄하게 펼쳐진 사막에 또렷이 서있던 나. 내일 아침이 되면 다 밝아질 건데 뭐가 무섭냐며 그래도 한 발 내디뎌보던 그림자. 그날도 어김없이 속삭였다. '달님, 나 행복하게 해 주세요'


제주에 와 머물면서는 스스로 빛이 되자고 끊임없이 되뇌고 있다. 가끔씩 동굴에 웅크리고 앉아있을 때면 내 발치까지 와닿던 작은 빛줄기들을 떠올리면서. 그때 그 손을 잡지 않았다면, 그 빛을 따라 나오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다른 여정을 상상해 보며, 언제까지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갈 수는 없으니 스스로 빛이 되자고 말이다. 또 한편으로는 내게서도 빛이 난다면 이 또한 다른 누군가의 동굴에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말이다. 그때 내가 닮고 싶은 빛이 달빛이었다. 문득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눈부시지 않을 정도로 미소를 지어주니 바라보기에 편안한, 밤 산책의 동행, 은은한 달빛.


나에게 찾아온 이 아이도 그런 빛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대물림된 나의 소망말이다. 태명이 왜 달이었냐는 질문에는 여전히 '달이 좋아서'라고 답한다. 글로도 다 정리되지 않는데 어떻게 말로 설명을 하겠는가. 여하튼 달이가 세상 밖으로 나와, 달을 가리키며 웃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가족들도 함께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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