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할 것도 특별할 것도, 무서울 것도 없는 자연주의 출산
임신 중기, 출산 선배로부터 분만실의 생생한 후기를 전해 듣고부터 나는 작은 걱정들에 사로잡혀있었다. 내진을 한다고? 굴욕 의자에 앉은 내 자궁문이 열렸는지 그럼 몇 센티나 열렸는지 의사도, 간호사도 수시로 들여다본다던 내진. 그래 그럴 수 있다고 쳐. 근데 회음부 절개라니? 산부인과에서 혈압 잴 때마다 봤던 눈앞의 광고, '회음부 절개, 선택이 아니라 필수!' 라며 당연한 듯 권하던 게 이 말이었어? 아프겠다. 이것도 몸서리가 쳐지는데, 아가가 자궁 밖으로 머리를 밀고 나오는 속도가 더디면 진공청소기 같은 기계를 써서 잡아당긴다던 말에는 도저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근데 이게 끝이 아니다. 아이 출산 후 태반이 나올 땐 간호사가 배 위에 올라타 팔꿈치로 내리누른다던 이야기까지. 실제로 눈앞에 있는 동생이 그 경험을 했다고 하니 이젠 두렵기보다는 조금씩 화가 나려 했다. 너무 폭력적이잖아. 정말 아프다는데 내가 아픈 건 그렇다 쳐도 우리 아가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무슨 죄야. 결론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고, 그런 불편한 상황들에 아무런 대꾸 없이 내 몸과 아기를 맡겨야 한다니 결코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았다.
출산은 엄마가 아기를 낳는 게 아니라 아기가 준비되면, 그럴 용기가 생기면 마음먹고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거라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림책. 김승연 작가의 ‘마음의 비율’이란 책이 떠올랐다. 물론 아기에게만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당시 내 상황에서는 가장 공감되는 엄마로서 아기를 기다리는 마음이었으니 아기가 뱃속에서 얼마나 두려울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데까지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늠해보곤 했다.
임신 후기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점차 두려움도 옅어지고, ‘우리 달이 준비되면 나오렴. 엄마는 마음 차분히 기다릴게.‘ 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아기 머리가 너무 커서 자연분만이 힘들겠는데요, 아기가 잘 놀다가 출산할 때가 되니 거꾸리가 됐네요? 언제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수술해야겠어요.' 라며 온갖 걱정거리를 심어주며 자꾸만 제왕절개 혹은 유도분만을 권했다. '저는 예정일까지 기다려보고 진통이 오면 낳고 싶어요, 그러다 안되면 수술하면 안 될까요?' 때마다 내 의사를 전달했는데도 계속되는 권유에 슬슬 의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너무 바쁜 병원이라 기다려볼 여지가 없는 건가. 하지만 의사로서 당연히 전해야 할 정보를 전달했을 뿐이라고, 충분히 할 수 있다며 마음을 추스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그리고 예정일을 두 달 정도 앞두고서 거꾸리 아가를 돌리기 위한 1:1 임산부 요가를 시작했고, 그때 연이 닿은 요가 원장님의 추천으로 자연주의 출산의 길까지 들어서게 되었다.
머리가 크다, 아이가 거꾸로 있다 하며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불안을 한 움큼씩 쥐어오는 내게, 원장님은 마음으로 함께 기도해 주시고, 아이에게 그리고 산모에게 이로운 아사나를 알려주시며 이완에 힘써주셨다. 그때 마침 요가원 강사분도 출산을 했다며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조산원이라는 곳에서 예비부모를 위한 부모교육을 한다는 소식까지 접하게 됐다. 주 1회, 총 4회에 걸친 수업이었는데, 갓난아기는 본 적도 없고 다 큰 아가도 손이 떨려 한 번 안아보지 못했던 우리 부부에게는 이 과정이 참 많은 도움이 됐다. 가장 감사한 건, 이때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고, 내가 찜찜해했던 모든 문제들에 대한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우리 집 안방같이 따뜻한 방, 은은한 불빛 아래에서 남편과 함께 출산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 품에 안고서 다독여줄 수 있다는 것, 또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출산 직후부터 쭈욱-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점, 의료의 개입을 최소화하여 산모와 아기의 호흡만으로 출산이라는 과정이 진행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가장 중요했던 건 지금 당장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기가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올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었기에 자연주의 출산으로의 선택은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조산사님의 자신감과 격려. “할 수 있어요. 나만 믿고 따라와요. 이보다 더 큰 아가들도 여럿 받아낸걸요. 지금부터라도 아기가 내려올 수 있게 계속 걷고 또 걸어요. 그럼 거꾸리도 충분히 돌릴 수 있어요.” 하며 몸소 도움이 되는 동작을 하며 웃어 보이시던 그 여유. 마음은 점점 자연주의 출산으로, 아니 제주에서 가장 유명하다던 산부인과에서 조산원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달까지 조산원과 병원, 모두 진료를 받았다. 출산이라는 긴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이를 안전하게 출산하는 것이니, 행여나 발생할 수도 있는 응급상황에 대해서도 철저히 대비함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더했다. 그렇게 출산예정일보다 조금 이른 날 새벽에 아이가 용기를 냈다. 출산 후 스무 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오전 9시, 조산원 정기 진료 중, 내진
오전 10시, 이슬 비침
오후 7시, 조산원 원장님으로부터 전화, ‘어떻게 괜찮아요?'
'네, 오전에 이슬인지, 약간 비친 것 같은데 그 후론 진통도 없고 괜찮아요!'
오후 8시, 고기를 한 아름 구워서 이제 막 먹으려고 앉았는데 갑자기 진통이 오기 시작. 느낌이 쎄-하더니 5분 간격으로 진통. 지난밤 가진통 때와는 느낌이 다른 게, 묵직하다고 해야 할까?
오후 10시, 참을 수 없는 허리 진통 시작. 진진통은 도대체 무슨 느낌일까 늘 궁금해 찾아보곤 했었는데, 진통이 오면 아무것도 못한다던 엄마들 말이 맞았다며 진통 중에도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했더랬다.
오후 11시, 조산원 원장님께 전화, '원장님, 진통인 것 같아요 타이머 재보니 5분 간격이에요. 너무 아픈데요?'
'아직 목소리가 쌩쌩한 걸 보니 때가 아니야 오늘 밤은 지켜봅시다'
갸우뚱하며 전화를 끊자마자 이때부터가 진짜 진통 시작이었다.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 못 간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진통을 참아보기로 했다.
자연주의 출산을 다룬 책,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에서 읽은 대로 히프노버딩 명상을 시작했다. 의자에 앉아 (장롱 문을 붙잡고) 진통이 서서히 밀려올 때 높은 파도가 밀려 들어오는 영상을 상상하며 숨을 들이마시고, 최고조일 때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다시 파도가 나가는 장면을 상상하며 숨을 뱉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하니,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던 고통이 참아지는 게 신기할 정도로 오히려 편안해졌다. 이에 더해 진통이 밀려올 때 다리에 힘을 풀어 이완하는 동작까지. 이제 피할 길은 없고, 아기가 나오려고 한다면 무조건 빨리 열려야 하니깐!
오전 2시, 허리 통증에 변의가 느껴지면서 도저히 못 참겠다고 코 골며 자는 남편을 깨웠다.
'여보, 나 안 되겠어. 7센티 정도는 열린 것 같아 아기 곧 나올 것 같아.'
'원장님이 내일 아침까지 지켜보자고 하셨잖아. 전화해 볼까?'
'아니야. 전화하면 또 오지 말라고 하실지 모르니 그냥 가자 빨리빨리'
오전 2시 반, 조산원에 도착해 내진을 해보니 원장님 말씀, '2.5센티? 정도 열린 것 같아. 아직 한참 멀었어'
망연자실했다. 이 정도 아픈데도 아직 멀었다니 허탈하게 분만 방으로 갔다. 그리고 정말 말 그대로 이때부턴 더 지독한 지옥을 맛봤다.
일단 집에서 진통을 견디게 해 준 안락의자가 없었고, 익숙한 물건이 없으니 모든 게 다 불편해 발을 동동 구르며 화장실 문을 열었다 닫았다, 벽을 쳤다 베개를 쳤다 난리를 쳤다. 그러다 남편 붙잡고 나 못하겠다고, 무통주사 놔달라고, 우리 그냥 병원 가자며 막 울부짖었다. 내 경우엔 주로 허리 통증이 심했고 배로는 수축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허리가 끊어질 것만 같았다.
오전 4시 반, 지칠 대로 지쳐 침대에 누웠다. 진통이 없을 땐 잠깐 잠들었다가 진통이 밀려올 땐 침대 헤드를 붙잡고 부르르르 떨며 진통을 참았다. 근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변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금 있음 애기 머리가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라 해야 하나? 정말 말 그대로 '변의'라고 하는 게 맞겠다. 참고 참고 또 참다 도저히 안 되겠다며 조산원 원장님을 호출했다.
오전 5시,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자궁문이 거의 다 열렸는데? 와! 신영씨 하이파이브!!'
원장님 미소를 보니 감격스러웠다. 순간 침대 헤드에게 너무나 감사한 순간이었달까. 초산인데도 진행이 굉장히 빠른 편이라며 하이파이브를 외치셨다. 이때부터는 거의 다 왔다는 심적인 안정 덕분일까. 크게 진통은 없었다. 한 번씩 변의가 느껴져 힘을 주고 나면 허리통증(요가 시작하기 전 느꼈던 허리 통증)이 크게 따라왔는데 그게 정말 참기 힘들 정도로 힘들었다.
오전 5시 반, 본격 힘주기, 출산 호흡을 시작했다. 출산 전에 몇 번 안 되지만 로지아라는 둘라 님의 유튜브 보며 연습해 둔 호흡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됐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밀어내듯이. 이때 신랑도, 원장님도 잘하고 있어 아이구 잘해 와 진짜 잘한다! 이런 응원의 말씀이 없었다면 정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둘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금에 와 새삼 느낀다. 여하튼 그 응원에 힘입어 한번 더 힘을 주며,
'근데 도대체 언제 나와요 원장님, 도저히 못하겠어요.' 칭얼거리다 도저히 못하겠다고 했을 때,
'그럼 이제 나올 거예요' 덤덤하게 말씀하시며 손이 분주해지던 원장님.
부드러우면서도 집중한 표정, 그리고 어루만지는 듯한 목소리. 내가 힘을 줄 때마다 다음 단계 준비를 하나씩 하나씩 하시는 원장님의 모습을 보면서 출산과정 내내 안정감과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었고, '아 이제 다 왔구나, 고지가 보이는구나.' 하면서 남편이 달이 머리카락이 보인다고 호들갑을 떨 때도, 여보 잘하고 있다고 쓰다듬어줄 때도, 그땐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돌이켜 보니 곁의 두 사람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
'이제 양수를 터뜨릴 거예요. 따뜻하니 기분 좋을 거야'
양수를 터뜨리니 정말 뜨뜻한 물이 흘러나왔고, 기분 좋음도 잠시, 아기 머리가 나왔다가 들어갔다 할 때는 정말 생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픔을 느꼈다. 이때만큼 진통이 기다려진 순간도 없었을 것이다. 중간중간 멈춰버리는 진통이 야속할 정도였으니까. 마지막에 달이 머리가 끼인 채로 진통이 멈췄을 땐 진짜 '빨리 와라 진통!' 하며 이를 악 물었다.
오전 6시 반, '아빠 탯줄 자를 준비하자'라고 하셨을 때, 아 이제 마지막이구나! 하고 젖 먹던 힘까지, 그리고 회음부를 지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호흡을 했다. 원장님도 아이 아빠도 함께.
오전 6시 39분,
호흡과 동시에 달이 머리가 나오고 몸통까지 쑥 하고 나왔다. 양수랑 같이 흘러나오는데 신비로운 느낌이랄까. 달이 울음소리가 '우엥ㅡ' 하고 들려오면서 눈물이 글썽한 아이 아빠의 얼굴을 보면서, 어떡해 이제 고통은 끝났구나 하는 안도와 얼른 아가를 보고 싶다는 마음까지 복합적인 감정들이 한 번에 밀려왔다.
'자, 우리 태맥 짚어볼까? 느껴져?' 하며 내 손에 탯줄을 쥐어주시는 원장님.
'네? 태맥이요?' 아이 울음소리에 정신이 없어 처음엔 느껴지지 않던 작은 울림, 콩콩-
곧이어 내 품에 올려지자마자 울음을 그치는 달 이를 보며 또 울컥하던 순간. 몸은 따뜻한데 손발은 차갑고 눈을 감은 채 꼼지락꼼지락 평온해 보이던 달이.
'아 어떡해 고마워 달아 정말 고생했어, 고마워 엄마한테 와줘서'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것도 잠시, 곧 태반이 나올 거라며, '이건 시원-할거야' 라고 말씀하시던 원장님.
실제로 보니 해파리 머리 같기도 하고, 몽글몽글하던 태반에게는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동안 우리 달이 건강하게 지켜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나의 출산은 10시간 정도에 걸쳐 마무리되었다.
3.65kg로 태어난 달이, 병원에서는 머리가 크다,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며 그토록 힘들다고 제지했던 자연분만이었기에 내가 해냈다는 뿌듯함과 함께 나보다 더 힘들었을 우리 달이, 엄마 힘들까 봐 힘차게 쑥쑥 밀고 나와준 우리 아가에게 너무 고맙고 또 그 모습이 기특했던 날의 기억. 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시고 믿어주신 원장님, 관장도 안 해 못 볼 꼴도 많이 보셨을 텐데 불편한 내색 하나 없으시고, 회음부 손상도 하나 없이 출산을 도와주신 정말 감사한 능력자 원장님. 또 전날 밤부터 당일 아침까지 출산과정 내내 손 잡아주고 같이 아파해주고 호흡해 주고 땀 닦아준 우리 사랑하는 남편까지 모두가 함께 노력했기에 가능했던 정말 그 순간의 행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출산 당일, 피곤할 테니 원장님께서 하루는 아기를 봐주겠다고 편히 자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 부부는 첫날부터 함께 달이를 돌보기로 했다. 덕분에 밤새 우는 아이를 달래도 보고, 안아도 보고, 젖을 물리고 또 분유를 타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먹여도 보고 하면서 우리는 다시는 없을, 값진 하룻밤을 시작으로 육아 전선에 뛰어들었다.
조리원이 마지막 자유라며 무조건 가야 한다던 친구들의 이야기도, 몸조리는 그때 다 한다는 어른들의 말도 백번 이해한다. 내가 출산한 김순선 조산원도 물론 조리원 시설이 있다. 다만 여긴 모자동실로 운영된다. 여타 다른 조리원에 비해 금액이 더 높은 편이지만, 모자동실이기에 열흘 쉴 것 다섯 날로 줄여가며 여길 선택한 이유도 있다. 내가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유별나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게 찾아온 아이니까 (엄마 마음이 다들 그러겠지만) 너무도 소중해서 가능한 한 다른 손에 맡기고 싶지 않던 마음.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나는 '자연주의 출산', 그리고 '김순선 조산원'이다. 가끔 남편은 무통주사 놔달라며 울부짖던 그날의 나를 놀려대지만, 그럼에도 말이다. 그만큼 자연주의 출산은 모든 과정이 고통과 굴욕, 두려움, 폭력이 아닌 따뜻함, 믿음, 용기,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느끼게 해 주었다. 물론 하늘이 돕고 사람이 도왔기에 무탈하게 출산한 거라고 남편도 나도 항상 이야기한다. 참 감사한 일이라고. 사실 어떤 방법으로든 출산은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방법이 어떻든, 생과 사를 오간다 해도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모두 잊게 될 거라고 믿는다. 나의 경우엔 자연주의 출산이 맞았을 뿐, 가끔은 좋은 날 좋은 시각을 받아 그 사주를 아이에게 주었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고 또 12월생이라 조금 더 늦게 태어나도록 기다렸어야 하나 이런 생각도 한다. 무슨 선택을 하던 얻은 만큼 잃고 그에 따른 만족과 후회가 잇다르는 법이니까.
그 시절 밤마다 내가 그랬듯이, 출산이 다가올수록 자연주의 출산, 자연분만, 제왕절개 등의 후기들을 찾아보며 비교하고 고민하고, 안전성을 따져보고 위험한 변수들을 메모하고 있을 수많은 예비 엄마들의 불안, 걱정, 선택, 그리고 확신에 조금이나마 내 이야기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지나간 시간을 꺼내어본다. 늘 지금부터가 또 시작이지만, 힘든 시기가 오면 그날의 마음들을 잊지 말고 매 순간 감사하며 살자고 스스로도 읊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