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아이와 연결되어 있는가
이틀간 잠을 채 다섯 시간도 자지 못했다. 아이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고, 또 아이 때문만이라고 할 수도 없다. 600일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모유수유 중인 나는, 나도 아이도 아직은 할만한데 되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먹을 것도 없는데 왜 자꾸 먹이냐며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내 가슴을 보고 웃는가 하면, 다 큰 아기가 왜 아직 쭈쭈를 먹냐며 아이를 놀려대기도 한다. 또 혹시라도 모유수유 때문에 엄마인 내 몸이 자꾸 약해지는 게 아닌지 염려하는 시선까지, 분명 ‘자연주의 모유수유’ 책에서 언급했던 반응들이다. 책에서는 다 큰 애가 아직 엄마 젖을 찾는다며 놀림감이 되기도 할 것이고, 모유수유에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사회적인 시선으로 인해 외부에서 아이가 수유를 원할 때 난처해지곤 할 것이라고 미리 말해주었다. 맞다. 고결하고 사랑스러운 행위라고 여겨왔던 모유수유인데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부터는 사람들에게 수유하는 모습을 보이기가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또 아이는 때때로 장난스럽게 가슴으로 덤벼들기도 했고, 이게 둘만의 시간이라면 혹은 우리 가족 안에서라면 전혀 문제 되지 않을 사랑스러움인데 타인의 눈을 통해서 볼 때면 엄마로서 옳지 않은 행동, 그리고 단호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죄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단유를 시도해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곰돌이 단유법이라는 아주 고상하고 이상적인 단유법은 이틀 만에 실패했고, 레몬즙은 하루, 그리고 최근까지는 식초로 단유를 진행해 왔다. 식초는 성공적인 듯 보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식초 냄새를 처음 맡았을 때는 기겁을 하고 도망가더니, 냄새가 증발하고 나면 다시 슬금슬금 다가와서는 씨-익 웃고서 젖을 물었으니 말이다. 식초 단유를 시작하며 잠을 자지 못한 첫날, 저녁 8시가 되자마자 곯아떨어진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남편과 쾌거를 외치며 매운 닭발에 맥주로 축배를 들었다. 오랜만이 맛보는 알코올은 적절히 눈은 풀리게, 기분은 들뜨게 했지만 축제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잘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아이가 문 앞에 서서 눈을 비비고 있던 그 시각은 새벽 1시 반. ‘아구아구 깼어. 들어가자!’ 하며 양치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아이에게 자장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런데 왠 걸, 맥주를 먹은 탓에 젖을 물리지 못하니 아이는 칭얼대기 시작했고, 잠은커녕 차츰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게 아닌가. 그렇게 아침 7시까지 뜬 눈으로, 한껏 오른 짜증으로 밤을 새웠다.
잠 한숨 못 자고 카페로 나와 일을 하고 다시 그날 밤 저녁, 둘째 날. 아직 7시밖에 안 됐는데 또 졸려하는 아이. 그럴 만도 하지- 어제 잠을 그렇게 설쳤는데. 하지만 어젯밤 닭발의 저주를 잊지 말자며, 9시까지 기다려보자! 하며 버티고 버텨 9시가 조금 되기 전에 재웠더랬다. 아이가 잠들고 남편도 나도 기절할 줄 알았지만 왠지 또 아쉬운 이 밤에, 맥주를 꺼내 들었다. ‘오늘은 안 깨고 푹 자겠지’ 간단하게 마시고 한시쯤 잠들었는데, 우엥- 하며 잠결에 모유를 찾는 아이. ‘안 돼.. 엄마는 이제 모유 못 줘 그만 먹자 응? 우유 줄게 우유.’ 식초를 발라도 안되고 우유를 들이밀어도 안되고 아이는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괜찮아. 다들 이 과정을 넘어 단유 한다고 했어. 지금이 중요하다고 했어. 무너지지 말자. 지지 말자!’ 하며 버텼는데 아이의 눈은 또 점차 또렷해졌다. 그때 시각 새벽 5시..
나와 마찬가지로 어제부터 잠 한숨 못 잔 남편을 2층 작업실로 올려 보내고, 내가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책을 읽어달라, 놀이방으로 가서 블록을 쌓자. 노래를 틀어달라.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고 있다 보니 어느새 동이 트기 시작했다. 7시 반 즈음이 되었을 땐 못다 잔 잠과 함께 조금씩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속도 좁지, 2층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나 제발 한 시간만 잘게..’ 하며 썽을 냈다.
출근해서는 눈꺼풀만큼이나 무거워진 마음. 단유를 해야 하는데 못했기 때문에 아이가 이렇게 밤마다 잠을 못 자는 게 아닐까? 또 시작된 자책. 그리고 이대로는 정말 안될 것 같아 답답한 마음에 책을 꺼내 들었다. 출산 직후 읽고서 내버려 두었던 책, 킴 존 페인의 ‘맘(mom)이 편해졌어요’. 처음 읽고서 내 육아의 방향을 명확하게 잡아준 책이었는데, 이 책을 읽은 지도 어느새 삼 년이란 시간이 지나있었다. 이후 이사와 창업이란 길을 지나오며 내 삶에도 큰 변화가 생겼고 아이 또한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며 새로운 환경에 주기적으로 노출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의 마음가짐은 흐트러질 대로 옅어져 있을 수밖에.
아이가 제일 처음 접하는 리듬인 자궁 속에서 듣는 엄마의 심장박동 소리처럼, 이런 규칙적인 리듬은 아이가 자신의 세상을 알아가는 방식과도 일맥상통한다. 규칙적으로 계속되는 흔들림이나 반복과 운율을 갖춘 리듬에서 아이는 안정감을 느낀다. 다시 말해,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는 확신 즉, 예측할 수 있는 토대 위에서 안정감을 느껴 아이는 모험에 나서며 그렇게 평생 낯선 영역을 탐험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모든 걸 배워 간다. 탐험은 유년기 내내 지속되지만 그중에서도 무의식적 학습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출생 후 3년간 강하게 나타난다. 아이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안정감을 느낄 뿐 아니라 자신을 발견해 가는데, 식사와 목욕, 노는 시간과 자는 시간이라는 하루의 가장 규칙적인 일상의 리듬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맘이 편해졌어요, 킴 존 페인]
읽고 싶은 부분을 펼쳐 한 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 ‘아...’ 큰 걸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에 멍해졌다. 단순히 단유의 문제가 아니라 이거였다. 리듬. 나도 예민하고 남편도 지치고 아이도 불안정해 보였던 바로 그 이유 말이다. 우리만의 리듬은 창업으로 인해 한 번, 이사로 인해 또 한 번,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쪼개지고 깨지고 들쭉날쭉 이었다. 하지만 이제와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무지한 지난날의 나를 또 탓하며 무엇이 잘못되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먼저 아이의 어린이집 등 하원.
일을 시작하고부터 등원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지만 하원이 문제였다. 어느 날은 아빠가, 또 어떤 날은 엄마가, 그리고 때때로 차량을 통하기까지 아주 엉망이었다. 물론 이걸 결정할 당시에도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이러면 아이가 혼란스럽지 않을까, 어떤 날은 3시 반 또 어느 날은 5시, 어린이집 적응도 힘들 텐데 괜찮을까.’ 걱정에 걱정을 더했지만 풀어낼 답이 없었다. 일은 이미 벌려놨고, 남편은 남편 일이 있고, 온전히 책임을 다해야 할 몫이 내 앞에 있고.. 그렇다. 그때 가장 여유가 없었던 건 나였다. 시간이 어찌어찌 흘러 이제는 나도 새로운 일에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고, 남편도 코로나로 인해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나니 그 문제를 다시 짚어볼 수 있게 되었다. 웬만하면 이제는 정해진 시간에 차량으로, 규칙적은 하원을 하자고.
그리고 식사.
집에서 밥다운 집밥을 못 해먹은 지는 꽤 됐다. 초반에는 해보겠다며 에너지를 쪼개가며 덤벼들었지만, 어느새 인상을 팍-쓰고 짜증이란 짜증을 다 부리며 채소를 다듬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렇다고 매번 사 먹고 시켜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편이나 나야 그렇다 쳐도 아이는 더욱 그래선 안되니까.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당신의 삶이 있는데 낯선 곳에 붙잡아두고 집안일을 부탁하는 마음 또한 편치 않았다. 그러다 조금씩 타협하게 된 건, 우리는 샐러드와 건강 스무디로 하루 한 끼 이상을 해결하되 아이만이라도 밥을 챙겨 먹이자고. 대신 아침부터 편식이며 식사교육으로 모두의 진을 빼기보다는, 아침만큼은 아이가 좋아하는 식단으로 고정하자고. 하지만 가장 어려운 건 저녁시간이었다. 장사를 하는 날엔 저녁식사를 마치는 시간이 9시가 되는 게 부지기수였고, 어떤 날은 밖에서, 또 어느 날은 할머니 집에서 등등 전혀 예측 불가능한 리듬이었으니까. 그래서 마련한 방안은, 장사하는 날은 내가 혼자 오픈부터 마감까지 모두 도맡아 하고 남편이 아이의 하원, 저녁식사, 샤워, 잘 준비까지 맡아주는 것으로. 그럼 난 퇴근해 와 저녁 먹고 아이를 재우고 또 쉬는 날은 내가 도맡아 하면서 말이다.
가족 식사는 월요일에는 파스타, 화요일에는 밥, 수요일에는 수프처럼 예측 가능할 때 훨씬 단순해진다. 규칙성이 있으면 식사 준비도 훨씬 수월해질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안정감과 확신을 줄 수 있다. 여기저기 오가고, 잠들었다 일어나고, 학교 마치고 학원으로 가고 밀린 숙제를 하는 등 끝없이 휘몰아치는 삶의 파도 속에서 저녁식사는 화살 과녁에 있는 큼지막한 빨간 점과 같다. 일상 전반으로 퍼져나갈 리듬을 구축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그에 따라 아이의 행동은 물론 가족의 연결감까지 달라진다.
[맘이 편해졌어요, 킴 존 페인]
남편은 요리에 요자도 모를 정도로 거리가 멀다. 나 또한 혼자 살 때부터 집에서는 샐러드로만 생활해 온 탓에 요리 경험이 없다. 할 줄은 모르는데 완벽주의까지 더해지다 보니 국 하나 끓이려 하면 레시피 검색부터 한두 시간은 기본이다. 그러니 남아있는 에너지를 체크해 보고, 웬만한 상태가 아니라면 선뜻 덤벼들지 못한다. 근데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기로 한다. 애호박이 좀 삐뚤러도, 감자채가 굵고 못나보여도, 맛이 싱거워도 그냥- 그냥 하자고. 남편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방금은 ‘내일은 내가 볶음밥을 해볼게, 슴슴하게’ 라는 말을 하기에, ‘어떤 것이든 좋지.’라는 말로 답했다. 벌써부터 내일 먹을 볶음밥이 기대되는 건 왜일까.
그리고 최종, 수면리듬까지.
설거지는 끝났고 음식물 쓰레기도 치웠다. 이제 아이가 과연 제시간에 잠자리에 들 것인지 머릿속으로 따져보고 있지 않는가? 아이가 적당한 시간에 방전돼야 할 텐데 현재 남은 에너지가 얼마나 되는지 재보고 있지는 않은가? 전속력으로 달리던 아이가 잘 시간이라고 갑자기 멈추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나는 아이가 아침에 눈뜨는 순간부터 수면을 향해가는 과정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어떤 날이 될까? 얼마나 리듬감 있을까? 문득문득 잠시 멈춰 서서 그날 일어난 일들을 돌아보게 될까?
생각해 보면 잠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내려놓기’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따금 나는 밤에 아이 방의 불을 끄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 다 괜찮아... 곧장 네 천사의 품 안으로 들어가렴.” 수면 장애는 불안이나 신뢰 문제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 연결감을 확고하게 느끼고 있어야 아이는 다 ‘내려놓고’ 잠에 빠져들 수 있다.
[맘이 편해졌어요, 킴 존 페인]
한동안 아이의 넘쳐나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남편도 나도 밤마다 애를 먹던 때가 있었다. 특히나 자기 직전 샤워를 하면 더 활발해지는 것 같아 목욕시간을 바꿔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도 했고, 내가 일하고 와 지치는 날이면 남편이 아기띠를 하고 흔들어가며 재우기도 했었다. 도대체 우리 아이는 왜 이렇게 잠을 못 잘까? 신세한탄을 했었는데,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압력 배출구가 하루 두세 번 이상 잘 배출되고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아이가 낮잠과 같은 조용한 시간을 보내며 재충전할 시간이 있었는지, 그 시간으로 인해 압박감을 발산할 기회가 있었는지 말이다. 어린이집에서는 낮잠도 곧잘 자고, 친구들과 선생님과 잘 어울리며 문제없이 지낸다고 했다. 그럼 집에서는 대체 왜…? 흐릿하게 흘러가기만 하던 책의 문장을 붙잡고 한참을 되돌려보고서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내 아이와 제대로 연결되어 있을까? 아이에게 안정감과 연결감을 느끼며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품을 내어주고 있을까.
그리고 되돌아본 나의 육아에서 어느 순간, 아이를 재우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sns는 물론, 장보고 스케줄 정리하고, 카페 홍보에 때때로 온라인 쇼핑까지. 그러다 문득 아이가 잠들었나 싶어 내려다봤는데, 아이는 내 눈을 빤히 보고 있어 깜짝 놀랐던 적이 두 번 있다. 어젯밤 처음 그 눈을 보고서 다시는 아이 재우며 휴대폰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아 커피잔 하나만 주문하고! 이것만 주문하고 내려놔야지’ 하며 오늘 또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진짜 나란 엄마, 갈수록 왜 이리 형편없어지는 건지.. 아이가 나에게 연결감을 느끼지 못했을 거란 생각을 지울 수 없어 괴로웠다. 그래서 잠을 자지 못한 거라면?
오늘 밤, 아이를 재우고 남편과 마주 앉아 다시 한번 재정비에 들어섰다. 언제나 다툼의 화두에 오르곤 했던 저녁식사는 요일별 식사 당번을 정하고, 규칙적이고 단순한 메뉴를 함께 적어 내렸다. 모유는 적어도 24개월까지 먹이기로 결정. 아이가 저토록 집착을 보인다면, 무언가 결핍이 있던지 혹은 불안하던지 이유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또한 잠자리에 누우면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아이와 눈 맞추는 습관을 들일 예정이다. 일상에서 아이가 더 이상 불안하지 않도록 예측 가능한 리듬을 더하다 보면 스스로 푹- 잠들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보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남편과는 아침저녁으로 5분 명상을 하기로 한다.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직업이 아니다 보니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 계속적으로 노출되어 왔고, 또 둘 다 예민한 기질이라 기본적인 에너지 소비도 심한데 거기다 육아까지 있는 힘 없는 힘 쥐어 짜내가며 버티는 날들 속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내려놓는 시간, 하루 10분. 아이에게도 부부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