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를 생각하며 콩잎 물김치를 담그고 나는 그 마음을 담아,
제주에서 한참 사진을 찍느라고 돌아다닐 때 일이다. 점심 먹을 식당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고깃집밖에 갈만한 곳이 없는 거다. 아니 혼자 사는 나로서는 사실 고기가 먹고 싶어 그곳만 보였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혼자서 뭐든 잘한다고는 해도 홀로 고깃집 문턱을 넘기까지는 쉽지 않은 법이니까. 대낮부터 고기라 동행자들에게는 살짝 눈치가 보였지만 모두들 막내의 의견을 들어주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처럼 만난 것이다. 나의 콩잎을,
쌈채소에 콩잎이 나와 정말 반가웠다. 내가 콩잎에 고기를 싸 먹으니, 제주 어르신은 육지 아이가 콩잎을 다 먹을 줄 아느냐고 물으셨다. 콩잎은 여기에서만 먹는다고, 옛날부터 먹을 게 없어 제주사람들은 콩잎을 먹었다고. 이상하다 어릴 적 내가 먹었던 건 콩잎이 아닌 걸까? 아닌데 이 향이 맞는데.. 하며 기억을 더듬었지만 설명할 방법이 없어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리고 이후로 한참 동안 콩잎을 만날 일이 없어 잊고 살았다. 가끔 마을 어귀를 다니다 보면 돌담 너머로 흔들리는 콩잎이 반가워 슬-쩍 이파리를 만져보고 코에 갖다 대 킁킁 거리는 것으로 입맛을 다셔볼 뿐.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매번 밖에서 사 먹거나 샐러드만 받아먹던 아이가 새색시가 되어 요리를 시작했다. 한 날도 장 보러 들린 마트에서 콩잎을 발견했다. 한 묶음 오백육십 원. 반가운 마음에 세 묶음을 냉큼 집어 들었다. 집에 와 삼겹살을 구워 싸 먹고 밥에 쌈장만 넣어 싸 먹고 아무리 싸 먹어도 줄지를 않기에 어릴 적 그 맛을 더듬었다. 된장 콩잎! 경상도에서는 일명, 된장에 박은 콩잎이라고들 부른다. 할 줄 아느냐는 친정엄마의 물음에 요즘 안 되는 게 어딨냐며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이지 찾아지지가 않았다. 제주어르신의 말씀처럼 흔히들 먹는 음식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제야 납득했다. 찾고 또 찾고, 나처럼 옛맛이 그리워 담근다던 어떤 블로그 글을 보며 따라 만들었더랬다. 토마토만 갈아보던 블렌더에 사과, 배, 양파, 된장 등을 넣어 갈면서도 여기에 양파 냄새가 베이면 어쩌나, 다 하고 냄새는 어찌 빼나 걱정을 보태고, 재료 하나씩 준비할 때마다 다시는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까지 챙겨 넣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있는 통 없는 통 다 꺼내 새벽까지 담근 된장 콩잎은 꽤나 성공적이었고 엄마, 시어머니, 지인들에게 나누며 옛 음식에 지금 내 마음을 더해보았다.
이후로는 제주 오일장에서, 인터넷 쇼핑몰에서 몇 차례 사다 먹다가 이번엔 친정엄마께 부탁을 드렸다. 엄마가 담가준 콩잎 물김치, 된장 콩잎을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사실 나는 요리하기 싫어 간편식, 간편식 노래를 부르면서도 육수도 내야 하고 밀가루도 풀어야 하고, 콩잎 세척부터 손이 많이가 몇 시간을 부엌에 서있어야 하는 엄마의 노고가 소원이라니, 이런 이기적인 딸이 바로 나라니.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 먹는 건 못 미덥고, 내가 한 건 깊은 맛이 덜하고, 결과적으로 외할머니의 맛이 그립기에.
나의 소원이 엄마에게 전해지고 엄마는 몇 날 며칠 머릿속에 콩잎만 담아뒀나 보다. 엄마도 처음이라 인터넷, 유튜브, 어릴 적 친구, 동네언니 모두 붙잡고 물어보았다고 했다. ‘내가 알아봤는데, 지금 나오는 콩잎은 하우스 콩잎이란다 칠팔월 돼야 나온다카든데?’ “아니 엄마, 콩잎을 누가 하우스에 기르노! 내 이맘때쯤 제주도 돌아댕기면서 봤다. 분명히 있다” 나름 콩잎에 조예가 깊다고 여긴 나 자신은 정확한 정보도 아니면서 엄마의 말이 틀렸다며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이에 절대 물러서지 않는 엄마도, ‘내가 다시 알아봤는데 똑바로 들어봐 바. 지금 나오는 콩잎은 하우스 콩잎이 맞단다. 하우스에서 나오는 콩잎이 야들야들하니 햇콩잎처럼 그렇단다. 여름에 노지에서 나오는 건 좀 세고 말이야.’ “알았다 알았다 그래서 해줄 거가 말 거가” ‘해볼게 일단 콩잎 물김치 먼저 해보고, 된장에 박은 건 나중에! 맛은 장담 못하지만’
엄마는 시장에 콩잎 파는 곳이 잘 없어서 물어 물어 겨우 할머니 한 분을 찾았다고 했다. ‘배도 제일 좋은 거, 맛있는 걸로 하나 골라 달라 캤다. 생강도 한 쪼가리 달라니까, 할머니가 생강은 필요 없다카대. 근데 내가 본 레시피에는 들어가니깐 그냥 샀다. 비닐도 공장에서 나오는 거니까 혹시나 몰라서 깨~끗하게 씻어서 발랑 뒤집어가 바짝 말렸다. 비닐에 두 번 담은 거 봤제? 밖에 거는 안 씻고, 안에 음식 닿는 거만 말이야.’
주말이 끼여버리면 혹시나 제주로 가는 길에 너무 삭을까 봐 새벽부터 만들어 단골 택배기사님 편으로 냉큼 부쳤다는 그 콩잎이! 오늘 저녁, 제주 딸네 집으로 도착했다. 그 사이 딸은 밥 할 엄두가 안나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 손주와 나눠 먹던 그때 말이다. 노란색 리본으로 묶인 비닐봉지 안의 뽀얀 콩잎 물김치를 반찬통으로 옮겨 담는데 내 콧구멍 안에서 음악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는 도저히 참지 못해 비닐장갑 낀 손으로 몇 장 오므려 입안에 넣었더니 내 몸 안의 여러 감각들이 엄마를 떠올렸다. “진짜 맛있다.. 유성아 니도 하나 먹어볼래?” 하며 엉덩이를 씰룩 쌜룩, 발바닥에 날개가 달린 듯 춤을 췄다. 마늘 편 하나하나, 국물 한 방울조차 흘려보낼 수 없어 꾹꾹 눌러 담았다. 지금까지 먹어온 콩잎이 그냥 콩잎이라면 이건 티오피. 양파 당근 생강에서도 엄마의 정성 맛이 났다. 채썰린 양파를 보며, 동강동강한 채로 콩잎 사이사이에 비집고 들어간 홍고추, 청고추를 보며 부엌에 선 엄마가 그려졌다. “역시 우리 엄마.”
10분만 빨리 왔으면 밥을 먹는 건데 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진짜 맛있다!”
“진짜? 내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 아니고?”
“아니 진짜다. 이거는 말도 안 된다”
도대체 콩잎이 뭐라꼬- 를 주제로 엄마와 통화하는 동안 이건 내 무의식에 저장된 맛이라는 걸 알았다. 어릴 적 외할머니 댁에 머물 때 이후로는 콩잎 물김치는 먹어본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호박잎에 강된장도, 늙은 호박전도, 모두 그렇게 남은 추억의 맛. 이제는 외할머니를 찾아가 해 달라 조르지도, 주변에서 쉽게 사 먹지도 못하고 또 직접 만들어먹기는 더 힘드니 아쉽고 아쉬운 그 맛들. 촉촉해진 눈가로 유성이가 먹다 남긴 짜장면이 보였다. 역시나 이어지는 건 죄책감이다. 친정엄마와의 전화통화는 결국 내 아들, 유성이 잘해 먹여야겠다로 마무리됐다. 이런저런 맛들이 아이의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일 거라 생각하니 또 대충은 안 되겠네 싶어 오늘 왕창 사온 오트밀과 엄마의 콩잎 물김치를 번갈아 보다 사발을 들고 김칫국물을 들이켰다.
”아빠는 뭐래 맛있다지?” 하니 집에는 콩잎 한쪽 남겨두지 않고 모조리 딸에게로 보냈다는 엄마.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니, ‘우리는 또 만들어먹으면 되지 니한테 간 게 안전하게 또 맛있게 잘 갔다니 그걸로 됐다’하는 엄마.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찬 이 마음, 수고스러운 소원을 들어주어 고맙다며 콩잎 물김치의 답례로 짧은 글을 보냈더니,
딸아, 글을 읽어 내려가는데 따뜻한 눈물이 흐르네.
외할머니, 나, 너 이렇게 세월이 흘러도 추억의 음식이 큰 감동과 행복을 주고, 이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너의 생각이 참 감사하다. 딸 많이 사랑한다 잘 자(하트)
엄마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나 보다. 엄마도 엄마가 생각나겠지 싶어 괜히 뭉클해지던 초여름의 밤, 엄마는 나를 생각하며 콩잎 물김치를 담그고 나는 그 마음을 내 안에 가득 채워 유성이를 생각했다. 다가올 여름날, 친정에 가면 엄마랑 함께 만들어야겠다 다짐했다. 외할머니를 추억하며 유성이의 앞날을 상상하며 엄마와 나의 지금을 하나하나 담아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