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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Aug 12. 2019

나만 두려운 건 아니겠지?

파트1_새다리의 필살기



 ‘탕’소리가 들리자마자 전력 질주로 달립니다. 순발력은 좋았는지 일등으로 박차고 나갑니다. 어쩐 일인지 점점 뒷걸음질 치는 것처럼 다른 친구들은 하나 둘씩 나를 앞서갑니다. 친구들이 점점 나를 앞질러 가는 그 찰나는 이상하게도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고 자동으로 슬픈 비지엠이 깔립니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 모아 용을 써보지만 꼴찌를 면하지 못합니다. 달리기를 할 때마다 매번 꼴찌라니 그 어려운 일을 나는 해냅니다. 빠르게 달려가고자 하는 마음과 달리 천천히 움직이는 내 다리를 스스로도 느낄 정도이니 얼마나 느렸을까요? 


쓸데없이 큰 키는 달리기를 못하는 나를 유독 더 눈에 띄게 해 주었습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선생님들은 뒷줄에 선 나를 향해 달리기를 잘하냐고 물어보곤 했습니다. 제발 좀 잘 달리고 싶었어요.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제발!


수업을 열심히 듣다 보면 창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경우가 있어요. 학교에서 육상부로 선발된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유독 달리기를 못하던 나는 눈을 돌려 그들을 유심히 지켜보곤 했지요. 


“와~ 어쩜 저렇게 빠르게 잘 달릴까?”


부러움이 가득했습니다. 나도 저 아이들처럼 잘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어요. 나는 줄곧 일등으로 달리는 아이를 뚫어져라 바라봤습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가 무릎을 탁 쳤지요.


“오옷! 저거야!”
 3학년이 되어서 운동회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드디어 운동회 날이 되었고 나는 그동안의 관찰로 인해 발견한 필살기를 쓰기로 했어요. 내가 이번엔 꼴찌를 면할 수 있을 거야. 자신만만했어요. 난 그 날 내 생각대로 결국 1등 도장을 손목에 찍었습니다.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하지만 웬일인지 운동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신나게 웃습니다. 


수업 시간에 창 밖으로 늘 유심히 보았던 일등으로 달리던 동급생 여자 아이는 아주 짧은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었어요. 열심히 달릴 때면 커트한 머리칼이 좌우로 찰랑이며 흔들렸어요. 머릿결이 좋아서 마치 빛에 반사되는 것 같았고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였습니다. 잘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면 그 친구의 찰랑이는 머리카락이 항상 떠올랐습니다. 


그 친구는 결승선이 다가오면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기 위해 인상을 팍 쓰고는 고개를 몹시 흔들며 뛰었어요. 덩달아 친구의 짧은 머리카락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지요. 나는 순진하게도 그것이 바로 비장의 무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고개를 좌우로 연신 흔들어 대는 그것을 말이에요. 맙소사! 


나는 운동회 날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마침내 달리기 시합이 시작되었고 필살기를 뽐낼 생각에 두근거렸습니다. ‘탕’소리가 울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미친 듯이 좌우로 흔들었어요. 고개를 흔드는 통에 굉장히 어지러웠고, 어지럽지만 꼴찌를 면하고자 하는 집념으로 눈을 질끈 감고는 무작정 뛰었습니다. 귓가에 누구인지 모를 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렸어요. 눈을 감은 채로 비틀거리면서요. 균형감을 잃고 사선으로 뛴 것 같기도 합니다. 중간에 살짝 실눈을 떠보았는데 ‘아직 중간도 오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앞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안심했어요. ‘역시 비장의 무기가 맞았어, 내가 일등이야’ 하면서 다시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열심히 흔들었지요. 그리고는 1등만이 끊을 수 있는 결승 테이프를 끊고 들어갔습니다. 어이쿠야.


너무나도 늦게 들어오는 탓에 같이 출발한 친구들이 이미 결승선을 지나간 통에 보이지 않은 것이었고, 대체 저 고개를 무지막지하게 흔드는 아이는 언제 들어오는거지 하면서 선생님들이 다음 주자들을 위해 결승 테이프를 준비한 것이었어요. 


결승선에 계신 선생님은 위풍 당당한 나에게 일등 도장을 팔목에 찍어 주시면서 흐느끼듯 웃으시고 등을 토닥여 주셨어요. 잘했다는 것인 줄 알고는 고개를 들어 자존감을 뿜어대며 엄마를 찾았습니다.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내 쪽을 바라보지 못하셨지요.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는 유독 체력이 부실했어요. 특히나 다리는 너무 가늘어서 툭하면 넘어지고 무릎은 늘 상처 투성이었지요. 대학교에 입학하고 친구들이랑 하이힐을 처음 사서 의기 양양하게 신고 나간 날에도 발목이 자꾸 꺾였습니다. 힐을 신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하체에 힘이 없고 다리가 약했던 겁니다. ‘키는 큰데 왜 달리기를 못했지?’라는 의문도 그제서야 풀리게 됩니다.


고개를 흔들어 댈 것이 아니라 약한 다리를 단련하며 달리기 연습을 했다면 좋았을 텐데요. 대단한 비장의 무기로 인해 나도 잘 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지요. 그런 비장의 무기는 체력 단련과 그에 준하는 연습이라는 것을 알 턱이 없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중고등학교 때는 체육시간이 더 재미가 없어졌어요. 못하니까 점점 더 흥미가 떨어지는 겁니다. 체육 시간이 되면 ‘비가 오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했어요. 어떡하면 쉬고 빠질 수 있는지 궁리를 하면서요. 


지금은 날이 좋으면 더 좋고 비가 와도 할 수 있는 운동을 스스로 찾아서 합니다. 처음 시작은 비루하기 짝이 없었지만 시간을 들이니 점차 체력은 좋아졌고 몸은 좀 더 단단해졌어요. 아직도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근육이 꽤 붙었고요.




우리는 일단 다 같이 출발선에 서게 됩니다. 타고나기를 육상선수로 태어나기도 하고, 새 다리를 장착하고 태어나기도 합니다. 또 달리는 동안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햇빛도 적당해서 기분 좋게 달릴 수 있는 날이 있고, 비바람이 내내 몰아쳐서 힘들게 달려나가야 하는 날도 있어요.


하지만 인생이라는 긴 달리기를 하다 보면 좋은 날, 궂은 날이 번갈아 옵니다. 타고난 사람도 넘어지기도 하고 약한 사람이 어느새 단단해져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 환경이 좋지 못하다고, 넘어졌다고 좌절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장점을 찾고 단점을 보안하면 됩니다. 


우리는 꾸준한 연습과 체력 단련이라는 나만의 비장의 카드를 만들어 가야 해요. 남이 하는 것을 보고 무작정 고개를 흔들어 댄다고 해서 절로 단단해지는 필살기는 없으니까요.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을 하면 개선이 됩니다. 1등은 못할 수 있어요. 하지만 최소한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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