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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너네 존재에 감사해

쌍둥이가 쌍둥이를 만난 이야기

by 라온제나


가끔 글로벌 뉴스에 쌍둥이가 쌍둥이를 만나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세상에 저런 일이?'라고 생각하며 신기해했는데, 내 인생에 이런 일이 펼쳐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쩌면 우리가 쌍둥이여서, 어쩌면 우리가 국적이 달라서 연인이 된 거 같기도 하다.

언어소통에 문제가 없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 깊은 대화는 잘 안되지 않냐고.


한 프랑스 친구가 말했다. 언어는 그저 ‘툴 tool’ 일뿐이라고.

우리가 서로를 더 이해하기 위해, 더 잘 소통하기 위해 쓰는 도구 일 뿐이라고.

우리는 서로가 어눌한 제2외국어를 써서 공통점이 많고 공감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또 한국어로 한국인과 대화한다고 다 소통이 잘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서로에게 제2 외국어를 쓰다 보니 더 평등한 느낌도 든다.

한 명이 모국어를 쓰고, 상대방은 그만큼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면 완전히 평등한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서로 영어나 한국어를 쓸 때 조금 더 편하고 귀엽게 서로를 볼 수 있어서 이것도 큰 장점이다.


쌍둥이들은 서로의 존재가 굉장히 중요하고 친밀한데 나와 언니의 관계를 미둥이 들은 온몸으로 이해해줄 수 있고, 우리도 미둥이들의 관계를 온몸으로 이해한다.

쌍둥이가 아닌 사람들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말로 표현하지 못할 유대감 말이다.

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언니가 보고, 언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엄청난 행운이다.


우리보다 더 사이좋은 미둥이 들을 만나 언니와 나는 이제 거의 싸우지 않는다.

싸우더라도 금방 화해하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운명처럼 다가왔던 쌍둥이 축제와 미국 여행 덕에 우리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돌이켜보면 우연히 참가하게 된 쌍둥이 축제, 미국 여행 등 우리의 여행에서 펼쳐진 순간들이 운명인 것 같다.

우리 넷은 원석을 만나 서로 계속 좋은 영향을 받고 성장해나가고 있다.

늘 충만한 사랑의 에너지를 주고받으니 이토록 행복할 수가 없다.

운명처럼 만나게 된 선물 같은 인연에 4년이 지나는 지금도 매일매일이 감사하고 신기하고 행복하다.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고 그게 대체 뭐냐고 존재는 하냐고 투정 부렸던 나였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아 이런 게 사랑이구나.


92년 미국과 한국에서 두 커플의 만남, 두 커플의 작은 선택이 30년 후 이런 결실을 맺게 될지 그들은 알았을까.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숱한 선택들, 끌림에 의해 한 행동들이 몇십 년 후 상상도 못 한 현실이 되어 나타나게 된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내 마음에 솔직해지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앞으로 30년 후는 또 어떤 상상도 못 한 일들이 일어날까.



<결혼한 뒤 처음 따로 해외여행을 떠난 날 비행기에서 쓴 시>

애착 인형

우리 서로의 애착 인형 같은 존재가 되자

끌어안고 있으면

아무 말 안 해도 스르르 녹아지고

내 마음을 다 털어놓고 싶어지는

그런 애착 인형 말이야

다 큰 성인인데도

비행기를 탈 때

가방에 쑤셔 넣지 않고

품에 안고 타는 그런 애착 인형 말이야

떨어져 있는 며칠간

너는 내가 인형들을 그리워할 거라 생각했는지

아니면

인형들이 나를 그리워해서인지

같이 셀피를 찍어 보내주었지

나는 사실

너만 오롯이 봤는데

다시 사진을 돌아보니

까맣고 맑은 눈동자가 8개나 있었네

내가 언제든 어디에 있든

나를 그리워해 주고

나를 위로해주고

존재만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런 애착 인형 같은 존재가 될래

너는 이미 나에게 그런 존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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