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가 쌍둥이를 만난 이야기
미둥이 들은 중국에 있으면서 점점 통제되는 환경에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외국인에 대한 통제가 더 심해지고 있었고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보는 중국인들의 눈빛은 더욱 견디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형 매트의 아이디어로 미둥이 들은 한국으로 오겠다고 결정했다.
미둥이들이 하는 일은 중국 신문사에서 영어기사를 번역, 검수하는 일을 했는데 사실상 노트북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한국행을 결정한 뒤 회사에 가능 여부를 물었고, 다행히 회사는 가능하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는 미디어에 몇 번 노출이 됐다.
유튜브 '워크맨'에 우연히 출연하면서 이슈가 됐고 이후 '놀면 뭐 하니'에 사연을 신청해 당첨돼 또 이슈가 됐다. 우리는 놀면 뭐 하니에서 공개 프러포즈를 했는데 방송하던 날 온 가족을 앉혀두고 한 손으로는 미둥이 와 영통을 하며 영상을 보여줬다. 우리 자매는 서프라이즈를 너무 좋아했다.
계속 안 보고 자러 가려는 엄마 아빠를 앉혀야 했고 친구 만나러 끊으려는 미둥이를 계속 잡아야 했다.
우리도 우리 내용이 언제나 올지 몰라 긴장하고 봤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연이 나오자 그제야 다들 흥분하며 보았고 “Will you marry us?”를 듣고 미둥이 눈에 약간의 물이 비친 듯했다.
방송이 나가고 며칠 뒤 미둥이 들은 한국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격리를 2주 끝내고 우리는 드디어 서울역에서 만났다.
코 시국이 한창일 때 온 미둥이들과 우리는 함께 살기 시작했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우리 넷의 가치관에서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지만,
미둥이가 한국에서 오래 머무려면 비자가 필요했고, 결혼비자가 제일 좋았다.
현실적인 이유가 더 큰 채로 우리는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
혼인신고는 참 쉬웠지만, 결혼비자를 받는 과정은 까다로웠다.
이제 우리는 서로 ‘남편’ ‘아내’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직 너무 오글거렸다.
우리는 22년 9월 24일 미뤄왔던 결혼식을 했다.
사실 결혼식도 우리 넷의 가치관에서는 크게 필요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를 제외한 모두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
일반적인 한국식 결혼식은 절대 안하리라 다짐했던 우리였기에, 언니와 나의 주도로 우리는 결혼식의 모든 것을 일일이 만들어나갔다.
KBS 인간극장까지 촬영을 했기에 우리는 9월 한 달을 정신없이 바쁜 채로 살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했지만 부모님과 서로 합의점을 찾아 서로가 만족할 만한 결혼식을 진행했다.
무엇보다 우리가 동시에 결혼하게 되어서,
이제 정말 평생을 떨어지지 않아도 괜찮아서 그게 너무 다행이다.
결혼하고 나니 서로의 호칭이 달라졌다.
우리가 발견한 재미난 사실은 서로의 호칭이 두 개씩이라는 것이다.
나는 멧에게 언니의 남편이니 ‘형부’라고 부른다.
그런데 또 남편의 형이니 ‘아주버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언니는 제프에게 ‘제부’, ‘도련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
재미있지만 우리는 격식이나 호칭 따윈 뛰어넘어 그냥 친구처럼 이름을 부르면 지낸다.
장난칠 때는 내가 자주 멧에게 ‘아주버님, 오늘도 강녕하셨습니까?’ 하지만 그 어감을 모르는 멧이라 재미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