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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우리가 좋은 거야 아니면 ‘내’가 좋은 거야?

쌍둥이가 쌍둥이를 만난 이야기

by 라온제나


스포캔이라는 도시에서 여행할 때였다. 이제 우리는 일주일 정도 후에 미국을 떠날 참이었다.

확실히 우리 관계는 이제 썸 타는 상황이었고 다행히 사랑의 화살표가 엉키지 않고 서로를 잘 가리켰다.

어느 장미공원에 들어가 산책을 하게 됐다.

나와 제프는 둘이 걸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했는데,

제프가 "나는 너네랑 이렇게 있으니까 너무 좋아"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나는 용기 있게 그 순간을 낚아채며 물었다.

"너네 랑이야? 아님 너 랑이야?"

그리고 얼굴이 빨개지며 제프의 한마디 "너랑"

오케이 마음 확인 완료.


저기서 언니와 매트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슬쩍 지나가며 한국어로 언니에게 물었다.

"마음 확인했어? 우린 확인했어" 언니는 다급해졌다. 그리고 둘이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이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 우리가 앞에 언니네가 뒤에 걷고 있었는데,

나는 제프랑 계속 대화를 하면서도 '그럼 우리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사귀는 건가? 미국인들은 사귀자는 말 안 하고 그냥 사귀나?' 온갖 생각들이 들었다.


그러다 언니한테 물어볼게 생겨 고개를 획 돌려 봤는데 언니와 멧이 당황+부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잉? 무슨 일이야?"

언니가 "우린 오늘부터 1일이야!"라고 말했다.

1초간 정적을 가지고, 나는 제프한테 말했다.

"그럼 우리도 1일 하자!" 이렇게 우리만의 사귐이 시작됐다.


처음 손을 잡았을 때는 손에 땀이 줄줄 흘렀다.

차를 타고 가며 언니와 매트가 운전석, 조수석에 앉았고 나와 제프는 뒷좌석에 앉았다.

제프가 나를 안아주었는데, 포옹이 이렇게 따뜻한 건 줄 몰랐다.

행복했다.

“너무 행복해”라고 중국어로 말할 때는 그냥 그랬는데, 모국어인 한국어로 이렇게 말하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우니 다들 당황했지만 제프는 조용히 안아주었다.

오랫동안 얼어있었던 마음이 녹기 시작한 것 같다.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이렇게 편안할 수 있구나'

'애쓰지 않아도 흘러가는 관계가 있구나'

'이런 게 운명이구나'

이 운명을 만나려 그동안 마음고생했나 싶어 과거의 힘들었던 내가 안쓰럽기도, 고생해준 내가 고맙기도 했다.


손을 잡고 있는데 이 손은 내 의지로는 평생 안 놓을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이제 막 사귀기 시작했는데 결혼이 상상됐고 결혼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평생 함께 할 것 같다는 느낌이 온몸에 전해졌다.

‘사귄다’를 시작하고 나니 1주일이 금세 흘러갔다.

어느 순간 헤어질 때가 되어 이별을 고하는데 눈물이 쏟아져 나왔고 차를 댈 대가 없어 주차를 못한 매트는 결국 마지막에 언니와 인사를 못했다. 언니는 매트를 끝까지 찾았고 매트는 길 건너편에서 그런 언니의 모습을 보며 울었다고 한다.


예전에 비포 선라이즈 영화를 봤을 때 첫 만남에 사랑하게 되어 헤어질 때 울며불며 힘들어하는 주인공들을 봤을 때 너무 아름답지만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느꼈었다.

하루 만에 저렇게 사랑의 감정에 깊게 빠져버린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사랑의 감정은 정말 강력하고 빠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미국을 떠나 태국으로, 다시 한국으로 갔다.

부모님을 뵙고 또 운전면허를 따고 다시 뉴질랜드로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둥이와의 관계 덕에 뉴질랜드는 이후 다시는 발을 못 붙였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엄마 우리 엄청 특별한 소식 있어!"라고 흥분하며 말했더니 엄마가 우리 옷들을 빨래통에 넣으며 하는 말, "너네가 특별한 소식이라면 별로 안 특별하더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니 이번에는 진짜 진짜 특별한 소식이야"라고 했고

엄마는 " 엄마한테 특별한 소식은 너네가 남자 친구 사귀는 거야"라고 해서

"오잉? 엄마 어떻게 알았어?"라고 하자 엄마는 그 자리에서 방방 뛰며 좋아하셨다.


딸내미들이 비혼을 선언하고 5-6년째 남자 친구는 남자 그림자도 안 데려오고 남자 싫어한다니 은근 걱정도 많으셨겠지. 그런데 둘 다 동시에 데려오니 기쁘셨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대상이 미둥이라 하니 엄마가 동시 결혼식을 자기도 모르게 상상했다고 고백하셨다.

우리는 한국에서, 미둥이는 중국에서 장거리 연애가 이어졌고 우린 한국에서 플리마켓을 다니고 때론 공장 알바를 하며 여행경비를 벌어갔다. 한국에 놀러 오기도 하고 우리가 중국에 가기도 하고 태국에서 만나 여행하기도 했다.

코로나 19로 약 1년간은 못 만나기도 했다. 매일 영상통화를 하며 애정을 확인했고,

이후 미둥이 들은 큰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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