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온제나 Oct 07. 2023

쌍둥이가 떨어지는 건 사실 손해다.

저희도 남편들도 쌍둥이입니다.

4. 쌍둥이가 떨어지는 건 사실 손해다.


언니의 직감에 따라 우리는 계획에도 없던 미국 여행을 하게 되었다. 사실 미국 땅을 밟기 전까지 미국은 내게 그리 로망을 주는 국가는 아니었다. 떠날 때는 가장 로맨틱한 국가가 되었지만.

미둥이들은 우리를 위해 캠핑 계획도 짜왔다. 우리는 미둥이가 자라온 작은 미국의 소도시를 돌아다니며 소박한 여행을 했다. 함께 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 넷의 마음속에 서로에 대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오래 마음을 닫고 살았던 내가 완전히 마음을 열지 못하고 계속 회피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제프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고, 제프가 나를 보는 시선에서 그의 호감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평소보다 일찍 만남을 끝내고 나와 언니는 숙소로 돌아왔다. 내가 언니에게 빨리 돌아가서 예능 프로를 보고 싶다고 했다. 나 빼고 언니와 미둥이들은 모두 일찍 헤어지는 것에 아주 아쉬워했다. 나도 모르게 커지는 마음을 직면하고 싶지 않아 한 방어기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언니는 그런 나에게 둘이서 산책을 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밤길을 따라 숙소 근처를 걸었다.

언니가 나에게 돌연 돌직구를 날렸다. “난 사실 멧한테 관심 있어 너는?”

언니의 돌직구에 내 오랜 방어막에 균열이 생겼다. 남자에 대해 마음을 열지 않던 오래되고 굳어진 내 마음이 깨지고 있었다. “나도 사실 제프한테 관심 있어”

쌍둥이 자매지만 우리가 서로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말한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내 대답을 듣고 언니가 “그럼 우리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해보자”라고 했다. 직면은 회피보다 훨씬 마음이 편해진다.

다음날부터 나는 조금씩 마음을 더 열고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미둥이들은 우리를 데리고 워싱턴주 레이니어 국립공원으로 갔다. 바다 캠핑에만 익숙했던 우리는 난생처음으로 숲속캠핑을 경험했다. 불빛이 하나도 없는 깜깜한 밤이 돼서 캠프파이를 했다.

모닥불 앞에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밤하늘에 별을 보고 불멍을 때리며 놀기도 했다. 아마 이때쯤 서로의 마음의 불씨는 더 커지고 있었으리라.

밤이 되어 조금 더 쌀쌀해져 우리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각자 텐트로 들어가자니 왠지 조금 더 아쉬운 기분이었다. 그래서 좀 더 큰 미둥이 텐트에 들어가 넷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아주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서로 이런저런 농담을 하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불쑥 물었다.

“너네는 살면서 언제가 가장 설렜어?”

제프와 나와 언니는 어떤 한순간들을 말했고,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지막에 조용히 말한 멧의 한 마디에 텐트 안 분위기가 어떻게 변했는지만 기억할 뿐이다.

“씨엔짜이 (지금)”

넷의 심장소리가 텐트 밖으로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얼굴이 빨개진 것이 들키지 않아 어둠에 감사한 순간이었다.


스포캔이라는 도시에서 여행할 때였다. 이제 우리는 일주일 정도 머문 후 미국을 떠날 참이었다. 확실히 우리 관계는 숲 속 캠핑 이후 썸을 타는 상황이 되었고 다행히 사랑의 화살표가 엉키지 않고 잘 맞춰졌다. 어느 날 장미가 만발한 공원에 들어가 산책을 하게 되었다. 나와 제프는 둘이 걸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했는데, 제프가 “나는 너네랑 이렇게 있으니까 너무 좋아”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나는 용기 있게 그 순간을 낚아채며 물었다.

“너네랑이야? 아님 너랑이야?”

그리고 얼굴이 빨개진 제프의 한 마디에 그의 마음을 확인했다.

너랑

저쪽에서 언니와 멧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슬쩍 지나가며 한국어로 언니에게 물었다. “마음 확인했어? 우린 확인했어” 언니는 다급해졌다. 그리고 둘이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이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 우리가 앞에 언니네가 뒤에서 걷고 있었다. 나는 제프랑 계속 대화를 하면서도 ‘그럼 우리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미국인들은 사귀자는 말 안 하고 그냥 사귀나?’ 온갖 생각들이 들었다. 그러다 언니에게 물어볼 게 생겨 고개를 휙 돌려 봤는데 언니와 멧이 당황+부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잉? 무슨 일이야?”라고 물으니, “우린 오늘부터 1일이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1초의 정적을 가지고 나는 제프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도 1일 하자!” 사귀는 것도 동시에 사귀게 된 쌍둥이 커플이다.


세계적으로 쌍둥이인 사람이 일반 사람보다 결혼하는 비율이 더 낮다고 한다. 결혼하더라도 서로 가까이 산다고 듣기도 했다. 아마 외로움을 못 느끼고 쌍둥이끼리의 애착관계가 워낙 강해서 결혼 비율이 낮은 게 아닐까. 우리가 연애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결혼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던 이유가 우리가 서로 떨어지기 힘들다고 생각해서 이지 않았을까. 그땐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인데 지금 돌이켜보니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연애하거나 결혼하게 되면 서로 너무 감정적으로 힘들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우리가 쌍둥이를 만나 결혼한 건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의 만남으로 네 명의 인생이 구출된 느낌이었다.

처음 제프 손을 잡았을 때 이 손은 내 의지로는 평생 안 놓을 것 같다는 직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이제 막 사귀기 시작했는데 결혼이 상상됐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하지 않더라고 평생 함께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서로 ’떨어져야 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미둥이들도 서로 다른 집을 구하려고 부동산을 알아보고 있었고, 나와 언니는 서로 각자의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게 사람의 의지로 쉽게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다.

서로를 만나 사랑에 빠져버리며 쌍둥이로서의 서로의 독립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붙어있게 되었고, 나와 언니는 함께 사업을 시작해 24시간을 붙어있게 되었다.

이전 같으면 24시간을 붙어있으면 안 싸울까? 그건 너무 자유가 없는 거 아냐? 사람은 혼자서도 살아봐야 해 하는 마음의 소리 및 사회의 소리를 들었다. 게다가 결혼하고 나서는 ‘부부끼리 따로 살아야지 어떻게 두 부부가 한집에 살아?’하는 소리도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또 애를 쓰려고 했다.

이사를 가기 전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제는 부부끼리 살아야지, 너무 일반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우리 운명에는 없는 일인 것 같다. 한 번도 쌍둥이로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한 번도 쌍둥이와 쌍둥이로 만나 사랑에 빠져본 적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

이토록 애착 있는 관계가 있어본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참고 삼아 들어볼 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있고, 그들은 당연히 부부는 부부끼리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아기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너무 많았다.

그들의 생각이 이해가 된다. 우리의 삶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그들의 눈에 우리는 소수자이다. 우리의 삶의 방식이 그들에게는 불편하고 이상하고 비정상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우리가 함께 산 지 2년이 넘어가는데 같이 살아보며 느낀 건 우리가 함께 사는 것이 사실 가장 이상적인 삶인 것 같다.


사실 인류는 늘 공동체로 살아왔다. 개인주의라는 건 사실 최근 들어서 생긴 것 같다. 오랜 역사 동안 인류는 서로 돕고 서로 관계를 맺으며 함께 대가족으로 살아온 경우가 더 많다.

아이가 생기면 아빠 엄마뿐만 아니라 친척이며 이웃이 함께 키우며 자랐다. 현대사회에서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의 육아를 책임지는 사람이 아빠, 엄마 그마저도 둘 다 일을 하니 쉽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까. 게다가 부부 두 명이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나누는 것보다 다른 함께 사는 사람들과 부딪혀가며 살면 더 많은 생각과 의견을 들을 기회가 생긴다.

작은 사회를 가정에서부터 겪으며 자연스럽게 다양성을 존중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습관이 생긴다. 지금 사람들은 내 말을 충분히 표현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다른 무언가를 통해 표현의 욕구를 분출하는 것 같다.


다른 쌍둥이들의 삶도 궁금하다. 우리가 참여했던 쌍둥이 축제에 온 쌍둥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같은 직장에서 일하거나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까지 서로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여전히 남아있었던 우리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마음속으로 이런 질문이 일었다. ’그래도 된다고? 우리 안 떨어지고 같이 일하고 같이 살아도 되는 거라고?‘ 심지어 미둥이들은 우리보다 더 떨어져 본 적이 없다고 해서 우리는 그동안 왜 이렇게 떨어지려 애를 썼었나 싶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누구보다 더 편안해 보이고 더 행복해 보였고 더 자연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쌍둥이는 태어남과 동시에 함께 먹고 함께 자며 자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이제 각자 살자. 각자 옷 입고 각자 자자‘ 라고 한다면 이건 사실 쌍둥이에게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 거다.

엄마 아빠로부터 독립해야지 보다 더 큰 용기와 모험심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독립은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와야 하는 것이므로 고통은 필수다.

우리는 그 고통을 감내할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를 깨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세계가 넓어졌다. 그래서 고통을 감내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쌍둥이가 있다면, 그가 만약 과거의 우리처럼 똑같은 고민으로 무기력하다면 말해주고 싶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마음이 편한 대로 하셔도 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