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온제나 Oct 14. 2023

서울이 싫었던 한국인과 서울이 너무 좋은 미국인

저희도 남편들도 쌍둥이입니다

6. 서울이 싫었던 한국인과 서울이 너무 좋은 미국인


몇 년 전 세계여행을 가기 전 서울에서 잠시 살았다. 반지하 원룸에서 살며 열정도 패기도 넘쳤던 20대 초반, 여러 일들을 겪으며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이고 방황하고 우울했다. 점차 이 환경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지하철 타는 게 극도로 싫었고, 밖에 나가는 거조차 힘들었다. 사람이 싫어졌고 사람 많은 대도시가 싫었다. 그래서 떠나버렸다. 서울을 떠나고 한국을 떠나 도망가 버렸다.

사람 없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 지금도 너무 좋다.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기만 해도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꼈다. 여행을 갔다 와서 다시 서울에 왔을 때는 여전히 별로였다. 빨리 다시 나가고 싶었다. 숨이 막히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어쩌나. 여기서 발붙이고 살아야 했다.


반지하 원룸에서 살며 고군분투하던 중 미둥이들이 한국에 왔다. 그들은 가끔 함께 걷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하루에 6-7시간을 걸었고 특히 반짝이는 밤 풍경을 너무나 좋아했다.  미둥이는 크고 반짝이고 화려한 대도시의 풍경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더 사랑하는 풍경은 오래되고 낡은 뒷골목이었다. 높은 빌딩 뒤에 가려진 오래되고 낡은 곰팡내 나는 뒷골목들을 보며 미둥이들은 감탄을 머지않았다. 나와 언니는 편견에 가려 보지 못하는 도시의 아름다움을 그들의 눈으로는 볼 수 있었다. 몇십 년 된 건물이라 외관을 보면 다 쓰러져가고 귀신 나올 것 같은 건물을 미둥이들은 꼭 한 번씩 들어갔다 온다. 나와 언니가 용기 내 한번 들어갔다가 정말 귀신 씌이는 줄 알았고 그다음부터는 절대 따라 들어가지 않는다.


이 골목을 걸으면 여기가 좋다 저 골목을 걸으면 저기가 좋다 하는 미둥이들 덕에 우리는 서울의 여러 면면을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다. ”아니 이게 뭐가 예쁘다고 도대체? 어딜 보고 그렇게 말하는 거야? 내 눈엔 안 보이는데?“ 이제는 높은 건물에서 탁 트인 풍경을 보게 될 기회가 되면 미둥이를 꼭 데려간다.

홍대의 한 호텔에 태국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로비에서 보는 서울 풍경이 압권이었다. 미둥이와 우리가 서울 풍경을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휴대폰을 보며 소파에 앉아있던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도 미둥이를 만나기 전에는 이런 당연한 풍경들이 매력 있는 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나는 내가 사는 동네와 내가 사는 서울을 좋아하게 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매일 출퇴근하는 길에 만나는 홍제천은 덕분에 내가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거닐게 만들어줬고, 곳곳의 작은 골목들과 큰 빌딩들을 봐도 질리거나 도피하고 싶지 않다. 탁 트인 시골의 조용한 곳도 예쁘지만, 화려한 간판들과 높은 빌딩에 둘러싸인 서울의 모습도 예쁘다. 내가 이런 멋진 곳에서 살다니 하는 생각이 더 많아졌다. 내가 사는 곳을 사랑하게 되니 내 일상이 더 다채롭고 자유로워졌다. 우리는 이제 멋진 서울을 사는 서울러다.



서울이 나라면 너무 속상해


어느 금요일 파티 날이었다. 우리 커플들은 주로 나와 언니가 말을 많이 하고, 남편들은 들어주는 입장인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주제에 대해서는 미둥이가 더 주동적이고 흥분하며 투머치토커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서울’이다. 미둥이들은 ‘서울’이라는 주제로 아마 몇 시간이고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칭 서울 전문가인 제프가 한 말이다.

“나는 내가 서울이라 생각해.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에 내가 속하지 않는 게 너무 불만족스러워. 속상해”

이 말을 듣고 우리는 웃기다 못해 약간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아니 자기가 서울이라고 생각한다고?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에 서울이 매번 속해 있지 않아서 속상하고? 답답하다고? 제프의 그 흥분하면서 약간 화난 표정은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너네는 안 답답해? 사실 서울이 인구밀도나 어디서나 보든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한국 정부가 서울 인구를 계산하는 방식이 다른 나라들과 달라서 매번 제일 큰 도시에 속하지 않아. 다른 나라 대도시들은 거주하는 인구뿐만 아니라 유동인구도 함께 계산하는데, 서울은 왜 안 그런 거야? 그러니까 사실은 서울이 너무 크고 너무 멋진 도시인데 세상 사람들이 아직 잘 모르잖아 너무 답답해 이해가 안 돼!“

제프는 거의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물었다. ”너네는 안 답답해? 한국인으로서 불만족스럽지 않아?“ 나와 언니는 제프의 억울함을 열심히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래. 내가 서울이라고 생각해 보자. 억울한가? 답답한가? 미국 사람들 대부분이 서울을 몰라도 괜찮은가? 안 억울한가?’ ”음.. 잘 모르겠는데.. 조금 그런 것 같기도..“

우리의 반응에 제프는 거의 펄쩍 뛸 뻔했다. 그런데 이렇게 서울을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하는 미둥이도 처음 서울을 방문했던 때는 지금과 상상하기 어려운 반응을 보였다.


2019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때가 명절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택시 안에서 바라본 서울 중심인 종로는 한적하고 조용해 보였다. 당시 한국에 대해 너무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우리는 들뜬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소개했는데, 미둥이들의 표정이 큰 흥분 없이 ”아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는 반응에 약간 실망스러웠다. 어떤 외국인은 뉴욕보다도 서울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는데, 얘네는 더 큰 도시들을 많이 보고 와서 그런가 서울은 별로 안 크게 느껴지나?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그때 그랬잖아라고 말하면 제프는 당시에 자신의 반응이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해가 된다.

나도 매번 새로운 국가를 방문했을 때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불편하고 낯설고 대도시가 다 거기서 거기지 하는 생각.

하지만 2년 넘게 살아보며 미둥이들은 서울을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 커플들은 작고 소소한 의견과 결정들은 주로 언니와 나의 의견에 많이 따라간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큰 결정들, 예를 들어 한국에 살자, 서울에 살자, 이런 집에 살자, 하는 큰 결정들은 사실 우리가 미둥이에게 맞춰 살아가게 된다.


언니와 나는 늘 시골 라이프에 환상이 있는데, 점점 그 꿈을 포기하게 된다. 미둥이들이 너무나 서울을 좋아하기에 우리는 감히 시골생활을 꿈꿔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 그 욕구를 풀고자 자주 여행을 다니기로 정했다. 미둥이들이 서울을 바라보는 관점들 덕에 서울을 싫어했던, 한국을 싫어했던 한국인인 우리는 서울을 달리 보게 되었다.

”사람이 너무 많고 복잡해“ 라는 관점에서, ”사람이 많아서 편하고 더 반짝이는 도시지“ 아무래도 우리는 서울에서 오래 살게 될 것 같다. 미둥이가 서울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과 관점을 유튜브로 찍는다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은데, 남편들아, 그럴 생각까진 없는 거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