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미둥이를 처음 만났을 때 나와 언니는 그들의 한 가지 태도에 적잖이 충격받았었다.
그들은 우리의 아주 작은 행동에도 고맙다고 말했다.
물건을 건네받을 때도 “고마워”, 함께 여행할 때 교통편을 알아봤을 때도 “고마워”
나의 아주 당연하고 익숙한 행동에서 “고마워”라는 말을 들으니 처음에는 약간 이상했다.
‘이것까지고 뭘?’ ‘얘네들 너무 순진하고 착하네’
얘네들을 만나기 전까지 나와 언니의 관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여행하며 교통편을 찾아보든 물건을 건네주든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그것밖에 안 했냐며 핀잔주고 눈치 주기가 일쑤였었다. 서로에게 ”고마워“라는 말을 하는 게 어색했고 부담스러웠다.
그런 말은 정말 낯선 사람들에게나 하는 거였고, 아주 가까운 가족들 사이에는 하는 게 아니라고 느꼈었다.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려하면 온몸이 오글거렸다.
지금은 제프에게도 멧에게도 언니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고마워“를 하루에도 열댓 번은 더 하는 것 같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서 제프가 셰이크를 만들어주면 ”고마워“, 내가 이부자리를 정리하면 제프가 나에게 ”고마워“, 내일 파티에 필요한 식재료를 제프가 사줘서 ”고마워“, 저녁에 함께 영화를 보기 전 누군가 빔프로젝터를 설치해 주면 ”고마워“, 누군가 설거지를 해주면 ”고마워“, 미둥이가 빨래를 해주면 “고마워”, 미둥이가 쓰레기를 버려주면 “고마워”, 미둥이가 음식을 시켜주면 “고마워”, 함께 외식하고 카드를 긁어주면 “고마워”, 양치할 때 칫솔에 치약을 묻혀 전해주면 “고마워”, 자기 전 서로 마주 보고 “네 존재에 감사해”
평상시 루틴대로만 해도 10번은 고맙다고 표현하는데, 여행을 한다거나 특별한 일이 생기면 고마울 일들이 더 많아진다.
고맙다고 표현을 하게 되면서 내 마음의 변화와 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상대에게 바라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를 위해 어떤 작은 행동을 해주는 게 고맙다.
사실 칫솔에 치약을 묻히는 일은 작은 행동이지만 그 안에 든 나를 위한 마음은 우주만큼 크다. 내가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해주는 행동이라 해도 내 마음의 상황에 따라 어느 날은 보상심리가 생길 때도 있다. ’내가 이만큼 해줬는데 왜 쟤는 나만큼 안 해줘?‘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마음은 지옥 입구로 가 있다. 그럴 때 고마움을 강요하게 된다. “너 이거 고맙지?” “내가 이만큼 해주니까 엄청 고맙지?”
이럴 때는 상대의 잘못이 아니다. 상대에게 고마움이란 달콤한 보상을 얻기 위해 내 기준에서 맞는 이기적인 행동을 했다는 뜻이다.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내 마음을 희생하며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나는 우리 관계를 통해 알게 되었다. 특히 나와 언니는 동거 초반 미둥이에게 많은 걸 강요했었다. 한국에서 자라고 봐온 문화들을 미둥이에게 무의식적으로 푸시했다. 특히 생활습관 부분에서 가끔 갈등이 생겼다.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라던가 음식물을 처리한다던가 요리를 한다던가 하는 일들에서 말이다.
어쩌면 미둥이가 미국인이라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에서 자라서 아주 작은 일도 고맙다고 표현하는지도 모르겠다. 고맙다는 말을 의식적으로 대뇌이다 보면 일상에, 세상에, 인생에 고마운 것투성이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살아있어서 감사합니다” “신체가 건강해서 감사합니다” 아침에 할 루틴이 있고 그걸 해내는 저에게 ”감사합니다“ 이렇게 넓고 밝은 집에 넷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 수 있는 돈이 충분히 있어 ”감사합니다“ 따뜻한 옷이 있고 시원한 에어컨이 있어 ”감사합니다“ 출근할 장소가 있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합니다“ 선선한 바람과 초록빛 나무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아침마다 출근길에 오리들을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즉각적으로 내 감정을 바꿔버리고 부정적이던 마음의 습관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 관계에 있어서도 충만하고 만족스러워진다. 갈등이 있어도 회복하고 잘 풀어나갈 수 있어서 감사해진다. 고민과 걱정이 있어도 그것 때문에 더 발전할 수 있어서 감사해진다.
사랑을 더 믿게 되고 세상의 아름다운 부분들을 볼 수 있게 되어 감사해진다. 내 안의 가능성을 믿게 되고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어 더욱 감사해진다.
*똥을 싸도 "잘했어"
우리의 말버릇 중에 단연코 제일 마법의 말은 “잘했어” “수고했어” 이다. 고마워 다음으로 만족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는데 이만큼 좋은 말버릇이 없다. 언니는 장이 예민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꽉 막혀버린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그들과 함께 공간에 있거나 (특히 같이 잘 경우) 낯선 곳에서 자거나 사업에 고민이 있어 잠에 못 들거나 하는 경우 바로 아래가 꽉 막혀버린다. 며칠을 못 싸면 스트레스는 더 심해지고 성격은 예민해진다. 연애 초반에는 멧을 안고만 있어도 바로 장이 편안해져서 변비가 해결되었었다. 이름하여 ‘멧의 효과’랄까. 어쩜 그렇게 내가 옆에서 긍정적인 말과 칭찬을 해줘도 안되던 것을 멧의 얼굴을 쳐다보고 안기만 해도 그렇게 쾌변에 숙면을 취할 수가 있단 말인가.
가끔 정말 신기하고 놀랍다. 평생 같이 태어나고 자란 건 나인데 불과 알게 된 지 5년밖에 안된 멧의 영향력이란…
하지만 멧에게 질투란 하지 않는다. 언니가 편해지면 나도 편해지기 때문에 멧을 향해 마음속으로 큰 절을 올린다. ‘내 인생을 편하게 해 줘서 감사합니다 우리 언니 잘 거둬가줘서 감사합니다‘
이러하니 언니가 쾌변을 싸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순간 세상 희망차고 밝은 얼굴로 “얘들아 나 똥 쌌어” 라고 외치는 순간 멧은 비슷하게 밝고 다정한 얼굴로 ”잘했어“라고 말해주는 거다.
’잘했어‘ 라는 말의 힘은 강력하고 전염이 잘 된다. 어느새 나도 언니에게 ”잘했어“라는 말을 잘 해주고 있다. 특히 부부 사이에 이런 말을 잘해준다. 아침에 일어나 원하는 루틴들을 행동했을 때, 늦잠 자고 일어났어도 명상을 하고 모닝페이지를 적었을 때, ”나 오늘 늦게 일어났는데도 명상도 하고 모닝페이지도 적었다? 그리고 책도 좀 읽었어“ 라고 말하면, 제프는 ”잘했어 대단해!“ 라고 해준다.
제프랑 멧은 스스로가 한 행동에 대해 먼저 ’나 대단하지?‘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물어본다.
“오늘 성공한 일은 뭐야?” 처음에는 성공한 일? 없는데? 라고 반응하며 5개를 말하기 너무 힘들어했던 미둥이인데 요즘에는 자기 전 루틴이 되었다. 졸려 죽겠지만 꼭 하고 자는 습관이 되었다.
잠들기 직전 “오늘은 성공한 게 뭐야?” 라고 물으면 “음.. 오늘 셰이크 두 번 먹었어.”
원래는 아침에 한 번만 먹는 건강 셰이크를 점심에도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 건강을 챙겼다는 뜻이다. 그럼 나는 ”우와 대단해 너무 잘했어“ 라고 말한다. 그 말에 힘입어 제프는 또, ”오늘 운동도 했어“
그럼 난 존경과 대단함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또 말한다 ”우와 대박 진짜? 너무 대단해“
”음 그리고 글 많이 썼어“ 몇 개월 동안 안 쓰다가 최근에는 영감을 받았는지 쭉쭉 쓰고 있다.
처음에는 한국인의 겸손이 나왔다. "아니 뭐 그런 걸로 칭찬을. 이거 그렇게 대단한 거 아냐.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데 뭘" 미국인이라고 해서 다른 것도 아니었나 보다. 우리보다 더 루틴이 명확하고 매일 반복되는 삶을 사는 미둥이들은 5가지 잘한 일이 거의 매일 비슷하다. 그래서 내가 폭풍 칭찬을 해줘도 처음에는 나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이거 그냥 일이잖아. 이거 그냥 하는 거잖아"
그럼 내가 또 이렇게 말한다. "이거 매일 하는 거 보통 일이 아니야 정말 대단한 거라고 나는 그렇게 못해 대단해 진짜 대단한 거라니까?!" 그럼 머쓱한 듯이 웃으며 내 칭찬을 받아줄 듯 아닐 듯한다.
그런데 이 습관을 며칠 계속해보고 나니, 제프의 반응이 좀 달라졌다. 조금 더 수월하게 잘한 일을 꼽는다. 그리고 내가 물었다. "너 진짜 네가 잘한 일 같아? 내가 하자고 해서 억지로 하는 건 아냐?"
"근데 해보니까 정말 잘한 것 같아 자신감이 생겨"
물론 며칠 해본다고 해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폭풍 생겨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전에는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를 낮게 측정했다면 요즘엔 그러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잘했어”는 스스로를 더 격려하게 되고 더 많이 칭찬하게 된다. 그러니 자신감이 생기고 더 행복해진다.
그리고 더 많이 만족스럽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더 의욕이 생긴다. 잘했다 한 마디의 힘이 내 인생에 끼치는 영향이란 너무 크다. 우리가 자라면서 아주 작은 것에도 잘했다 잘하고 있다는 소리를 계속해서 듣고 말하면서 자랐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랐을까.
지금이라도 내 옆의 사람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잘했어. 수고했어. 대단해. 잘하고 있어. 잘할 거야”
*오늘은 "어땠어?"
공방을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남편들이 따뜻한 조명을 켜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서로의 품에 안겨서 한참을 머문다. 하루 안에 있었던 고민과 걱정들 분투와 고됨이 멈추고 비로소 온전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매일 아침 자세를 고쳐 앉아 명상하는 순간보다 사실 제프를 안고 있을 때 더 현재에 오롯이 있게 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나는 제피테이션(Jeff+Meditation) 언니는 멧디테이션
(Matt+Meditation)이라고 부르는데 그 느낌이 뭐랄까. 엄마 자궁에 들어있을 때 이렇게 편안했을까 싶은, 추웠다가 따뜻한 이불속으로 쏙 들어갔을 때의 편안함이랄까.
강아지나 고양이 털에 얼굴을 묻고 '아~'하는 탄성이 나오는 순간이랄까,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완전히 멍 때리게 되는 그런 순간이랄까, 아무튼 시간이 멈추고 공간이 멈추는 그런 느낌이 든다. 짧지만 하루 중 가장 행복하고 충만한 시간이다. 에너지가 좋은 날은 포옹 뒤 곧바로 묻는다.
"오늘은 어땠어?"
오늘 하루의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 우리는 거의 매일 하고 있다.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그의 하루가 궁금하다. 오늘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행복하게 보냈는지 즐겁게 보냈는지 안 그랬다면 왜 그랬는지 돌봐주고 싶어 진다. 그리고 나도 돌봄을 받고 싶어 진다.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의 마음을 매일 들여다보고 싶고 그가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는지 마음은 어땠고 잘한 일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 참 감사하다.
제프를 대할 때처럼 나에게도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서 늑장을 부리면 '왜 빨리 안 일어나? 해야 할 루틴이 얼마나 많은데 오늘 또 빨리 나가기로 했잖아 일어나라고!' 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요즘엔 의도적으로 나에게 제프를 대하듯 하려 노력한다.
'그래 누워있고 싶지 9시간이나 잤는데도 피곤하지 괜찮아 하루 정도 좀 쉬면 어때 루틴 좀 포기하면 뭐 어때 괜찮아 누워있어도 돼 좀 더 자‘ 신기하게도 매번 효과가 있다. 이렇게 스스로를 달래면 얼마 안 돼서 눈이 떠진다.
'오 뭐야 일어나려고? 근데 진짜 더 누워있어도 되는데? 그래도 일어나려고? 와 너무 대단해 잘한다 잘한다 잘했어 잘했어' 아니 30살이나 돼서 아침에 일어나는 것조차 스스로에게 이렇게 어르고 달래서 칭찬하라고? 난 50이 돼도 60이 돼도 스스로를 어르고 달랠 것이다.
스스로를 비난하며 아침을 시작하는 것보다 어르고 달래고 칭찬하는 것이 나를 더 일어나게 한다는 걸 최근 알아버렸다. 매번 진심을 다해 스스로를 잘 돌봐주려 하니 신기하게도 일어나서 뭘 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