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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제나 Oct 14. 2023

불금에는 파티를 여는 우리 가족 문화

저희도 남편들도 쌍둥이입니다

7. 불금에는 파티를 여는 우리 가족 문화


미둥이는 한국에 오기 전 중국에서 둘이 살 때부터 자신들의 전통을 만들었다. 바로 불금의 밤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파티를 연다. 왠지 미국인이 파티를 한다고 하면 온 동네 친구들을 초대해 술과 춤의 파티를 열 것 같지만, 우리 남편들은 그런 미국인이 아니었다.

먼저 금요일 퇴근을 하고 나면 냉장고로 가서 고량주 한 병을 꺼낸다. 그리고 체이서를 할 콜라(제로콜라)를 함께 꺼낸다. 그리고 노트북을 모두 켜고 빔 프로젝터를 켜서 집안의 모든 전자기기는 모두 켜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튼다. 미둥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사이버 펑크(Cyberpunk), 신스웨이브(Synthwave), 시티 팝(Citypop) 같은 음악들을 유튜브에서 불러내 튼다. 화면을 틀어놓는 이유는 유튜브에서 나오는 배경화면을 보며 느끼기 위해서다. 이제 파티 준비가 다 끝났다.

우선 고량주를 소주컵에 꼴꼴꼴 따른다. 원샷한다. 한 모금의 파인애플 맛 고량주가 목구멍을 타고 흐른다. 재빨리 제로콜라 입구에 입을 갖다 대고 고량주의 흐름을 따라 콜라를 흘린다. 두 음료가 믹스되어 함께 아래로 흐른다. 캬~


집안의 모든 불은 다 끈다. 작게 틀어놓은 라탄 조명에서 나오는 따뜻한 불빛과 밖에 보이는 건물들의 빛만이 전부다. 아 크게 깜박한 게 있다. 미둥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반짝이는 빛들이다. 초록 하얀 분홍 파랑 빛들이 왔다 갔다 움직이는 빛을 천장에 붙여 달았다. 그리고 무슨 노래방에 가면 있을법한 그런 조명도 사서 라탄 조명 아래에 뒀다. 조명이 움직이며 온 집안이 색색으로 비친다. 미둥이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 때린다. 도대체 뭘 보고 있냐고 물어보면 손가락을 가리키며 씩 웃는다. 그러니까 저거 뭐? ”응? 저 풍경 저거 안 예뻐? 엄청 예쁘잖아!“

이전 글에서 썼듯 미둥이들은 그냥 그 서울의 풍경 자체를 좋아한다. 아직도 왜 갑자기 멍 때리며 감탄을 하며 풍경을 보는지 이해가 안 된다. 길을 걷다가도 미둥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와“ 감탄사를 내뱉으면 나도 자동반사적으로 멈추고 그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열심히 찾는다. 도대체 뭘 보고 와!라고 한 거지? 한참을 봐도 못 찾는단다. 왜냐하면 미둥이는 뭔가를 보고 한 게 아니라 그저 전체적인 풍경을 보고 와! 라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2년이나 같이 살아도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풍경을 보고 나서 담소를 나눈다. 매일 대화를 하지만 특히 금요일 밤은 더 많은 더 깊은 대화를 많이 나눈다. 그리고 가끔 춤도 춘다. 제프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상한 동작을 자주 하는데 나도 그걸 따라 춘다. 언니와 멧은 우리를 보며 박장대소를 한다.

올해부터는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금요일 밤에 읽은 내용에 대해 나눈다. 4명의 서로 다른 의견과 느낌들을 공유하다 보면 깊어지고 또 밝아졌다가 흥분했다가 오디오가 비지 않는다. 이번 주는 <마음 가면>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책 안에서 한 파트를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취약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취약성과 수치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끝없이 진지해지며 서로의 취약한 점,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자신도 몰랐던 트라우마와 흥분하는 점들, 약한 점들을 하나하나씩 꺼내게 된다. 그렇다고 매번 진지하지만은 않다. 박장대소할 때가 더 많다. 일본에서 온 포도맛 나는 맥주를 마시며 농담과 진지함의 선을 줄타기하듯 넘나 든다.


한두 시간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배가 고프다. 물론 과자를 먹으며 허기진 배를 달래기도 했지만, 이제 본격적인 요리를 할 차례다. 금요일은 미둥이가 요리사. 둘이 돌아가며 요리를 한다. 요리라 해봤자 고기를 굽는 게 다이지만. 비건을 선언한 나와 언니는 이제 콩고기를 먹기로 했다. 그런데 맛이 너무 좋고 질감도 고기와 너무 비슷해서 미둥이들도 콩고기에 반했다. 한 명이 고기를 볶고 있으면 우리는 또 쫄래쫄래 주방으로 가서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한다. 파티 동안 오디오가 빌 수는 없다. 잠깐의 침묵도 허용되지 않는다. 평소에도 말이 많은 나와 언니는 금요일 밤만 되면 투머치토커가 된다. 평소 말이 많지 않던 미둥이들도 말이 많아지는 시간이다. 특히 정치, 경제, 기술 등의 이야기를 나누면 미둥이가 대화를 주도하게 된다. 우리는 머리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지만 여전히 NFT가 무엇인지, chat GPT가 얼마나 우리 삶에 들어와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렇게 알차고 흥분되고 즐거운 파티를 하고 나면 양치를 하고 잠이 든다. 설거지는 내일 아침에 누군가 하게 될 거다. 매주 금요일 파티는 이미 우리 집의 2년 넘게 지켜지는 전통이 되었다.


세계여행을 했을 때 한 달 뒤 어딜 여행할지 계획을 짜지 않았던 우리는 그게 자유로움을 상징한다고 생각했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일주일 안에서 딱 정해져 있는 이벤트가 있는 것이 싫었다. 부담스러웠고,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계획을 짠다는 것은 나와 언니에게 있어서 자유를 뺏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루틴이 있다는 것은 자유로운 영혼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안정적인 생활을 시작하며 그때 사실은 얼마나 불안했었는지가 떠올랐다. 그래 루틴이 있다는 것, 선택지가 많이 없다는 건 오히려 자유로운 일이야. 물론 일주일에 하루쯤은 아무런 할 일이 없는 시간이 있는 것도 자유롭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두세 시간만 지나도 지루해진다.

이제는 매주 금요일 밤이 기다려진다. 완전히 릴랙스 하면서 쉬는 게 뭔지 제대로 알아버렸다. 그래서 넷 다 금요일 밤의 전통은 어떻게든 지키려 한다. 매일 또는 매주 지정된 일을 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완전히 쉴 수 있는 자유로움을 가져다주었다.



화요일은 비건데이

사실 처음에는 포차 데이였다. 포차를 너무 좋아하는 미둥이 들 덕에 우리 집에서도 포차 느낌을 가져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요리하고 싶어 하는 수둥이들이 화요일은 요리사. 금요일 파티가 끝나고 토, 일이 지나 월요일이 지나면 금요일까지 너무 많이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또 설레고 기대되는 날을 하나 정했다. 화요일이면 딱이다. 금요일이 지나고 3일 뒤이며 금요일이 오기 3일 전이니 딱 좋은 날이다. 처음 몇 개월은 나와 언니가 요리를 했다. 유튜브에서 간단한 포차 요리들을 찾아보며 엄청나게 맛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었다. 하지만 퇴근하고 장보고 집에 와서 가스불 앞에서 요리까지 하고 나면 진짜 저녁을 먹게 되는 시간은 9시가 지나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너무 녹초가 되었다. 미둥이들처럼 단순히 고기를 볶는 행위만 하는 게 아니고 메뉴도 매번 바뀌니 부담이 컸다. 나도 모르게 요리를 하며 인상을 쓰게 되었고 그 부정적 감정은 나머지 셋에게 그대로 전파되었다. ‘내가 이 정도 하면 너네가 다 알아서 도와줘야 되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분위기는 안 좋았다. 미둥이들은 부담스러워했고, 언니와 나도 불만이 쌓였다. 이것에 대해 여러 번의 작지만 큰 갈등의 순간들을 겼었다. ’주방에서 요리하는 걸 도와주는 게 당연해 그렇지 않으면 부부 사이는 평등한 게 아니야‘ 라고 강하게 믿어온 나와 언니는 어쩌면 본 가정에서 느낀 불평등을 우리 가정에서 해소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엄마의 요리에 부담과 스트레스를 느끼며 자랐던 미둥이들 또한 요리는 절대 안 하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타협했다. 그럼 요리를 단순하게 하자고. 그래서 포차 데이를 선포한 지 몇 개월 만에 삼겹살데이로 전환했다. 삼겹살은 미둥이가 너무 좋아했고 우리도 한편으로 고기 구우며 계속 대화할 수 있으니 좋았다. 막내 동생이 두고 간 불판을 꺼내 매주 고기를 사서 구웠다.

테라스에서도 먹고 거실에서도 먹고 하지만 요리하는 나의 부담은 계속 있었다. 게다가 고기를 먹고 싶지 않다는 욕망도 늘 있었다. 완전히 행복하지 않은 채로 행동하는 건 다 전염되는 것 같다.


어느 날 넷플릭스의 더 게임 체인져스라는 다큐를 네 명이서 보았다. 사실은 운동에 대한 저항감이 커서 이걸 보면 운동하게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켰다가 완전 비건에 대한 내용이구나를 알아버렸다. 세계여행을 하던 5년 전부터 나와 언니는 비건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었다. 하지만 미둥이를 만나고 나서 함께 먹는 즐거움을 알아버려서 계속 미뤄왔다. 언젠가는 하겠지. 언젠가는 할 수 있겠지. 그러나 그 언젠가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도 점차 느끼게 되었다. 이 다큐를 보고 언니와 나는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래 이제 더 이상 미둥이 핑계 대지 말자. 내 몸을 위해서 내 마음을 위해서 그냥 지금 당장 시작하자. 포차 데이에서 삼겹살데이로 바뀐 지 몇 개월 만에 또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비건데이로.

이제 화요일은 무조건 비건 음식을 해 먹는 날이다. 식재료가 건강하니 죄책감이 1도 안 생기고, 요리를 할 때도 기분이 좋다. 비건 친구가 말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이런 건가 싶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우리의 전통이 생겼다. 매주 매일 뭔가 기대할 거리가 있다는 건 엄청난 행복이라는 걸 느낀다.


일주일에 한 번은 햄버거 또는 브리또 파티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음식을 해 먹는 날,  그런데 이걸로도 왠지 성에 안 찼다. 특히 일요일 밤에는 뭘 하며 보내야 할까 고민했다. 뭔가 이벤트가 없으면 넷다 어딘가에 누워 휴대폰만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린 일요일 밤의 작은 이벤트를 만들었다. 바로 무비데이. 영화를 좋아하는 미둥이 덕에 우리는 살면서 최근 5년간 영화관을 제일 많이 다녔다. 그러나 무비데이라고 해서 항상 영화만 보지는 않는다. 명탐정 코난을 볼 때도 있고(요즘엔 자꾸 잠이 들어서 잘 안 보게 된다), 다큐를 볼 때도 있고 예능 프로나 드라마를 볼 때도 있지만, 그 시간만큼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본다.

일주일에 3개 정도의 정해진 루틴이 있으니 삶이 더 활력이 돋는다. 우리 사이가 진짜 즐거워지고 행복해지게 된 것도 이런 작은 이벤트들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강제성은 없지만 이날은 이걸 하기로 하자라고 약속하니 즐거운 마음으로 약속을 기다리게 된다. 이제 토요일의 루틴도 찾아볼 생각이다.

최근에 동물의 숲을 넷이서 같이 해본 적이 있는데 이것도 너무 즐거워서 아마 토요일은 이 루틴이 들어갈 것 같다. 그리고 산책도.

일상을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한 소소하지만 큰 이벤트들이 우리를 더 깊고 느슨하게 연결되게 한다.

많은 가족들이, 그리고 함께 사는 동거인들이 이런 소소한 이벤트들을 주기적으로 가져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분명 관계가 더 좋아질 거라 확신한다. 물론 한 명의 강제성이 아닌 참여자 모두의 즐거운 동의는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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