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온제나 Oct 14. 2023

한국인이랑 미국인이 왜 중국어를 써요?

저희도 남편들도 쌍둥이입니다.

8. 한국인이랑 미국인이 왜 중국어를 써요?


우리 커플들이 밖에 나가면 사람들로 하여금 가장 자주 듣는 말 best 3위 안에 드는 질문이다. “한국인이랑 미국인이 왜 중국어를 써요?” 사실 이 질문 전에 두 번의 질문이 더 있을 때도 있다. 먼저 사람들은 누가 봐도 외국인인 미둥이를 바라보며 우리에게 묻는다.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미국인이요”

그럼 이어지는 언니와 나를 향한 질문, “그럼 두 분은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네? 아 저희는 한국인이요” “그런데 방금 쓰는 언어는 중국어 아닌가요?”

그러게 말이에요.

미국인이랑 한국인이 만나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제3의 언어인 중국어로 소통을 하다니. 우리도 신기하지만 우리에게는 중국어가 가장 편한 의사소통이다. 몇몇 사람들은 나와 언니를 보고 화교니 조선족이니 하기도 했다. 뭐 도움이 될까 몇 자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DNA 테스트를 했을 때 중국 쪽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이 1% 있었다. 어쨌든 우리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이며

미둥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이다.


첫 만남부터 편했던 이유는 바로 중국어 때문이었다. 외국인을 보며 지레 영어울렁증으로 긴장부터 했던 우리에게 중국어를 서툴게 하는 미국인의 모습은 너무 부담이 없이 편했다.

하지만 한국에 살게 되면서 미둥이들이 한국어에 관심이 많이 생겨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 요즘에는 3개 국어를 섞어 쓰게 되는데 그래서 중국어도 한국어도 영어도 다 좀 개차반인 것 같긴 하다. 중국을 안 간지 오래돼서 중국어 잘하는 사람이 들으면 ”응? 방금 무슨 말 한 거지?“ 라고 할 테지만, 우리는 그 말도 안 되는 중국어로 갈등을 풀기도 하고 농담을 하기도 하고 깊은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미둥이와의 언어소통에서 우리가 크게 깨달은 것은 언어는 소통에 있어서 중요한 게 아니구나라는 것이었다.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과 만나도 소통이 잘 안 된다는 느낌은 너무 많이 받아왔다.

아장아장 중국어로 대화를 하는데도 소통이 이렇게 잘 된다고 느끼는 이유는 서로의 공감 능력에 있었다.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제프는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진정한 소통은 언어 그 뒤에 있다. 눈빛과 비언어적 소통에서 상대가 원하는 걸 알아차리고 상대의 마음을 알고 배려하는 것, 그것이 소통이라는 걸 배우게 되었다. 아주 간단한 의사소통만 할 수 있어도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좋아해 행복해 만족해 불편해”


어쩌면 우리가 이런 간단하지만 가장 중요한 표현들을 자주 사용하지 않고 더 복잡하고 어려운 어휘들로 둘둘 둘러 가며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않는 건 아닐까. 내 모국어를 잘 아는 상대와 살아갈 때 오히려 쉽게 놓치게 되는 것은 상대도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알아듣겠지’ 하는 큰 착각에 쉽게 빠진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말하기 힘들고 용기가 나지 않으니, 둘러둘러 말하게 되는데 이는 곧 오해를 쉽게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아장아장 외국어가 오히려 낫다고 생각한다. 답답할 때는 사전을 찾아가며 이야기하면 된다. 그 답답함을 못 이겨 관계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은 사랑을 하지 않은 게 아닐까. 언젠가는 한국어로만 대화해도 완전히 이해하고 소통이 되는 날도 오겠지만, 나는 지금이 너무 만족스럽다.

오히려 한국어를 더 잘 알아듣게 되는 미둥이 실력이 좀 아쉽달까. 아기들이 빨리 커서 아쉬운 그런 느낌이랄까.


3개 국어로 대화를 한다고 들으면 뭔가 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릴 때 티브이에서 외국에서 오래 살았던 한국인들이 말을 할 때 좀 재수 없다고 생각한 적이 참 많았다. 아니 영어를 쓸 거면 영어를 쓰고 한국어를 쓸 거면 한국어를 쓰지 왜 있어 보이고 싶어서 중간중간 영어를 쓰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3개 국어를 짬뽕하면서 대화한다. ”最近在家cockroach 봤어 어떡해?“ - (요즘에 집에서 바퀴벌레 봤어 어떡해)

”내 생각에 这是我的vulnerability” - (내 생각에 이게 내 취약성인 거 같아)


미둥이들이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며 최근에는 한국어로만 간단한 대화는 많이 한다. 하지만 특정 고유명사나 한국어나 중국어로 뭐라고 말하는지 모를 때 영어로 쓸 때도 많다. 또는 영어나 중국어로 표현이 잘 안 되는 한국어들은 한국어로 쓴다. 우리가 영어와 중국어에 익숙하지 않아서 한국어 감정 표현을 더 많이 쓰는 것도 있다.

“답답해” “억울해” “속상해”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짬뽕 3개 국어를 한다고 해서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으셔도 된다. 3개 국어가 다 너무 아장아장하기 때문이다. 중국인이 우리의 중국어를 들으면 코웃음을 치거나 귀엽다고 생각할 것 같다. 우리가 외국인들이 쓰는 한국어가 귀엽다고 느끼듯이 말이다.  영어는 너무 많이 안 써서 혀가 이제 굴러가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릴 때 봤던 그 재수 없어 보였던 사람들이 이해가 되었다. 3개 국어를 쓰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단어나 표현이 생각이 안 나서다. 아주 익숙했던 단어들도 갑자기 생각이 안 날 때가 너무 많다. 기억력의 문제라고?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영어와 중국어 한국어의 언어체계가 너무 다르다.

하나의 머리 안에서 3개의 언어체계가 왔다 갔다 하니 정말 머리를 많이 쓰게 된다. 그러니 대충 소통만 되면 되지 하는 마음에 짬뽕 언어들이 나오는 것 같다. 그래도 좀 심각하고 중요한 대화를 할 때는 여전히 아장아장 중국어로 대화한다. 문법 무시 성조 무시이긴 하지만 우리는 이 중국어로 온갖 주제들에 대해서 모두 대화할 수 있다. 중국도 지금 안 간지 너무 오래돼서 중국어도 계속 퇴화하고 있고, 영어도 퇴화하고 있고 어찌 된 영문인지 한국어까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언어를 완벽하게 잘하고 싶어 했다. 내 10년 정도의 버킷리스트에서 1위 2위는 영어와 중국어를 유창하게 잘하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아 졌다. 생각해 보니 내가 영어와 중국어를 잘 쓰고 싶던 이유는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이유가 컸기 때문이다.

지금은 소통만 잘 되면 언어가 유창하지 않아도 괜찮구나 싶다. 마음을 주고받고 서로 존중하며 대화하는 것에서 언어 자체의 능력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배웠다.


언어는 단순히 소통의 도구가 아닌, 마음과 마음을 잇는 중요한 도구다. 마음이 먼저, 그다음이 언어이다. 아무리 어렵고 화려한 어휘력으로 유창하게 언어를 한다고 해도 그 말속에 상대에 대한 배려나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유치원생들의 언어를 우리는 다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합니다. 슬픕니다. 만족합니다” 단순하면서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마음의 표현들을 건강하게 말할 수 있기를.

I 爱 너, 사랑합니다.



이전 07화 불금에는 파티를 여는 우리 가족 문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