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주 우울해한다. 최근 들어 몇 년 전 보다 많이 줄었지만 가끔 우울감이 덮쳐오면 어찌할 도리 없이 무기력해진다. 명상도 하고 요가도 하고 책도 보고 사랑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도 다 하고 여행도 다니는데, 이제는 정말 내 인생이 완벽해야 하는데 왜 또 우울할까.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더 우울해진다.
그럴 때 가만히 집에 와 제프를 안는다. 따뜻한 온기를 전해 받으며 온갖 번잡했던 생각들이 일순간 멈춘다. 머릿속에 조금 전까지 ~해야 되는데 하던 모든 생각들이 다 부질없게 느껴진다. 그래 이 포옹 하나면 나 잘 살고 있는 거지. 하루에 한 번 이상 이런 따뜻한 포옹할 수 있는 나는 복 받은 사람이지.
내가 우울하고 무기력해 있으면 제프가 와서 머리를 들이밀며 내 어깨에 대고 비빈다. 마치 털이 복슬복슬한 대형견 한 마리가 부비부비 하는 것 같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면 기분이 이럴까. 갑자기 제프가 전기모기채를 들고 허공에 스윙한다.
내가 물었다. "잡았어?"
"응 내가 방금 니 우울 잡아서 죽였어"
난 정말 초파리를 잡은 줄 알고 물어본 건데 내 우울을 잡아 죽였단다. 사실 이 귀엽고도 신선한 발상은 제프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제프만 너무 귀염둥이처럼 느껴질 거 같아서 말해보자면 원래 아이디어는 나로부터 비롯됐다.
나에게 적이 우울이라면 제프의 적은 불안, 초조함이다. 나는 처음에는 초조함의 뜻도 잘 몰랐다. 그런데 감정은 전염이 되는 것일까. 나도 가끔 초조할 때가 생겼다. 초조함은 우울함과는 다르다. 둘 다 마음이 허기진 느낌이 드는 건 같지만 초조할 때는 뱃속 아래부터 쭉 올라오는 답답하면서 꽉 조인 느낌이 있다. 명치 부분이 꽉 조인 듯 답답하다.
제프가 불안하고 초조해할 때 나는 우산을 들었다. 그날은 제프의 불안, 초조함의 강도가 너무 세서 집에서도 충분히 휴식을 못 취하고 뭘 하든 집중하지 못했다. 비가 꽤 오는 날이었지만 난 제프의 손을 잡아끌고 홍제천으로 나갔다. 우리는 그냥 홍제천을 따라 걸었다. 나는 제프에게 들고 있던 우리 둘 우산 빨강, 파랑 우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부터 난 너의 초조함 보호자야. 내가 이 우산으로 초조함으로부터 너를 막아줄게. 이얍!"
칼을 빼 든 전사처럼 우산을 들자 제프가 빵 터져 웃으며 너무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서로 그림을 그려 휴대폰 잠금 화면으로 설정해 놨다. 언제든 우울과 초조가 마음을 침범하려 할 때 이 그림을 보고 어벤저스 같은 든든함을 느끼라고. 서로에게 마음을 보호해 주려는 작고 사랑스러운 노력들로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있는 중일 것이라 믿는다. 서로의 믿음과 사랑 응원과 격려가 없다면 사람은 진정 성장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