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내 얼굴을 보기가 싫어졌다. 피부는 기미에, 여드름 흉터에, 잔주름에, 마음에 안 드는 것투성이.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이상하게 뻗어있고 곱슬머리도 아니고 직모도 아닌 애매한 반반 곱슬머리에, 배가 튀어나와 줄어들 가능성은 없어 보이고, 오늘 입은 옷은 또 왜 이렇게 후줄근한지. 이렇게도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별로라고 느끼는 것은 아마도 그날 타인의 SNS를 오지게 봤나 보다. 그 속에 화려하고 예쁜 여자들을 엄청 많이 봤나 보다. 그들은 너무 멋지고 꾸안꾸로 예쁘다. 이미 얼굴이며 몸매도 예쁜 데다 사진도 예쁘다. 사진도 예쁜데 거기다 짧은 글 또한 예쁘다. 그리고 내 프로필을 누르고 내 피드들을 훑어보고 다시 거울을 훑어본다. 마음에 안 든다.
이렇게 느끼는 순간들은 정말 자주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 왜 이렇게 못났지.” 내가 나를 비난하면 마음이 편할까. 그 순간에는 남을 비난할 용기는 없으니 나를 비난하는 게 쉽고 편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비난의 말을 내뱉고 나면 기분은 더 우울해짐에도 불구하고 내뱉고야 만다. 옛날에는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남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보다는 스스로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게 더 쉽지 않겠나 싶었다. 그래서 무자비한 폭력을 매일 휘둘렀던 것 같다.
“이것도 못해 저것도 못해 이것도 별로야 저것도 별로야 넌 할 줄 아는 게 뭐니 넌 왜 이렇게 못났니“
내가 스스로를 비난하는 습관을 고치게 된 데에는 제프의 능력이 컸다. 언니도 멧 덕분에 자신을 비난하는 습관을 고치게 되었다고 했다. 어느 날 또 뭔가 자신이 없고 우울했던 날 거울을 보며 무심코 말해버렸다. ”헌 난칸 (못생겼어)“ 옆에 서 있던 제프가 거의 탄식을 하며 ”내 사랑..“ 하며 안았는데, 무심코 올려본 그의 눈에서 눈망울이 흔들리고 있었다. 거의 울먹이는 수준이었다. 나는 그때 좀 충격을 받았다.
‘아니 내가 나를 비난하는데 왜 네가 울먹여?’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제프에게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제일 사랑스럽다고. 내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진심으로 아파하고 힘들어한다.
그 모습을 보며 충격과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에게 그렇게 예뻐 보이는 대상이 스스로가 못났다고 해버리면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은 뭐가 될까. 사랑하고 있는 그 가치가 무가치해지는 건 아닐까.
그 뒤로는 거울을 보고 내가 예뻐 보이지 않더라도 말로 내뱉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말할 때마다 제프의 마음이 아플 거고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마음 아파하는 건 또 보기가 싫으니까. 덕분에 스스로를 비난하는 습관에 제동이 걸려버렸다. 제프가 나를 보며 예쁘다고 할 때마다 한 4년을 의심했었다.
물론 지금도 마음의 에너지가 떨어지면 의심하곤 한다. 그런데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큰 가치가 있고 큰 존재감이 있고 그의 하루를, 그의 인생을 활기로 가득 채우게 해 준다고 생각하니, 가끔은 그런 나 자신이 정말로 예뻐 보일 때가 있다.
요즘에는 거울을 보며 스스로 예쁘다고 칭찬해 본다. ”너무 예뻐 너 너무 귀여워 너 너무 사랑스러워“
처음에는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거울 속 내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제프와 함께 있을 때 여러 번 해보고 나니 항마력이 생긴 걸까. 이제 혼자 있을 때도 스스로에게 예쁘다고 말해줄 수 있게 되었다.
아 물론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나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괜찮은 구석들이 꽤 많다.
여전히 SNS 상의 예쁜 여자들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시기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나를 비교해서 나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저 사람도 예쁘지만 너도 예뻐.” “너는 너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 너는 정말 사랑스럽잖아.” 그러고 나면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나 대신 울먹여준 제프 덕분에 나는 나의 가치를 더 알게 되었다. 나의 가치를 알게 되니 타인의 가치에 대해서도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저 사람도 누군가의 눈에서는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자기 자신이 스스로가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되기를. 하루만, 한순간만 이라도 스스로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게 되는 하루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