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 역습
이웃한 부서는 모두 어슴푸레한 어둠에 잠겨있다. 직원들이 빠져나가 텅 빈 사무실이 유난히 넓어 보인다. 반면, 기획실 쪽에는 여전히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와 간간이 서류 넘기는 소리가 침묵을 뚫는다.
오전에 잠시 사우나를 다녀오긴 했지만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다. 돌덩이가 매달린 듯 눈꺼풀이 무겁다. 대체 오늘이 며칠째더라? 그래도 이제 끝이 보인다. 정민은 하던 작업을 마무리 짓고 파일을 저장한 다음 컴퓨터를 껐다.
"앗, 이게 뭐야!"
옆에서 작업하고 있던 송호영 대리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날카로운 그의 비명에 조용하던 사무실이 술렁였다. 놀란 정민이 고개를 돌려보니 조금 전까지 숫자들로 가득 차 있던 송대리의 컴퓨터 화면이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정민 씨! 지금 내 컴퓨터를 껐잖아."
"네? 제가요? 왜요?"
송대리는 정민의 컴퓨터를 한 번, 자신의 컴퓨터를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민을 한 번 노려보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개발 본사는 강남의 ○○○동에 있는 높지 않은 단독 건물이다. 1층에는 상가가 있고 2층에서 4층까지 회사가 사용하고 있다. 4층 입구부터 통로를 따라서 총무부, 인사부, 경리부 등이 완전히 개방된 상태로 이어져 있다. 가장 안쪽으로 회장실과 사장실, 그리고 바로 옆에 정민이 근무하는 기획실이 붙어 있다. 부서별로 맨 앞에는 서너 대의 공용 컴퓨터가 놓여 있고, 그 뒤로 직급이 낮은 직원부터 높은 순으로 사무용 책상이 배열되어 있다. 파티션 같은 건 없다.
회사의 사업 분야는 종합소매업을 중심으로 한 유통서비스업이고 주력 업종은 백화점과 호텔이다. 기획실은 백화점을 비롯한 십여 개의 사업부문을 총괄하면서 경영 전략, 경영 지원, 중장기 비전, 신규 프로젝트, 예산 편성 및 집행 관리, 감사, 홍보 기능을 수행하는 명실상부한 핵심 부서이다.
그중 가장 민감한 업무는 매주 진행되는 그룹 사장단 회의 자료를 작성하는 일이다. 회장이 주재하는 정례 회의로 계열사 사장들이 직접 업무 보고를 하는 자리이니만큼 내용뿐만 아니라 자료의 형식까지 한 치의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자료 준비를 책임지는 기획실로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늘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당시에는 인터넷은 물론이고 PC(personal computer)가 보편화하기 전이라서 문서 작업할 일이 있으면 맨 앞줄에 있는 부서별 공용 컴퓨터를 사용해야 했다. 컴퓨터는 그들의 조상 격인 초기 IBM 5550 모델이었다. 모니터 덩치가 어마어마했고, 플로피 디스크를 넣는 본체 역시 옆 사람과 칸막이 대용으로 쓸 만큼 컸다. 프린터는 양쪽 옆에 구멍이 뚫린 종이가 돌아가며 인쇄되는 도트 프린터였다.
엑셀 작업을 하다가 행 삽입이나 열 삽입을 하면 10~20분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전사(全社)의 데이터를 다루다 보니 파일 용량이 큰 탓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컴퓨터의 처리 속도가 느려 터졌다. 이마저도 정민이 입사하기 불과 얼마 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고 그전까지는 모든 문서 작성을 수기로 했다고 한다.
아무리 간략하게 만든다 해도 기본적으로 들어갈 문자와 숫자의 양이 있었을 텐데 그걸 수기로 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혹시 오탈자나 오류가 발견되면 그 부분을 칼로 살살 긁어내고 화이트로 불리던 수정액을 칠한 다음 그 위에 다시 썼다. 그러다 보니 군대에서 차트병이 소중한 자원이듯이 글씨 잘 쓰는 직원이 대우받는 시절이었다.
마찬가지로 정민도 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개인용 컴퓨터가 뭔지도 몰랐다. 당연히 컴퓨터 다루는 법을 알지 못했고, 지금은 흔한 '컴퓨터 활용 능력' 같은 자격증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신입사원 교육을 받을 때 처음으로 PC를 구경했고, 일하면서 하나씩 배워야 했다.
그러나 선배들은 퇴근 후에 여기저기 술집에 끌고 다니면서 그게 OJT(on the job training)의 전부라고 억지를 썼다. 바쁘다는 이유로 정민에게 별도로 컴퓨터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물론,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시간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컴퓨터는 본인들보다 강영임이 낫다며 그에게 배울 것을 종용했다.
무릇 인간의 욕망이 부풀면 그런 상황을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려는 자가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다. 수기(手記)에서 컴퓨터로, 업무 도구(tool)의 대전환기를 틈타 새로운 권력자가 생겼다. 손글씨 잘 쓰는 사람의 시대가 저물고 컴퓨터를 잘 다루는 자가 갑(甲)이 된 것이다.
강영임이 그런 부류였다. 그의 무기는 컴퓨터를 잘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대졸 신입 사원은 4급으로 그룹 공채이고, 고졸 사원인 5급 남직원과 6급 여직원은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채용하였다. 6급 여직원의 보직은 사무 보조이고 강영임이 그에 해당하였다.
기획실 입사 2년 차로, 나이가 있어 보이는 편이었지만 미인형의 세련된 외모에 애교 넘치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런 겉모습과 달리 정민에게 그는 한마디로 '싸가지 대마왕'이었다. 기본적으로 윗분들을 대할 때와 정민을 대할 때의 태도가 180도 달랐다.
대마왕은 윗분들의 잔심부름 외에 다른 업무는 거의 하지 않았다. 항상 책상 서랍을 살짝 빼고 앉아 고개를 30도 정도 숙이고 있었는데, 그 서랍 안에는 잡지나 소설책이 들어 있었다. 그러다가 윗분들이 부르면 바로 서랍을 닫고 '네'하면서 쪼르르 달려갔다. 반면, 정민이 뭘 부탁하든 '정민 씨가 해요'라고 쏘아붙이기 일쑤였다.
정민이 일하는 팀은 숫자를 많이 다루는 편이라 단순한 문서 작성을 넘어 엑셀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정민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엑셀을 배우려면 평화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도 언제나 참고 외면했다.
정민은 가급적 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컴퓨터도 대부분 선배들 어깨너머로 배웠다. 물론 이후 '권력자 강영임'의 판이 뒤집어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민이 컴퓨터에 익숙해지고 업무적으로 자리를 잡자 그는 정민을 신입사원이 아닌 윗사람 중의 한 명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그해 겨울은 혹한이나 폭설이 없었고 맑음과 흐림, 삼한사온이 반복되는 전형적인 겨울 날씨 패턴을 보였다. 그야말로 평범한 나날이 이어졌고, 정민 또한 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을 거듭하며 신입사원티를 벗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1990년 1월, 3당 합당이라는 한국 정치사의 큰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 발생하자 느닷없이 그 파편이 기획실에 튀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가 당선되었지만, 여소야대 국면이 지속하여 순탄치 않은 집권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불안을 해소하고 안정적 국정 운영을 확보하기 위해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총재의 비밀 회담이 진행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보수 대연합을 표방하고 합당을 전격 선언하면서 민주자유당을 출범시켰다. 이 사건은 이후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이 승리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문민정부가 수립되는 밑바탕이 되었다.
나중에서야 그 진짜 이유를 알았지만, 그즈음 정치적인 이슈가 발생하면 그룹 기획조정실이 유독 민감하게 반응했다. 3당 합당 소식에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야단을 피웠고 이런저런 자료 요청이 쏟아졌다. 주로 현금 동원 능력이나 인력 운용 등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룹 입장에서 ○○개발은 작은 계열사에 불과했지만, 역설적으로 필요할 때 활용도가 높았을 것이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만만하다고 할까?
정민이 송대리의 컴퓨터를 꺼버리는 사고를 친 날도 대부분의 기획실 직원이 이틀 연속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밤샘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모두가 수면 부족과 누적된 피로감으로 비몽사몽이었다. 게다가 많은 양의 자료를 다루다 보니 정신까지 혼미할 지경이었다.
매주 반복되는 주간업무 보고 자료 작성도 항상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는데, 이번에 그룹 기조실 요청 사항은 그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어서 근본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적지 않은 분량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회장이 알고자 하는 핵심을 놓쳐서는 안 되었다.
그야말로 숨 쉴 틈도 없이 며칠을 달린 끝에 드디어 A3 용지 3장 분량의 큰 글씨 요약본에 근거 자료와 첨부 문서를 붙여서 서서히 그 틀이 완성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모처럼 퇴근을 기대할 수 있었다. 집에 가자마자 잠을 좀 자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달떴다. 그러나 언제나 재앙은 방심한 틈을 파고든다.
정민은 작업이 마무리되자 자료를 정리하고 자신이 쓰던 컴퓨터를 로그오프 했다. 이어서 퇴근할 때 전기 콘센트까지 확인하라는 총무부의 전기 절약 캠페인 공문을 떠올리며 여러 대의 컴퓨터와 프린터를 연결하는 멀티 탭 스위치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 스위치를 '툭'하고 껐다.
송대리가 작성하던 문서는 며칠 동안 작업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떠나서 다음 날까지 그룹 기조실 제출해야 한다는 마감 시한이 걸려있는 것이었다. 사장이 들고 가서 그룹 회장에게 보고하는 자료이다. 자칫 소홀한 부분이 있으면 여러 사람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중차대한 일이다. 물론 평소에도 기조실에 들어가는 자료는 집중력을 가지고 준비했지만, 그와는 무게감이 비교도 되지 않는다.
핏기가 없는 창백한 얼굴로 돌아온 송대리와 함께 선배들이 전부 달라붙었고 중간 저장 이후 날아간 부분을 밤늦게까지 다시 만들어 냈다. 다행히 한번 했든 작업이므로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을 최대한 활용하여 처음보다 훨씬 빠르게 할 수 있었다.
그런 선배들의 모습을 놀란 토끼 눈으로 바라보던 정민은 미안함을 떠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획실 직원들은 하나같이 유능했다. 문제가 터지자 그 잠재력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기획실다운 팀워크, 전투력과 문제해결능력이 돋보였다. 딱 한 사람, 이미 정시에 퇴근한 우리의 대마왕을 빼고.
다음 해, 송대리는 회사를 떠났다. 물론, 정민이 사고 쳤던 것과는 무관했다. 그가 너무 일을 잘한 탓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업무가 그에게 몰렸고 결국 허리 디스크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입원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더 훗날, 정민의 다른 선배들도 모두 다른 길을 갔다. 한 명은 부친이 경영하는 회사의 임원으로, 다른 한 명은 경쟁사로 스카우트되었다.
그들의 사람 됨됨이나 업무 역량으로 볼 때 회사의 큰 손실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그들이 '왜 그랬는지' 여전히 알지 못했고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정민은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그렇게 선배들의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를.
송대리와 싸가지 대마왕, 그리고 선배들과 어울려 지지고 볶던 그 시절은 사회 초년생 정민이 많은 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대마왕의 권력 지향형 처세술은 미처 배우지 못했지만. 숫자로만 보면 이젠 정민 보다 더 '고령자'가 되었을 텐데,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부디 그들의 여생이 그지없이 여유 있고 평화롭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