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한 번 해보세요!
사람들이 연신 손부채 질을 하면서 걷고 있다. 엄마가 드리워준 양산 그늘을 졸졸 쫓아다니는 아이도 보인다. 때 이른 폭염 탓이다. 버스에서 내려 면접 장소까지 가는 길은 10분도 채 안 되는 거리였으나 막상 걷다 보니 왠지 멀게 느껴진다.
급히 맞춰 입은 양복과 넥타이가 답답하고 불편하다. 대체 이런 옷을 왜 입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애써 털어 버렸다. 정민은 빌딩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잠시 땀을 식혔다. 면접 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 남았다.
도착한 면접 장소에는 이미 많은 지원자가 대기하고 있다. 인사팀 직원인 듯 손에 서류를 든 몇몇이 그들 사이를 바삐 오가고 있다. 그룹 공채 형식으로 직원을 채용하여 각 계열사에 인원을 배치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면접도 그룹 본사에서 한꺼번에 진행되었다.
피면접자들은 시차를 두어 대기 시간을 줄여주려는 회사의 배려나, 그런 디테일을 구현하려는 의지를 기대하기보다는 '기다리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더군다나 여기가 어디인가. 국내 재벌기업 서열 1~2위를 다투는 대기업의 면접장소이다. 이미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여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
옆에 앉은 지원자가 준비한 답변을 연습하는 듯 계속해서 뭔가 중얼거렸지만, 정민은 오고 가는 사람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어쩌면 평소 긴장을 잘하는 정민에게는 그렇게 마음이 가라앉아 있는 게 다행이었다. 마침내 정민의 차례가 왔다. 이름을 호출하는 직원 목소리 보다 서너 배쯤 큰 대답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한 번에 5명씩 들어가는 이른바 다대다 면접이다. 다행인 것은 2차 면접이 없고 이 한 번으로 당락이 결정된다. 특히 이번 채용은 '전역장교 우대' 전형으로 어느 정도 객관적 평가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다소 유리한 상황이다.
면접관은 모두 5명이다. 그들이 앉아 있는 책상 위에는 면접위원장 또는 면접위원이라고 적힌 명패와 지원서로 보이는 서류들이 잔뜩 쌓여 있다. 상대적으로 젊어 보이는 두 명은 HR 분야와 퍼스널 칼라 코칭 전문가이고, 다른 세 명은 넘치는 여유나 외모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직급이 높은 임원급일 것이다.
'우리나라 GDP 총액에서 우리 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가', 'A그룹의 비전이나 가치관이 무엇이고, 거기에 본인이 부합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말하라', '입사하게 되면 본인은 어떤 일을 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십 년 후 자기 모습에 대해 말해보라'는 등속의 공통 질문은 어느 정도 예상한 것들이었다.
정민은 '프로야구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팀과 그 이유를 영어로 말해보라'는 개별 질문을 받았다. 영어로 말하기가 쉽지 않아 버벅거렸지만, 면접관들은 기다려 주었다. 다만, 그 팀을 좋아하는 이유를 지역적인 연고나 개인 취향으로 돌리는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팀 위주의 플레이를 지향하고, 역전으로 승리를 이끄는 경우가 많으며, 타격과 빠른 발을 주요 공격 무기로 하기 때문이다'라고 직무 활동과 연관 지어 답변했다.
면접관 뒤쪽 벽면에 높이 걸려있는 둥근 시계가 면접을 시작한 지 20분이 지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전반적으로 평이한 면접이 진행되고 있었다.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질문 시작하세요'라고 말한 뒤 침묵으로 일관하던 면접위원장의 돌발 질문이 있기 전까지는.
그는 정민에게 태권도 품세 태극 1장을 보여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정민은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그런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의도가 무엇일까? 어쨌든 못한다고 할 수는 없다. 몸은 기억하고 있을 거라는 희망과 '설마 진짜 시키겠어?' 하는 바람으로 '네'라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자신이 없었다.
의자에서 일어나 상의를 벗었다. 그냥 다시 앉으라고 하겠지. 그러나 아무 말이 없다. 앞으로 세 걸음쯤 나갔다. 여전히 모두가 나를 지켜보고만 있다. 이젠 어쩔 수 없이 시작해야 한다. 발을 어깨너비로 벌리고 주먹을 쥐어 단전 앞에 모으는 준비 자세를 했다.
그때 문득 입사지원서 특기를 적는 칸에 태권도 유단자라고 적은 기억이 떠올랐다. 몇 번을 고민하다가 빈칸으로 두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그거라도 적은 것이 화근이었다. 특기가 태권도 유단자라니, 다시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다.
면접위원장은 이에 대한 진실성 여부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럼 한 번 해보세요!'라고 할지 몰랐다. 그러고 보니 A그룹 창업자의 대표적인 경영 철학이 '자네, 해봤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이 분은 지금 그걸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시작하자 몸이 반응하였고, 조심스럽게 동작을 하나씩 이어나갔다. 왼발 내딛으며 아래 막기, 오른 주먹 지르기, 오른발 내딛으며 아래 막기, 왼 주먹 지르기, 왼발 내딛으며 앞차기... 그다음이 뭐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갑자기 몸이 방향을 잃었다. 그때 '그만하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면접위원장은 정민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괜찮아. 이걸 꼭 나쁜 신호라고 볼 수는 없는 거야. 끝까지 집중하자! 그러나 이후에는 누구도 정민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
면접위원장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입사지원서에 적힌 눈에 거슬리는(?) 사항들을 콕 집어내 물고 늘어졌다. 특히, 그가 주로 사용하는 '만약 이렇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하는 질문 방식은 소신과 논리적인 근거는 물론, 설득력까지 요구하는 것으로 난도가 높았다.
1980년대 후반 한국 경제는 저금리, 저유가, 저달러라는 세 가지 유리한 외부 환경 요인으로 이른바 3저 호황 시대를 맞이하였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연평균 12%가 넘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경상수지 흑자, 외채 감소, 중산층 형성, 주식 시장 활황, 실업률 감소 등 경제 전반에 걸쳐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런 3저 호황은 한계점과 부정적인 영향도 남겼다.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더욱 심화시켜 대외 경제 환경 변화에 취약한 구조를 고착화했으며, 막대한 유동성이 생산적인 투자보다는 부동산이나 주식 등 투기성 자산으로 흘러들어 가 경제의 비효율성을 증대시켰다.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구조 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결국 3저 호황은 1989년을 기점으로 막을 내렸고, 이후 미국의 금리 인상, 원화 절상 압력, 과잉 투자 등의 요인으로 한국 경제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하지만 정민이 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그 해까지도 아직은 경제 전반에 걸쳐 3저 호황의 열기가 식지 않았고 많은 기업이 취업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었다.
유학을 떠날 것인지 아니면 선취업 후 공부를 계속할 것인지 고민에 빠져있던 정민에게 이런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분위기는 취업으로 방향을 정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돈을 벌어 스스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지금, 야심 차게 도전한 A그룹 면접에서 보기 좋게 떨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정민의 마음은 복잡했다. 어느 쪽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떨어졌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컸다. 매끄럽지 못했던 영어 답변과 마지막에 머뭇거렸던 태권도 품세가 계속 거슬렸다. 아무래도 애당초 A그룹에 지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동안 지원을 포기했던 다른 기업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은행은 면접 당일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가지 않았다. 은행 직무는 지점장이든 창구 직원이든 그 본질이 영업이고 서비스가 전제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은행원은 정민의 흥미와 적성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당시 은행은 법학이나 경영, 경제학과 졸업생을 선호했고, 지원하려면 학과장의 추천이 있어야 했다.
(주)○○○○는 외국계 기업으로 직원 복지가 좋고 향후 본사인 그 나라에 가서 근무할 수 있다고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서류 접수를 위해 방문한 그 회사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회사가 공단 지역에 있고 건물이 낡고 허름해서인지 회사 분위기가 시종일관 어설프고 허접했다. 끝내 내키지 않아 면접에 가지 않았다.
정민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대기업으로 향했다. 당시 국내 기업의 재계 서열은 명확했다. A그룹과 B그룹이 1~2위를 다투고 있었다. 정민은 애초 B그룹에 지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B그룹 법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선배의 경험담이 마음에 걸렸다. 신입사원 연수를 받는데 '졸고 있는지 여부를 떠나서, 시간까지 체크'하더라는 것이었다. 디테일(?)한 건 좋지만, 정도가 좀 심하다 싶었다. 이런 에피소드는 그 기업의 문화를 방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A그룹은 정반대로 자율성이 높고, 도전적인 기업 분위기라는 평이 많았다. 꼭 여기가 정민과 맞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숨이 막힐 거 같은 B그룹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을 것이라고 단순하게 판단하였다. 정민은 평소에는 그렇게 '단순한' 성격이 아니었으나,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면 '단순함'으로 회피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경향이 있었다.
정민은 A그룹에 지원서를 제출하였고 서류전형 합격과 면접 일정을 통보받았다. 면접 준비는 인터넷이나 회사 홈페이지 같은 것이 없던 시절이어서 선배들의 경험담과 조언을 기반으로 몇 가지 질문을 예상하고 답변 시나리오를 작성하여 스피치 연습을 하는 것으로 갈무리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영어 답변을 원하는 사례는 없었고 특히, 면접장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여야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일단 면접은 끝났다. 발표는 한 달 후이다. 원래 면접이라는 것이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다. 정민은 일단 담담한 마음을 가지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면접 날, 대기 장소 한쪽 벽면에 걸려 있던 창업자의 휘호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담담(淡淡)한 마음을 가집시다. 담담(淡淡)한 마음은 당신을 굳세고 바르고 총명하게 만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