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뚜를 아시나요

O fatum, quo vadis?

by 화문화답

소대장 실습을 위해 전방 부대로 떠나는 날, K2 소총 한 자루와 더플백(duffel bag)을 메고 ○○역에서 군용 열차를 탔다. 열차가 밤을 가르며 달려 도착한 곳은 서울 외곽에 있는 ○○○역이었다. 세상은 깊은 잠에 빠져있는 듯 고요했고 온통 밤안개가 가득했다. 흐릿한 무채색들의 부조화는 차가운 공기를 더욱 무겁게 가라앉혔다.


거기부터는 같은 지역으로 배치되는 후보생끼리 60트럭을 타고 이동했다. 장비 부딪치는 소리와 가끔 누군가의 마른기침 소리만 들릴 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칠흑 같은 밤길을 달리다가 특정 장소에 도착하면 한 명씩 하차하였고, 어디론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3○○번 후보생 하차합니다! 인솔장교의 낮은 목소리가 오랜 정적을 깼다. 정민의 차례가 된 것이다. 트럭은 어느 이름도 모를 최전방 부대 앞에 정차했다.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땅에 발을 디디자 몸이 오그라드는 낯선 추위가 몰려왔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일까? 긴 이동 시간의 피로감과 트럭의 매연 냄새, 진동과 흔들림으로 인한 차멀미 탓에 금방이라도 뭐가 올라올 듯 속이 메스꺼웠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과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정민은 차가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막사 입구에 작은 소대장실이 하나 있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침상이 길게 이어져 있다. 그 한쪽 끝에 커튼으로 가림막을 한 별도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곳이 정민의 자리이다. 사람 하나 딱 들어갈 정도로 협소하지만, 사관후보생을 위한 작은 배려였다.


생활공간인 막사 밖으로 나가면 비닐하우스로 만든 세면장과 식당 및 부식 창고로 쓰이는 건물이 있다. 그 옆에는 얼룩덜룩 위장 색을 뒤집어쓴 무기고가 버티고 서 있다. 그게 이 부대 시설물의 전부였다. 필요 최소한. 아무래도 최전방 지역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민이 배치받은 부대의 주요 임무는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철책을 경계하며 적의 침투를 막고 유사시 GOP 후방 전투지역전단(FEBA)의 전투 준비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근무 투입 지휘와 경계 구역 순찰, 소대 병력 및 자원의 유지 관리 같은 일을 소대장과 함께 수행했다.


영하 26도를 넘나드는 강추위 속에서 근무에 임하는 병사들도, 이들을 지휘하는 소대장에게도 길고 추운 밤이 매일 반복되었다. 아침이 밝아오면 주간 경계 인원을 투입하고 다른 병력은 철수하여 취침한다. 잘 때는 막사 안에 놓인 두 개의 난로 덕에 그렇게 춥지 않았으나 문제는 씻는 것이었다.


난로 위에서 덥혀진 양동이 두 개 분량의 물로 소대 병력이 씻기에는 부족했다. 병사들이 씻고 취침에 들어간 다음, 간부들이 세면장으로 들어간다. 물론 간부들 몫으로 더운물을 남겨 두었지만, 이 또한 모자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물을 한 바가지 끼얹고 주요 부위에 비누칠을 한 다음, 다시 물을 한 바가지 붓고는 빠른 속도로 제자리 뜀을 한다. 살을 파고드는 냉기를 떨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그렇게 씻고(?) 나면 몸살이 난 것처럼 한동안 몸이 떨렸다.


일교차가 큰 날에는 급격한 온도 차이로 철책이 수축과 팽창하는 바람에 마치 누군가 철책을 자르는 듯 '탁! 탁!' 하는 소리가 난다. 처음에는 그걸 모르고 침투로 오인하여 보고했다가 대대장에게 욕을 먹기도 하고, 근무 철수 후 전투 축구를 하는 사이 그 진동을 감지한 땅굴 탐지 부대가 출동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외국여행을 하다가 그 지역의 음식이 입에 맞기 시작하고, 현지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이면 떠날 시간이 다가온 것이라고 한다.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부대원들로서는 '실습 소대장'이 탐탁지 않은 면도 있었겠지만, 군대라는 곳은 '받아들임'이 본능적으로 강한 곳이다. 정민도 처음에는 '색다른 손님' 정도로 담담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정은 어찌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동고동락하다 보면 더 쉽게 정이 든다. 그렇지만 이별은 짧게, 바람처럼 왔다가 흔적 없이 사라져야 한다. 그것이 그곳에서 더 오랫동안 고생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처음 도착한 그날처럼 늦은 밤 정민은 다시 60트럭에 올랐다.


새로 배치된 전투지역전단(FEBA) 소속 부대에서는 '해가 떠도 훈련, 달이 떠도 훈련'만 한다는 소문처럼 밤낮없이 훈련을 반복했다. 주로 부대 단위 운용과 기동 훈련을 했는데 실병 지휘와 공격 및 방어 전술에 포커스를 맞춘 교육이었다.




소대장 실습을 모두 마치고 학교로 복귀한 후, 3박 4일의 휴가를 받았다. 정민은 부모님께서 계시는 고향에서 이틀을, 친구들이 있는 서울에서 이틀을 보냈다. 아직 임관되기 이전인 후보생 신분이었으므로 군복에 옆으로 누운 노란 밥풀떼기 계급장을 달았다. 마주치는 사람 중에는 처음 보는 낯선 '군인'의 정체가 궁금한 듯 그게 무슨 계급장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아니 학수고대하던 임관식 겸 전역일이 다가왔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순간이 어느새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날은 마치 정재계 인사 모임이라도 있는 듯 알만한 사람들이 여럿 모여들었다. 별을 단 군장성급 차량도 보였다.


그들은 행사가 끝나자 연병장으로 내려와 자신들의 아들에게 소위 계급장을 달아주며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얼싸안고 재회를 기뻐하는 가족들과 '신고합니다'를 외치는 신임 장교의 목소리가 연병장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가족이 참석하지 못한 정민을 비롯한 '평범한' 후보생들은 서로 계급장을 달아주며 수여식을 대신했고 그렇게 조용히 전역했다. 그리고 각자 원래 있었던 곳을 향해 길을 떠났다. 모래사장을 빠져나가는 썰물처럼.


워낙 각자 잘 나가는 사람들이기에 '연대'의 필요성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복무 기간이 짧아서인지, '동기(同期)나 출신'같은 개념은 없었다. 과장된 사례이기는 하지만 육군사관학교 11기 출신 사조직인 하나회라든가, 나중에 직장 생활할 때 목격한 회사 내 ROTC 출신 모임 등에 비하면 '석사장교 ○○기'는 그냥 조용히 묻혀 버린 느낌이다.




차가운 음료를 실컷 마시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호사를 누리며 자유를 만끽할 무렵, TV 뉴스에서는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천안문 사태가 연일 보도되며 나라밖 이슈로 크게 부각되고 있었다.


개혁적인 지도자로 불리던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의 사망에 따른 학생과 시민의 추모 분위기는 정치 개혁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학생들은 언론 자유, 민주주의, 부패 척결 등을 요구하며 천안문 광장에 모여 시위를 시작했고, 일반 시민이 참여하면서 그 규모가 점점 커졌다.


중국 정부 내부에서는 강경 진압론과 온건 대화론이 대립했으나, 덩샤오핑(鄧小平)을 비롯한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았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인민해방군이 천안문 광장에 진입하여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 사건은 중국 현대사에서 매우 민감한 주제로 남아 있다.




정민은 무한대의 빈둥거림으로 몸과 마음에 남아있던 군대 생활의 흔적을 하나씩 지워가고 있었다. 그렇게 후유증(?)에서 점차 벗어나자, 마치 껍질이 한 꺼풀 벗겨진 것처럼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들었다. 병역 의무가 끝난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현실이 냉정하게 다가왔다.


198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은 3저 호황기를 맞았다. 경제 성장과 수출 증가를 거치면서 전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중산층의 비중이 두터워졌다. 이런 시대적 흐름은 자가용 자동차를 보유한 가정이 크게 늘면서 '마이카족'이라는 유행어로 대변되었다.


기업의 채용이 늘어나면서 일자리가 많아졌다. 역량이 된다면 대기업에 대졸 신입으로 입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산업화 시기답게 특히, S그룹이나 H그룹 등 대기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금융업계나 공무원 시험도 경쟁률이 그리 높지 않았다.





취업 문이 활짝 열려있는 이런 사회경제적 분위기에도 선배들은 정민에게 유학을 권했다. 우리나라 법체계는 영미법계가 아닌 대륙법계이기 때문에 유학을 간다면 독일에 가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선배들은 라면 값이라도 갹출해서 보태줄 테니 일단 가라고 했다. 돌이켜 보면 그게 맞는 말이었다. 그랬어야 사법고시에서 대학원으로 방향을 전환했던 선택과 일관성이 유지되는 것이고, 만약 그랬다면 어떻게든 또 다른 결말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라면 값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극히 한정적이다. 학위 취득까지 최소 4~5년은 걸린 텐데 그 먼 타국에서 라면만 먹고살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원래 정민에게는 모험심이나 도전 정신이 남다른 편이 아니었다. 미지의 세계로 자신을 용감하게 밀어 넣는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졸업했고, 전역했으니 걸림돌은 없다. 정민의 스펙이라면 대기업 취업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젠 스스로 돈을 벌 기회가 코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유학은 벌어서 가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몇몇 대기업에서 군 장교 출신 채용 공고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일이 그렇게 단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취업으로 생각이 굳어져 가고 있던 어느 날,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이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학교 인근 커피숍에서 마주한 그 사람은 TV에 나올 법한 연예인급 미모와 세련미를 갖춘 중년 여성이었다.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정장 차림의 젊은 남자와 함께였다. 누구누구의 소개와 이런저런 경로로 정민을 알게 되었다면서, 자신들은 유력한 젊은 남녀를 혼인으로 맺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당시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는 결혼 중매인, 속칭 '마담뚜'였다.



그들이 제안하는 것은 본인들이 소개하는 여성과 약혼을 한 후, 같이 독일 유학을 다녀와서 결혼하는 것이었다. 물론 유학 경비는 전액 여자 쪽에서 부담한다고 했다. 정민은 그런 상황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라는 '핸디캡'은 어쩌고? 뭇 여성들이 선호한다는 '키 큰 남자'도 아닌데? 도대체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렇다면 혹시 사기 결혼? 그러나 정민은 자신도 모르게 달콤한 상상과 나른한 자아도취에 빠져들었다. '선취업, 후유학'으로 굳어져 가고 있던 생각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과연 정민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는 다시 한번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선배들이 모아주는 라면 값을 받아 쥐고, 아니면 마담뚜의 제안에 따라 약혼녀와 함께 독일로 떠날 것이냐. 대기업에 취업해서 스스로 돈을 모은 후 그때 가서 박사 학위에 도전할 것이냐. 그것도 아니면 학문을 포기하고 직장인의 길로 다시 한번 전향할 것이냐. 운명이시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O fatum, quo vadis)? fatum quo vadis! O fatum quo va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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