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장교 너는 누구냐
상모를 쓴 아기 호랑이 '호돌이' 마스코트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88 서울올림픽은 이전 올림픽 중 가장 큰 규모였다. 모스크바 올림픽과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정치적 이슈로 인한 보이콧으로 반쪽짜리 대회로 치러졌던 것과 달리, 서울 올림픽은 12년 만에 동서 진영이 모두 참가하는 세계인의 축제가 되었다.
탁구가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었고 태권도는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종합 4위의 성과를 거두었다. ○○사관학교에서 사관후보생 신분으로 군사훈련을 받고 있던 정민은 한국 스포츠가 승리하는 장면을 TV를 통해 의무적으로(?) 보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개폐회식 때 화면에 보이는 일부 저명인사들이 A후보생 또는 B후보생의 부모라는 사실이었다. 동기 후보생 열에 일곱은 유학생이거나 소위 SKY 출신이었는데, 거기에 더해 집안 배경까지 그렇게 극강인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정식 명칭은 '특수전문요원'이지만, 그 자격이 석사 학위 소지자에 한하기 때문에 '석사장교'라고 불렸다. ○○지역에 있는 사관학교에서 6개월에 걸친 사관후보생 교육 및 전방부대 소대장 실습 후, 소위로 임관함과 동시에 전역하기 때문에 속칭 '육개장(육 개월 장교)'이라고도 하였다. 상대적으로 짧은 복무 기간을 두고 비아냥거리는 의도 또한 담겨있을 것이다.
근거법인 '대학원졸업생 등의 병역특례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르면 이 제도의 목적은 '석사 학위 소지자에게 지속적인 학문의 기회를 부여하고 전문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두환 아들 ○○○의 입대를 앞둔 1982년부터 이 제도가 시행되었고, 노태우 아들 ○○○이 전역한 1991년까지 존속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것처럼, 권력층 자녀의 병역 혜택을 염두에 둔 제도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자연계는 영어와 한국사, 인문계는 거기에 제2외국어를 추가하여 시험을 치렀고, 유학생은 서류 전형으로 선발하였다. 물론, 대학과 대학원 성적도 반영되었다. 국내 대학의 인문계 출신은 선발 인원 비중이 30%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경쟁이 매우 치열하여 이 시험을 '군대고시'라고 불렀다.
시험 기회는 단 한 번 뿐이었다. 만약 이 시험에 탈락하면 복무 기간이 36개월인 학사장교에 지원하거나 일반병으로 입대하여 나이가 4~5살 어린 병사들과 사병으로 군대 생활을 해야 했다.
석사 장교를 만든 이유나 목적이야 어쨌든 간에 정민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당초 입대를 미루고 대학원 졸업할 때까지 사법고시 합격을 목표로 하였으나, '학문의 길'로 진로를 변경하면서 석사장교가 병역 문제 해결의 대안이자 최선책이 되었다.
합격을 좌우하는 키(key) 역할을 할 제2외국어는 독일어를 선택했다. 독일 유학을 고려하고 있었기에 당연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der, des, dem, den'을 외우기 시작하면서 막막하다는 절망감부터 앞섰다. 영어도 버거운데 독일어라니! 짧은 기간 안에 외국어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이라면 독해와 문법 위주의 변별력 확보를 위한 시험으로, 듣기나 말하기 같은 회화 능력까지 요구하지는 않았다. 이미 '시험 영어'로 단련된 몸이니 '시험 독일어'도 안될 것은 없었다.
시험 날짜가 임박하자 정민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책상 위에 여러 권의 책을 펼쳐놓고 이 책 보다가 다시 저 책 보다가 하는 어이없는 짓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졸업 시험과 석사 학위 논문 준비를 병행해야 했다. 김성철 교수를 '모시는' 일도 피해 갈 수 없었다. 교수와 선배들은 정민의 사정을 특별히 봐주지 않았다.
정민이 주로 하는 일은 판례나 참고 문헌 같은 자료 찾기, 논문 원고 교정, 시험 감독이나 채점 같은 학사 운영 서포트, 도서나 자료 딜리버리 등속이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꽤 소요되는 것들이었다. 특히, 매일 7시 30분에 출근하여 연구실 청소와 정리정돈을 하는 일은 꽤 귀찮고 성가셨다.
그즈음 정민은 매일 밤 머리를 박박 밀고 훈련소로 끌려가는 꿈을 꾸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생경한 환경에 몸서리쳤고 한참이나 나어린 선임병들로부터 억울한 얼차려를 받기도 했다. 주먹을 쥐면 성한 손가락 마디가 하나도 없었다. 햇볕에 그을려 검게 탄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고, 그 위로는 굵은 땀방울이 연신 흘러내렸다.
꿈속이지만 군대라는 곳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힘들어하다가 식은땀에 젖어 잠에서 깨어나곤 하였다.
시험 장소는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평가원이었다. 시험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출신 학교별로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동안 정민은 일찌감치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오직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괜찮아. 긴장하지 말자. 할 수 있어. 공부를 잘하고 시험을 잘 보는 것은 네가 잘하는 일이야.'
한국사는 모든 정답을 단박에 찾아낼 수 있었다. 문제는 예상대로 외국어였다. 8절 크기 시험지 한 면의 3분의 2를 지문이 차지했고, 그 긴 지문 끝에 달린 문제는 달랑 두세 개였다. 만약 한글로 적혀 있다 하더라도 다 읽지 못할 분량이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손 머리 위에!'를 외치는 감독관 눈치를 보며 끝까지 문제를 풀었다. 자칫 부정 행위자로 취급받을 수도 있지만 그런 걸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그 시험에서 떨어지면 어차피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절망적이었다. 망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문제가 그 정도로 어렵게 출제될지 몰랐다. 하다못해 기출문제라도 볼 기회가 있었더라면 난이도를 짐작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건 아예 있지도 않았다. 아마도 해마다 비정형적으로 출제되었을 것이다. 어차피 이 시험의 목적은 누군가를 합격시키고 또 다른 누군가를 떨어뜨리기 위한 수단이었을 테니까.
삼청로를 따라 경복궁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 내려오는데 문득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눈에 띄었다. ○○○수제비였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유명하다는 수제비 한 그릇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삼일은 굶은 듯 허기가 밀려오던 참이었다. 혼잡한 틈을 비집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항아리 수제비를 시켰다. 하지만 결국 몇 숟가락 먹지 못했다. 남은 수제비가 가득 담겨있는 항아리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픽하고 웃음이 나왔다.
사법시험이 끝나고 시험장 근처 중식당에서 짜장면과 짬뽕을 동시에 시켜놓고 왼손에는 담배를, 오른손에는 젓가락을 든 채 먼 산을 바라보고 있더라는 어느 사법고시 수험생 목격담이 실감 나고 이해가 갔다. 아마도 몸속에서 혼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었으리라. 지금 정민처럼.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며칠 동안 연구실에 나가지 않았다. 이미 제대해서 예비역인 친구들의 위로(?)를 받으며 술을 마셨다. 이 나이에 병(兵)으로 군대에 끌려가야 한다는 공포감이 한시도 정민을 놓아주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친구들처럼 2학년 마치고 입대했어야 했다. 역시 보편적인 것이 타당한 것이었다.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어 몸에 찌든 숙취와 함께 정민의 마음을 무겁게 가라앉혔다. 이제 진짜로 군대에 갈 준비를 해야 한다.
논산훈련소 입구에는 입대를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머리를 똑같이 민 사람들이 열을 맞추어 서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정민을 제외하고는 전부 고등학생들처럼 어려 보였다. 빨간 모자를 쓰고 악악 소리를 내며 눈동자를 굴려대는 무서운 남자들이 설치고 다녔다. 정민은 슬쩍 손목의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빌어먹을! 아직도 아침 10시야. 이제 입대 1일 차이고 제대하려면 810일이 남았어.
"정민아!"
"..........."
"정민아!"
누나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망연자실 침대 끝에 앉아 있는데 누나가 방문을 열고 다시 소리친다. 인제 그만 일어나. 전화받아. 친구래.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거실로 나가 수화기를 들었다. 전화를 건 친구는 고성준일 테고 분명히 빨리 나오라는 재촉일 것이다.
"여보세요."
"............."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대답이 없고 여럿이서 뭐라고 웅성거렸다.
"누구야, 왜?"
"정민아, 너 됐어. 합격이라고!"
전화를 걸어 수험번호만 대면 본인이 아니더라도 합격 여부를 알 수 있던 시절이었다. 합격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에 결과를 확인해 보지 않겠다는 정민을 대신해 친구인 고성준이 알아본 것이다.
남자들이 군대에 갈 때는 머리를 민다. 물론 끝까지 버티다가 훈련소에 입소해서야 미는, 아니 밀리는 분도 있다. 어차피 그렇게 될 걸, 미리 알아서 할 필요가 없다는 심산일 것이다. 입교 전 지침을 읽어보면 두발은 입교 후에 일괄 정리할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정민은 마음을 다잡는 차원에서, 그리고 하나라도 더 사제(私製)로 하고 싶어서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영화에서처럼 눈물이 쏟아지거나 그러지는 않고 오히려 담담해졌다. 모든 걸 당분간 내려놓자고 마음먹은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고속버스터미널 인근 공영주차장에 대기 중인 전세 버스에 탑승했다. 가족이나 연인과 아픈 이별을 하는 장면이 곳곳에 보였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해가 중천에 있을 무렵 도착한 사관학교 연병장은 도대체 끝이 어딘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그 한쪽에 후보생들이 모여들었고 입교를 위한 절차가 진행되었다. 당분간 자유와 결별을 해야 하는 낯선 상황에서 모두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한여름 땡볕은 짧게 자른 머리를 태워 버릴 듯 작렬했고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습도가 높았다. 연병장 모랫바닥에 반사된 열기가 노출된 피부를 강하게 자극하였다. 주위를 돌아보니 너나 할 것 없이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정민은 간절했다. 지금 이 순간 냉장고 문을 열고 얼음처럼 차가운 콜라 한 병을 꺼내서 단숨에 마셔 버리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벌써 두 시간째이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대체 언제 실내로, 아니 그늘로 들어갈까. 언제 궁둥이를 붙이고 앉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