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시 초기 진통 단계에서 너무 일찍 병원에 가면 장시간 대기로 더 고생할 수가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활동기 진통 즉, 5분 이내 간격으로 1분 정도 지속하는 진통이 1시간 이상 반복하면 그때 병원으로 이동하는 것이 적절한 타이밍이다. 이른바 5-1-1 규칙이다.
그때가 되면 정민은 아내를 차에 태우고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갈 것이다. 출산 준비물 가방은 눈에 띄는 곳에 두었다. 만약에 정민이 없으면 가까이 사는 장모가 와서 택시를 불러 이동할 것이다. 정민은 아내의 출산이 임박하면서 이런 시뮬레이션을 몇 차례 아내와 공유했다.
그 시절에는 출산 휴가를 입 밖에 꺼내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대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아내 역시 출산이 거의 임박해서야 겨우 휴가를 냈다. 지금은 출산 전후로 최대 90일을 사용할 수 있고, 육아 휴직 1년을 곧바로 이어서 쓸 수 있다. 그때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아침 기온 18도의 전형적인 초여름 날씨를 보이던 그날은 조기 축구 시합이 있는 날이었다. 팀 대항이다 보니 건강 증진과 단합을 위한다는 애초 목적과는 달리 분위기가 다소 과열되어 있었다. 부서장들의 과한 승부욕이 발동한 탓이다.
정민의 팀장인 이 부장 역시 우승을 원했다. 그만큼 '업무 외적 평가 요소'로 참작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하게 내비쳤다. 업무 시간 이외에,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축구 경기 결과를 인사 평가에 반영하겠다니 지금 생각하면 그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정민은 축구를 좋아했고 어릴 적부터 동네 축구로 갈고닦은 실력 또한 뒤지지 않았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팀의 주력이었다. 그러나 아내의 출산이 임박한 상황인지라 출전 여부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당일 아침 안정적인 아내의 상태를 확인하고 새벽녘에 집을 나섰다.
동이 트자마자 시작한 경기에서 정민의 팀은 무난히 승리를 거두었다. 근처 사우나에서 다 같이 땀을 씻고 해장국 집으로 향했다. 다음 상대로 맞붙게 될 남성의류팀의 경기력 분석 결과를 잠깐 공유했고, 나머지 시간은 주로 그즈음 한참 이슈가 되고 있던 금융실명제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금융실명제가 시행될 경우 고액 현금 구매 고객이 급감하고, 기업의 비자금 사용이 어려워져 백화점 상품권이나 고가 선물 구매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여 악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다만, 이는 단기적인 영향이고 중장기적으로는 투명한 자금 흐름이 정착되어 정상 소비가 회복될 것이고 오히려 매출이 'V'자로 반등할 것이므로 고급화 전략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정민이 새벽에 집을 나올 때만 해도 아내의 진통 주기에 특별한 이상이 없었지만, 그날따라 왠지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누구는 애 안 낳아봤어?' 하면서 일축하는 분위기여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해장국을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어쨌든 그 자리가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내는 결국 시뮬레이션대로 하지 않았다. 아직 가진통 단계였지만 통증이 심해지자 덜컥 겁부터 먹었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장모는 딸의 첫 출산을 목전에 두고 딸보다 더 겁을 먹었다. 곧바로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였으나, 우려한 대로 온종일 누워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저녁 무렵 아내는 자연 분만을 했다.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로 간호사가 포대기에 싸인 갓난아기를 보여 주었다. 아들과 첫 대면이었다. 아기는 울지도 않고, 까만 눈망울을 또랑또랑 굴리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아빠, 엄마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정민은 서무 여직원에게 팀 사무실과 자신이 담당하는 PC 판매 직원이 먹을 수 있도록 적당한 간식거리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일이 커졌다. 소식을 들은 식품 매장 담당이 현재 매장에서 가장 귀한 과일이라며 지난밤 산지에서 직송된 수박을 추천했다.
문제는 매장 직원들이 수박을 '어떻게 쪼개서 먹을 수 있을 것인가'였다. 그러자 식품부 백 룸(back room)의 여사님들이 나섰다. 8~10kg 수박 10통을 조각내어 종이 접시에 담고 랩을 씌운 다음, 이를 카트에 실어 매장으로 '배달'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매주 목요일 아침에는 오픈 전 30분 동안 서비스 개선을 위한 분임 토의를 진행했다. 5~10명으로 구성된 조별로 매장 통로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해당 주제에 관해 사례를 공유하고 대안을 논의했다. 간단한 취식이 허용되는 시간이었다.
매장에는 때아닌 수박 파티가 벌어졌다. 본격 출하 시즌 전이었고 12bx 이상 당도가 보장된 이른바 '백화점 수박' 값이 꽤 비싸던 시절이었다. 어쨌든 정민은 아들이 태어난 기념으로 기분 좋게 '한턱'을 내었고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았다.
아내의 짧은 출산 휴가가 끝나자 정민은 누나, 그러니까 아들의 고모에게 육아를 맡기기로 하고, 그 근처로 이사했다. 출근 시간에 데려다주고 퇴근하면서 데려오는 생활이었다. 추운 겨울날 아침, 잠이 덜 깬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설 때면 늘 미안한 마음이 컸다. 다행히 그 집에는 사촌 형이 셋이나 있어서 아들을 친동생처럼 보살펴 주었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유치원 홍보 모델이 될 정도로 선생님들의 주목을 받았다.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는데 특히, 중학교부터는 수학에 흥미가 많았다. 유명 어학원에도 보내봤지만, 영어보다는 수학을 좋아했다. 학교생활에서도 친구들과 어떤 트러블이나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
어떤 날은 고모가 교실 유리 청소 봉사 활동을 하고, 또 어떤 날은 통 큰 엄마가 같은 반 친구들에게 햄버거를 돌리기도 하고,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야간 자습과 대치동 학원을 왕복하는 입시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어느 날, 정민은 회의를 하던 중 전화를 받았다. 아들이 연○대학교에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할아버지의 재력은 없었지만, 아빠의 무관심(?) 그리고 엄마의 정보력과 뒷바라지 덕분이었다. 당연히 본인의 그만한 노력이 전제되었을 것이다. 처음 목표로 했던 포○○대보다 더 만족하는 것 같았다. 아들은 그렇게 명문대 공대생이 되었다.
아들이 입대한 곳은 의정부에 있는 ○○○보충대였다. 짧은 머리를 한 아들을 태우고 새벽에 집을 나섰다. 부대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이고, 연병장에서 진행되는 입영 절차를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행여라도 아들을 한 번 더 볼까 고개를 한껏 빼 열 지어 있는 장정들 사이를 두리번거렸으나 아들은 점점 시야에서 멀어졌다. 돌아오는 길, 집에 도착할 때까지 긴 시간 동안 아내와 정민은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못하였다.
총검술을 선보이던 훈련병 수료식, 정성껏 음식을 장만해 부대로 면회를 가던 길, 부대 개방 행사에서 구경한 K9 자주포, 휴가 때 가족 여행, 강화도 펜션에서 열린 온 가족의 위문 잔치. 그렇게 아들의 국방부 시계는 멈추지 않고 돌아갔고, 마침내 소망대로 건강하게 전역했다.
졸업이 임박하면서 학과 친구들이 하나둘 취업에 성공해 나갈 때마다 아들은 티를 내지 않았지만 내심 초조했을 것이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느리게 더 느리게'라는 책을 보면서 아들의 부담감이 얼마나 클지 짐작할 수 있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하지만 아들은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A그룹 계열사인 IT 분야 회사에 합격했다. 충분히 축하받을 만한 성공적인 취업이었다. 아들은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을 시작했다. 그런데 입사 후 1년이 되어 가던 즈음, 아들은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회사의 가치나 비전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조직의 무기력한 모습이 싫었다고 한다. 정민과 아내는 언제나처럼 아들을 믿었다. 어디 가나 똑같다고, 힘들게 들어간 회사인데 좀 더 견디어 보라는 '한없이 가벼울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아들은 학교 연구실에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면서 자신의 길을 무소의 뿔처럼 걸어갔다. 그게 좋았다. 도전하고 노력하는 모습, 어려워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태도. 대학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낮에 아들이 전화하는 일은 드물다. 전화기 너머로 아들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아빠, 저 ○○○에 합격했어요."
"응? 어디? ○○○?"
"네. 거기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글로벌 기업이다. 언제나처럼 아들은 이번에도 해냈다.
아들의 결혼식은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었다. 하얀 종이처럼 깨끗하고 새털처럼 가벼웠다. 그러면서도 바람직한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혹시 아들 결혼식에는 회사에서 만든 로봇이 안내를 맡는 거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대신 예식장 안은 신랑 신부의 친구들인 젊은 엘리트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들이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정민에게 간단한 덕담을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 대세로 자리 잡다 보니 이런 기회가 다 온다. 화두를 뭐로 잡을 것인지 고민하다가 정석주 님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고단했을 아들을 위로하고, 인생은 뭐니 뭐니 해도 즐겁게 살아야 하며, 그 기반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일이 많았고, 특강도 여러 차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정민에게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들 결혼식이라는 특수한 상황 탓인지 살짝 긴장되었다.
바로 앞에 아들 부부가 서 있고, 수많은 하객이 어둠 속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다니. 게다가 머리 위 조명이 바로 눈을 비추고 있어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준비한 원고가 잘 보이지 않았다. 좀 더 멋지게 잘했어야 하는데 못내 아쉬웠다.
"안녕하십니까? 신랑 아빠입니다. 지금이 덕담 시간인 거 알고는 있는데, 그전에 감사한 마음이 너무 커서 아무래도 인사 말씀부터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아들에게 ‘요즘 어떠니?’ 하고 물으면,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좋은 분들과 함께여서 재미있어요. 아들 회사의 좋은 분들! 좋은 분들이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며느리 회사는 대표님 마인드와 직원들 팀워크가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와 주시고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랑 신부의 친구들과 여러 지인, 일가친척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 항상 신랑 신부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 베풀어 주셔서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우리 예쁜 며느리를 그동안 잘 키워주시고 보살펴 주신 사돈 내외분, 그리고 아들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분이죠. 그동안 아들을 위해 헌신해 오신 신랑 엄마,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들아! 너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포대기에 싸여 아빠 엄마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쩌면 그리도 초롱초롱하든지. 그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세월이 많이도 흘렀구나. 마치 중간을 훌쩍 건너뛰어 이 자리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어느 시인의 말처럼, 대추 한 알이 붉어지고 둥글어지기까지 어디 저절로 된 것이 하나라도 있었겠니? 그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서리 내리는 몇 밤, 땡볕 두어 달이 있었을 거다.
그 고단했을 과정을 넘어서 이렇게 너의 반쪽과 함께 행복한 모습을 보니 대견하기 이를 데가 없구나. 잘해왔다고, 애 많이 썼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덕분에 아빠 엄마 마음은 매일매일 꽃밭이란다.
언제나 반짝반짝하고 명랑 쾌활한 우리 며느리, 환영한다. 앞으로 서로에게 좋은 가족이 되도록 노력하자. 너희의 결혼을 다시 한번 축하하고, 너희의 앞날에 항상 길이 열려 있기를, 그 길이 언제나 보이기를 기원한다.
프로이트라는 심리학자가 이렇게 말했단다. Work and love, love and work. That's all there is. 아들아, 그리고 며늘아! 일하고 사랑하라, 사랑하고 일하라. 그것이 삶의 전부이다."
지난 연휴 기간, 모처럼 시간이 난 아들과 스크린 골프장에 가서 라운딩했다. 처음으로 아들은 보기 플레이를 기록했다. 아들의 골프 실력이 어느새 실력이 부쩍 늘어 있었다. 그렇게 뭐든 정민을 뛰어넘는 아들이 사랑스럽다. 요즘 아들은 골프 외에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박사 과정에 진학한 것이다. 아들은 정민처럼 '평생직장'의 헛된 꿈을 꾸지 않는다. 직장 생활과 병행해야 하기에 시간을 또 쪼개야 하는 어려움에도, 자신의 역량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미래를 대비하고자 한다. 그런 자세가 대견하다. 머지않아 아들의 공학 박사 학위 수여식에 참석할 생각에 정민은 벌써 마음이 설렌다.
북한산 산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쪽빛 하늘과 한결 부드러워진 공기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때 저만큼 앞쪽에 아주 앳되어 보이는 커플이 갈림길에서 뭔가를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정민이 지나가려 하자 길을 물으려는 듯 한 친구가 다가왔다.
다짜고짜 제 필요한 것만 물을 거라 예상했지만 아니다. 아주 상냥하고 예의 바른 말투이다. 그날 날씨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질문 내용이 예상과 다르다. '족두리봉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나요?'가 아니라 '이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힘들지 않나요?'였다.
아마 앞의 질문이었다면 '예, 아니요'라고 방향만 가르쳐 주고 말았을 것이다. 묻는 말 이외에 대답하지 않는 것이 '꼰대' 취급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왠지 조금 길게 대답해 줘도 무방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쪽이 아니라 이쪽으로 가야 하고요.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산은 없어요. 하지만 이렇게 젊은 분들이라면 문제없을 듯해요. 도중에 바윗길이 좀 있는데 미끄러지는 것만 조심하면 돼요. 걷다 보면 금방 정상이 나올 거예요.'
정민의 아들은 그렇게 산에 오르듯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무엇보다 가정의 화목과 평화 그리고 본인의 행복이라는 기조를 잃지 않기 바란다. 좋아하는 제 일을 평생 즐기면서, 늘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정민의 아내는 가끔 엄마 모임에 다녀오고 나면 누구 아들은 콩이야 팥이야 엄마랑 다 얘기한다더라, 누구 아들은 매일매일 전화한다더라며 구시렁댄다. 서른이 넘었어도 여전히 아들과 가까이 있고 싶은 엄마의 애정 표현이다.
그러나 그런 것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아무리 부모 자식 사이이지만 적당한 간격 유지는 서로에게 필요하다. 게다가 속 깊은 아들은 결국 항상 그 이상을 한다. 늘 고마운 마음이다. 지금 정민이 누리는 평화는 아내와 그리고 아들 덕분이다.
무슨 기념일 같은 날 아들에게 선물을 받을 때면 정민은 이렇게 말한다. '아들! 아빠한테 평생 선물 안 해줘도 괜찮아. 왜냐하면, 이미 네가 선물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