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처녀 제 오시네

지나간 봄은 더욱 그리워진다

by 화문화답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


봄이 오면 누구나 한 번쯤 흥얼거리는 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의 국민 가곡이다. 정민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매서운 꽃샘추위가 가고 온 세상에 봄기운이 충만하던 어느 날이었다. 송정국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정민이 교수연구실에 있을 때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선배이다. 그분은 유력 시중은행의 간부로 재직하고 있었다.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며, 같이 근무하는 직원인데 '꽤 괜찮은 친구'라고 했다.


여의도에 있는 어느 카페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다. 그때 아내는 그렇게 나타났다. 새 풀 옷 입고, 진주 이슬 신고, 꽃다발 가슴에 안고. 빼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빠지는 곳도 없었다. 무엇보다 커리어 우먼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정민은 학부 시절 재미 삼아 나가본 미팅 몇 번이 전부였고, 교수 연구실에 들어간 이후에는 언감생심 데이트나 연애 감정은 사치에 불과했다. 취업한 이후에도 그런 양상은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 어린(?) 나이였으므로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렇게 뭐든 어설프기만 할 때였으나 반대로 당시의 사회적 인식은 남녀 불문 서른 살을 넘기면 집 안의 걱정거리로 전락하였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문제아' 취급을 받았다. 20대 후반에 접어든 정민과 아내는 그때 기준에 맞는 결혼 적령기였으므로 당연히 결혼을 전제로 만났다.


둘은 '가열찬' 직장 생활의 한 복판에 있으면서도 짬짬이 틈을 내어 데이트했다. 그리고 얼마 후, 첫째 딸이기 때문에 약혼식을 꼭 해야 한다는 장인의 의사에 따라 약혼식을 했고, 다시 반년이 지나 결혼에 골인했다.





꽤 지명도 높은 대형 예식장이었다. 지방에서 전세 버스를 타고 올라온 양가의 친척들과 두 사람의 친구, 직장 동료, 선후배 등 많은 하객으로 붐볐다. 주례는 정민의 지도 교수였던 김성철 교수였다. 우려했던 대로 교수님의 아주 긴 주례사가 '인상적'이었다.


본식에, 폐백에, 피로연에, 신랑 발바닥을 때리는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까지 그야말로 할 거 다 하고 당일 신혼여행을 떠나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당시에는 해외로 신혼여행을 가는 경우가 드물었다.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 안은 신혼부부로 채워졌고 호텔이며 관광지마다 비슷한 옷차림, 비슷한 또래의 신혼부부가 넘쳐났다.


잦은 야근과 휴일 근무 등쌀에 시간을 쪼개가며 준비한 것치고는 무난히 결혼식을 마쳤다. 식사 메뉴를 스테이크로 했다고 어른들한테 한소리 들은 것을 빼고는. 그때는 스테이크 먹기가 어려운 시기여서 나름 세련된(?)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정민 부부의 생각이 좀 앞섰던 것일까.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민은 모아 둔 결혼 자금이 없었다. 그렇다고 본가에 손을 벌릴 상황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장롱이 겨우 들어가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해야 했다. 신부는 그런 가난한 신랑에게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슬쩍 돈을 보태주기까지 하였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그 단칸방에 들어서자, 그제야 결혼에 대한 실감이 났다. 벽지에 곰팡이가 자꾸 생겨서 쉬는 날이면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곰팡이와 전쟁을 벌여야 했다. 욕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화장실이 떨어져 있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학자금 대출 같은 빚이 없었고 둘 다 대기업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였으므로 경제적 여건은 속도감 있게 좋아졌다. 곧바로 욕실 하나와 방 두 칸짜리 이 층 전셋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비로소 신혼부부가 살기 위한 기본 여건이 갖추어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동네가 대중교통이 혼잡하기로 악명이 높은 지역이었다. 출퇴근할 때마다 지하철 2호선 '마의 구간'을 통과해야 하는 정민은 매일 같이 곤욕을 치렀다. 노란 완장을 찬 '푸시맨(push man)'이 승객을 객차 안으로 욱여넣어야 할 만큼 사람이 미어터졌다.


키가 작은 편인 정민이 덩치 큰 남자들 틈에 끼이는 날은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여름이면 다른 사람의 땀이 팔에 뚝뚝 떨어지기도 했다. 하루는 고의인지 습관인지 앞에 선 여자가 흔들어 대는 머리채로 사정없이 얼굴을 얻어맞았다. 그날, 정민은 덜컥 자동차를 계약했다.


생애 첫차로 구입한 현대 엑셀로 말할 것 같으면, 창문은 손잡이를 돌려 수동으로 여는 방식이었고, 파워 핸들이 아니어서 주차할 때는 핸들을 부여잡고 엉덩이가 들릴 정도로 힘을 주어야 했다. 워낙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젊은 사람이 힘은 뒀다가 뭐 해'하는 자만으로 이런 옵션을 택하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아내는 주차장도 없는데 차부터 샀다고 잔소리를 했지만, 정민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고 더는 왈가왈부 하지 않았다. 아내는 매사에 그랬다. 뭐든 정민의 결정을 존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했으며 관여하고 간섭하기보다는 자기 일을 묵묵히 했다. 아내의 걱정대로 이후 출퇴근 전쟁 못지않은 주차 전쟁을 벌여야 했다.


정민의 마이카 라이프가 몇 번 다른 차로 업그레이드 되는 동안 아내는 고3 아들의 학교와 학원 딜리버리를 위해 경차를 구입했다. 아들 뒷바라지에 시간이 부족한 정민을 대신하기 위해 내린 '용감한' 결정이었다. 사실 아내는 운전하고 친하지 않았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자 그 차를 팔고 운전대를 놓았다.




아들이 태어났으나 맞벌이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부득이 정민의 누나가 사는 동네로 이사했다. 아침에 맡기고 저녁에 데려오기 위해서는 '누나의 집 근처'가 필수 조건이었으므로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다.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그 동네는 눈이라도 내리면 벽을 붙잡고 길을 내려와야 했으나 그만큼 전망과 공기가 좋고 차 소리가 들리지 않아 조용했다. 반면, 인적이 드문 지역이어서 화장실 창문으로 침투한 좀도둑에게 대낮 빈집털이를 당한 일도 있었다.


누나의 외교관급 영향력(?) 덕분에 여러 동네 어른들과 알고 지냈는데 사람들은 젊은 정민 부부와 마주치면 언제나 반가워했고, 동네의 몇 안 되는 꼬마인 정민의 아들을 무척 예뻐해 주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어느 정도 고모의 손길에서 독립할 수 있게 되자 언덕을 내려와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아파트로 옮겼고, 그다음 해 그 집을 인수했다. 그리고 아들이 성장하면서 좀 더 넓은 평수로 한 번 더 이사했다.


아쉬운 점은 목동으로 가자는 아내의 말에 정민이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재테크보다는 미련하게도 회사에만 충실했던 정민의 편협한 마인드 때문이었다. 만약 그때 아내의 의견을 적극 수용했더라면 어땠을까. 정민이 회사보다 부동산 투자에 더 관심을 두고 움직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최근에도 그런 시퀀스가 반복되었다는 사실이다. 수익률 마이너스 54%를 기록하고 있는 대한항공 주식을 10년째 붙들고 벌벌 떨고 있는 정민을 보며, 하루는 아내가 그냥 팔고 삼성전자 주식을 사라고 지나가듯 말했다.


'10만 전자'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던 타이밍이었다. 정민은 또다시 아내의 '주옥같은 말씀'을 무심코 듣고 흘렸다. 그 결과 대한항공 주식은 변함없이 바닥을 기고 있고, 삼성전자 주식은 여러 사람의 입꼬리를 한껏 올려 주었다.


그런 거 보면 사람 참 변하지 않는다.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 계획한 대로 되어야 하는 강박, 돈에 담대하지 못한 소심함 같은 본인의 성격 탓일 것이다. 어쨌든 정민은 가끔 자신은 '개미 팔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딱 죽으라 일한 만큼 월급 받는 그런 삶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민의 아내 역시 투자나 재테크에 그리 적극적인 성향은 아니다. 여윳돈이 넉넉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오직 직장생활에만 집중하려는 '본성'은 정민이나 정민의 아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어쨌든 지금 정민 부부가 사는 집은 강남도, 목동도, 초고가의 아파트도 아니다. 하지만 택시 기사분들이 '리조트에 들어온 것 같다'라고 할 정도로 조용하고 환경이 나쁘지 않다. 이 정도면 만족한다. 더 욕심부려서 뭐 하겠나. 바라건대, 정민 부부는 이곳에서 남은 삶을 마감할 것이다.




정민의 '라떼'에는 업무상 많은 기업체와 연관이 있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아내가 다니는 은행 지점의 예금이나 여신 유치 실적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기업들은 어차피 은행과 여수신 거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막상 아내가 원하지도 않았겠지만, 정확히는 정민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민의 무관심에도 아내는 언제나 직장 생활에 충실했다. 그 시절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노동 현장이 그랬듯이 아내의 회사도 만만치 않았다. 거의 매일 밤 10시는 넘어야 퇴근했고, 상위 직급으로 올라가면서부터는 영업이나 실적에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아내는 아들에게 헌신적이었다. 아들을 케어하고 뒷바라지하는 일을 도맡아 하다시피 했다. 정민은 본인만 바쁘고, 본인만 힘들다고 티를 냈다. 어리석게도 아내와 아들보다 항상 회사 일이 우선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내가 '시집살이' 비슷한 것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댁은 먼 지방에 있었고 시부모는 언제나 며느리를 불면 날아갈 듯 귀하게 대하였다. 며느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았고, 작은 것에도 크게 고마워했다. 형과 누나들 역시 정민의 아내라면 뭐든 예외로 인정해 주었다.


물론 그만큼 잘했으니까 그만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어쨌든 아내는 시댁에 관한 한 특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비록 정민이 나서서 잘한 것은 아니지만 유일하게 아내에게 조금은 덜 미안한 부분이다.




요즘 정민의 아내는 친정 일로 바쁘다. 여전히 본인을 희생해 가며 노모와 아픈 오빠를 보살피는 데 소홀함이 없다. 아버지를 허망하게 잃은 것이 많이 후회스러운 듯 어머니에게는 지극정성을 다한다. 어떤 때는 과하다 싶을 정도이다. 솔직히 정민에게는 아내가 우선이기 때문에 친정 일에 무리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


친정어머니가 살던 집 임차인들의 '민원'과 그 어려운 인테리어 업체를 상대해 가며 낡은 집 유지 보수도 도맡아서 한다. 점심시간 쪼개기는 물론, 퇴근하고 또는 주말의 많은 부분을 친정 일에 할애한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그 시간은 무엇보다 휴식이 절실하다.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그 속은 또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그러나 한 번도 이러쿵저러쿵 불평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언니의 중심 잡힌 태도와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동생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쳐 처제들과 훌륭한 팀플레이를 하고 있다. 셋 다 공무원인 정민의 처제들은 ○○동 어머니 집에 모여 '○○동 포차'를 열어가며 서로 고충을 나누기도 한다. 아마 이런 것들이 바탕이 되어 나중에도 이들 자매는 서로 의지하며 외롭지 않게 지낼 것이다.




이제 정민 아내는 정년퇴직이 코 앞이다. 퇴직 후 아내를 생각하면 정민은 걱정이 많다. 아주 민감한 시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때 가서 보자며 별 고민을 하지 않는 눈치이다. 하지만 정민의 생각은 다르다. 아무리 애정이 넘치는 다정한 부부라도 종일 붙어 있으면 트러블이 생기기 마련이다.


보통 남자가 퇴직하면 사회적 결핍과 공백을 내부에서 보상받으려고 한다. 심한 경우 가부장적 허세가 더욱 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안에서 역시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 급기야 충돌로 결말을 맺기에 십상이다.


게다가 바쁠 때는 하지 않던 잔소리를 서로에게 얹거나, 보이지 않던 단점들이 지나치게 드러난다면 사소한 일에도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잦아진다. 남성 호르몬이 많아진 여자는 더는 이런 것들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바로 '응징'한다.


그럼에도 남자들은 여성 호르몬 과다로 감정이 풍부해지면서 분리불안을 겪는 것처럼 아내를 졸졸 쫓아다니는 경향이 생긴다. 밖에 나가봐야 돈만 들고 마땅히 놀아 줄 사람이 없으니 아내에게 더 집착한다. 아내는 이런 남편의 행동에 질색하고 십 리 밖으로 달아나 버린다.


사회성이 뛰어나고 군집을 이루는 본능이 강한 여자는 나이가 들어서도 활발한 바깥 활동이 이어진다. 따라서 바쁘다. 바쁜 아내들은 곰국을 끓여 놓고 자신의 취향과 성향에 맞는 무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과감하게 집 밖으로 향한다.




정민이 이런 노년기 부부의 문제점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있다. 젊은 시절 애정을 꽃피우며 살지는 못했지만, 어떻게 하면 이제부터라도 아내를 편하게 쉬고 즐겁게 생활하도록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아내가 원하는 방식과 수단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담을 주거나 강요가 되기 때문이다.


아내가 퇴직하고 나면 가장 시급한 것은 운동이다. 정민의 아내는 운동을 싫어한다. 시간이 없고 피곤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핑계일 뿐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즐길 수 있는 골프를 같이하자고 권유하지만 시큰둥하다. 일단은 가벼운 둘레길 산책으로 시작해서 운동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 건강이 곧 돈이다. 몸이 아프면 다 소용이 없다. 더군다나 아내나 자식에게 그 힘든 간병을 하게 할 수는 없다. 정민이 열심히 운동하며 건강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는 까닭이다. 아내도 아직 운동을 실천하지는 못하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내를 자유부인(?)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 아내는 아들의 초등학교 엄마 모임부터 시작해서 친구, 전직, 현직 관련 모임이 다수 있다. 이런 모임이나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최소한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꽃이 피는 계절에는 꽃구경을, 가끔은 국내외 여행을 제안해야 한다. 이 정도도 하지 않으면 무심하다고 역공을 당할 수 있다.


같이 있는 시간을 줄여 잔소리나 공간 다툼을 하지 않도록 미리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정민은 비행시간이 짧고 물가가 높지 않은 나라나 뷰가 좋은 국내의 바닷가에서 혼자 한 달 살기를 추진할 생각이다. 일 년의 절반은 집 밖에 나가서 살겠다는 뜻이다. 물론 건강과 돈이 허락해야 하고 아내의 승인이 있어야 하겠지만.




아내는 성격이 온순하고 평화주의자이다. 마음 씀씀이가 너그럽고 늘 다른 사람보다 손해 보고 산다. 무엇보다 근면과 성실의 아이콘이다. 업무 중일 때는 정민의 전화를 받는 것에도 전전긍긍할 정도이다.


포용력이나 수용력이 강하다. 정민에게 무엇을 요구하거나 바라지 않고 몰아붙이거나 함부로 대하지도 않는다. 특히, 돈 문제로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정민은 그런 압박을 받지 않아서 항상 마음이 편하다.


반면 뒤치다꺼리에 손이 많이 간다. 집안 꾸미기 같은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애교가 철철 넘치는 스타일은 아니다. 고지식하고 고집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약간의 대수롭지 않은 몇몇 단점을 압도하는 보다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정민은 그런 아내와는 어느덧 35년째 같이 살고 있다. 고운 정도, 그보다 무섭다는 미운 정도 서로에게 가득하다. 아내 혼자 일하러 나가는 것이 미안해서 출근할 때 구운 계란과 핫팩을 챙겨주며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는 것이 전부이지만,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지나온 세월 그리고 지금 정민이 누리는 평화는 아내 덕분이다.


종일 보슬비가 내리고 있다. 우수도 경칩도 지났으니 곧 봄꽃들이 꽃망울을 맺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내가 좋아하는 꽃구경을 다녀와야겠다. 지나간 봄은 더욱 그리워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