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탄 불독
좁은 이차선 도로였다. 낮 시간이라서 사람도, 차도 드물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앞에 서서 좌우를 살폈다. 주행하는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길을 건너기 시작했고, 몇 걸음 만에 중앙선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고,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라디에이터 그릴에 커다란 벤츠 마크를 단 검은색 승용차가 내는 경적 소리였다.
나는 마저 길을 건넜고 검은 차는 내 뒤쪽을 지나갔다. 그때서야 알았다. 그러니까 나는 방금 무단 횡단을 했다. 황색 선과 흰색 선이 교차로 그려져 있는 턱 없는 과속방지 표시를 횡단보도로 오인한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이미 십여 미터 이상을 지나간 차가 끼익 소리를 내며 급정거를 했다. 운전석 창문이 내려오고 남자 얼굴이 쑥 올라왔다. 짧은 헤어 스타일과 벌겋게 일그러져 있는 얼굴이 불독 같았다. 다짜고짜 내게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길을 건너기 시작할 때 보이지 않았던 차가 불과 몇 걸음 만에 나타난 거라면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려온 것이다. 게다가 전방에 과속 방지 표시가 있었으니 속도를 더 줄였어야 한다. 그리고 어쨌든 나는 이미 그 차의 주행로가 아닌 반대편 차선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착각을 했건 안 했건 결과적으로 무단횡단을 한 내 잘못이다.
나는 불독에게 손을 들어 미안함을 표시하고 고개를 살짝 숙여 사과를 했다. 굳이 급정거까지 할 만한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고, 사과도 했기에 가던 길을 가려고 몸을 돌렸다.
"야, 기다려!"
불독이 차에서 내렸다. 여전히 분이 덜 풀렸는지 차 문을 거칠게 닫더니 식식거리며 길을 건너온다. 순간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아, 이런 상황은 뉴스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구나. 아니, 어쩌면 뉴스에 나오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다행히 불독은 트렁크에서 골프채나 일본도를 꺼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큰 몸집을 흔들며 다가오는 모습은 그 자체로 흉기였다. 나는 순간 핸드폰을 움켜쥐었다. 112를 눌러야 하나? 도망쳐야 하나? 저 놈이 주먹을 휘두르면 맞아야 하는 건가? 근처에 CCTV는 어디에 있지?
별의별 생각과는 달리 내 몸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웬만해서는 이런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준법형 성격인데 오늘은 대체 왜 그랬는지 자책했다.
'진짜' 무단횡단을 해가며 돌진해 온 그가 코 앞에 섰다. 나는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한참을 노려보던 성난 불독은 내 눈을 찌를듯한 삿대질과 함께 한마디를 남겼다. 그리고는 홀연히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당신 아들한테 부끄러운 줄 알아 이 양반아!"
당신 아들? 느닷없이 우리 아들은 왜 소환한 걸까. 가까이서 나를 보니 내가 본인의 아버지뻘 된다고 인식한 걸까? 그렇다면 반대로 자신이 내 아들뻘이라는 걸 알았다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말과 행동을 한다고?
불독의 차가 거친 엔진 소리를 남기고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이가 없었다. 길을 걷다가 머리 위에 비둘기 똥을 맞은 느낌이었다.
명문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은 글로벌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아들은 결코 저런 언행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고의가 아닌 단순한 실수였고, 위험한 상황을 초래한 것도 아니었으며, 그에 상응하는 사과를 정중하게 했으므로 '아들한테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불편해지는 것
과속 방지 표시를 횡단보도로 착각해서 불독에게 망신을 당한 이후 생각이 많아졌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뇌의 기능이 떨어져 필연적으로 인지 능력이 저하된다. 결과적으로 기억력, 판단력, 집중력 같은 것이 예전만 못해진다. 또한 체력이 약해져서 근력은 물론 지구력이나 반응 속도, 물리적인 대처 능력 같은 것들도 점점 약해지게 된다. 이런 일련의 현상을 노화라고 할 때, 나의 노화 정도는 얼마쯤일까?
얼마 전 종합건진을 받을 때였다. 모든 검사를 마치고 마지막 순서는 의사 면담이었다.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의사였다. 현재까지의 결과와 지난 검사 데이터를 잠시 살피던 그는 몇 가지 항목의 수치를 언급하면서 '뭐, 이 정도는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어요. 특별한 건 없네요.'라고 내 현재 상태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리고 이어서 '평소 불편한 건 없나요?'라고 질문했다.
불편한 것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는 전제를 해 놓고 다시 불편한 걸 묻는 걸 보니, '없습니다.'라는 대답을 기대하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나이가 들면서 불편한 것들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딱히 불편한 것은 없다. 다만, 불편한 상황임을 '강제로 인식당하는' 순간들이 있다.
치과나 안과에서 '이제 살살 아껴서 쓰셔야지 어쩌겠어요.'라는 의사의 충고를 들었을 때, '60세 이하' 나이 제한이 붙은 채용 공고를 보았을 때, 예전의 나처럼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국민연금 고갈 논쟁에 관한 뉴스를 들을 때, 더 이상 정기적인 입금이 없는 은행 계좌를 볼 때, 욕망들이 점점 헛헛해질 때.
이럴 때마다 나는 의연한 마음으로 스스로 입장 정리를 함으로써 감정의 위기를 극복한다. 쪼그라드는 노인으로 살 것이냐, 아니면 내적으로는 완성도가 높고 외적으로는 격이 있는 '어른'으로 포지셔닝할 것이냐.
당당한 어른으로 살자면 꼭 주의해야 할 5계명이 있다. 게으름, 몰염치, 독선, 이기심, 그리고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이 다섯 번째 문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을 다분히 염두에 둔 것이다.
나는 출퇴근 시간에는 외출을 삼간다. 친구들과 모임은 가급적 점심시간을 지나 한낮에 한다. 헬스장은 주말이나 아침, 저녁 시간을 피한다. 젊은이들의 영역을 기웃거리지 않는다. 운전할 때 무조건적 양보를 실천한다. 누군가를 만나면 최대한 입은 닫고 지갑은 연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잘 지키며 살고 있다고 자평한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과는 달리 내가 문제가 아닌 경우가 있다. 상대방이나 모르는 사람한테 아무런 이유 없이 감정 테러를 당하거나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처럼.
진짜 더러운 것은
볼 일이 있어서 시내버스를 탔다. 한 낮인데도 빈자리가 없었다. 버스 맨 뒤쪽으로 가서 손잡이를 잡고 섰다. 그렇게 몇 정거장이 지나고, 마침 한 사람이 일어났다. 그런데 빈자리에 막 앉으려는 순간, 옆 자리 여자가 바닥에 내려놓았던 커다란 쇼핑백을 턱 하니 올려놓는 게 아닌가.
20대 중반? 부스스한 파마머리에 얼굴은 창백하고 뭔가 불만이 가득 차 있다. 청자켓에 무릎 아래를 살짝 덮는 흰색 레이스가 달린 주름치마를 입고 있다. 잠시 망설였지만 요새는 조금만 서 있어도 허리가 아프다. 어쩔 수가 없다.
"좀 앉겠습니다."
소금에 절여진 무 쪽 같은 표정을 한 여자는 마치 그거면 충분하다는 듯 쇼핑백을 자신 쪽으로 살짝 당겼다. 내가 아무리 작은 체구이지만 당연히 좌석이 좁을 수밖에 없다. 잠시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던 여자가 불쑥 일어났다. 나는 지나가는 공간을 내 주기 위해 다리를 최대한 당겨주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여자는 내리는 문 앞까지 걸어가더니 소독제로 보이는 스프레이를 자신의 다리에 연신 뿌려댔다. 그리고는 나를 찢어지게 째려보더니 버스 문이 열리자 도망치듯 내리며 외쳤다.
"아이, &%! 더러워 죽겠네. 야, 똑바로 해!"
똑바로 하라고? 뭘? 길을 내 주기 위해 내 다리를 똑바로 당겨준 것 외에는 어떤 신체 접촉도 없었다. 자신의 다리에 정체 모를 스프레이를 뿌려대는 걸 보니 지나가면서 다리가 스쳤나? 하지만 나는 다행히도 긴 바지 차림이었다.
왜 저렇게 독이 바짝 올라 있는지, 뭐가 더럽다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하고 상관없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무례하고 거친 행동을 하며 함부로 막말을 내뱉는 여자 때문에 내 기분이 더러워졌다.
존경은 아니어도 존중을
'불독 청년과 스프레이 여성 vs. 나'를, '젊은 세대 vs. 기성세대'라는 대립각에 놓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만약 내가 무시무시한 문신을 한 젊은 남성이었다면 불독은 과연 같은 언행을 했을까? 또한 내가 여성들이 선호한다는 키 크고 잘생긴 젊은 남성이었더라도 스프레이는 나에게 똑같은 짓을 했을까? 이런 가정을 해보면 내가 '나이 많은 아저씨'라는 팩트가 이 두 가지 해프닝의 백그라운드였다는 것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시대의 조류와 사상은 끊임없이, 점점 빠른 속도로 변한다. 하물며 '세대 차이'라는 승수(乘數)를 감안한다면 체감되는 온도 차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서로 같아지거나 비슷해지라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서로에게 불편하거나 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우선이다. 최소한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모든 트러블의 원인은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로 귀결된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앞서 말한 5계명과 반대되는 사고와 언행을 하는 어른 답지 못한 이들이 많다. 애프터 유(after you)를 할 줄 아는 어른들이 더 늘어나야 한다. 젊은이들도 기성세대를 존경하지는 못하더라도 존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2052년에는 두 집 중 한 집이 노인 가구가 될 것이며 1인 가구가 40%로 늘어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