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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bow Mar 28. 2021

23/100 등장인물과 함께 하는 여담 - <죄와 벌>

니힐리즘-라스콜리니코프

23/100 등장인물과 함께 하는 여담 - <죄와 >2  라스콜리니코프



라스콜리니코프를 다시 만난 것은 27세 즈음이었다. 그때는 닥쳐온

취업이라는 현실과 그로 인해 들려오는 사회의 무시무시한 뒷담화와

계속된 서류 탈락, 그리고 또 붙는다 해도 일을 해낼 자신이 없던 마음에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다. 취업을 하는 것은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인데

취업을 하려면 더 돈이 많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듯

얼마씩 돈을 받아가며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독하게 ‘형설지공’할 만한 의지와 목표도 없었고 만약에 그렇게

꾸역꾸역 하더라도 그 목표가 굶지 않고 사는 것이고 주위 사람들에게

무시받지 않을 정도, 창피하지 않을 정도로 조건을 갖추고 사는 거라면

그다지 동력이 되지도 않았던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글을 쓰면서도 돈을 벌 수 있고 서류는 통과가 잘 되면서도

필기시험 합격률은 너무도 낮아서 핑계를 댈 수 있는 언론사 시험을

준비했었다. 그렇다고 잠이 많고 독하지도 않고 공부도 잘 되지 않아서

가서 일할 배짱도 없었다. 그때 언론사 공부 겸, 겸사겸사하여 읽었던

책이 <죄와 벌>이었다. 그때는 더더욱이나 독서력과 사회의 현실을

조금은 알았던 때라 더 집중하여 읽었다.


그리고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 읽기 어렵다는 것은 적어도 <죄와 벌>을

칭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서스펜스와 심리 묘사가 굉장했다. 게다가

나는 공감을 너무 많이 잘해서 문제인 데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입장과 비슷

하다고도 볼 수 있었으므로 그의 ‘니힐리즘’의 논리에 너무도 공감했다.


인터넷 댓글에서 본 이야기 중 정말 공감했던 댓글 중 하나는 ‘사람을 미치게

하려면 재능을 많이 주고 평범한 재산을 가진 한국에 태어나게 하면 된다’라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재능이 너무도 특출 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시골에서는

그래도 공부도 잘한다, 할 줄 아는 게 많다는 소리를 듣고 컸기에 서울로 대학을

왔을 때는 그 어느 하나 내가 솟을 구멍은 없어 보였다. 억지로 끌어 쓰는 동력은

이미 대학 합격하고 난 후 다 동이 난 상태였다. 의욕도 목표도 열정도 없었다.

그렇다고 음주가무에 능한 것도 아니어서 실컷 놀 수도 없었다. 술이라도 잘 마셨으면

다른 애들처럼 잠시 놀고 정신 딱 차리고 다시 밥그릇을 찾는다는 차가운 현실에

엔진을 가동하여 뭐라도 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다 핑계이다.


그 마저 도서관 800번 대 책이 있는 장소에서는 마음이 너무도 편안했고 소설을

읽는 것이 좋았고 그런 책을 읽는 나를 ‘참 한가하고 시간 많구나.’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냥 알았어야 했다. 일반적인 루트를 나는 밟을 수 없구나, 희미하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작은 열정이라도 붙잡아야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효율을 잘 내고

적은 시간을 투자하고 그런대로의 결과를 내야만 했다. 그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여하튼 가능해 보이는 것이 없었고 나도 모르게 면접에 가서 ‘아주 나중에는 글을 쓰거나

책을 쓰겠다, 그러니 난 계속 시집을 가도 일 해야만 한다.’고 먹히지 않을 소리를 하고

대차게 세상의 중심부에는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 부담감 없이 받을 수 있는 투자를 내가 받을 수 있다면 마음도 안정되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그나마 사회에 대해 이바지하는 쪽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아니

몽상은 했다. 부모 등에 빨대를 꽂을 수도 없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수도 없었다. 당장

한 달의 생활비, 월세 등을 생각하면서도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그 무엇은 내가 강력 체력이거나

머리가 매우 좋은 데다 면접에서 이런 나약하고 어두운 마음을 들키지 않을 두꺼운 면상, 이

모든 것이 필요했다.  


나보다도 더욱더 뛰어나고 더 혹독한 현실을 가진 라스콜리니코프는(드라마의 주인공은

항상 더 격한 상황에 처해야만 한다. 그래야 무슨 행동을 할 테니) 세상의 자본이 전당포

노파 같은 사회의 악이 될 뿐, 무용한 서랍 장에 노파의 욕심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돈다발이

자신에게 쓰인다면 법으로써 사회를 밝혀 공공의 선으로 쓰일 수 있다는 자기만의

철학에 함몰된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노파를 죽인다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스스로

계속 세뇌시켜야 했고 노파이므로 둔중한 머리에, 한 번의 가격만으로도 쉽게 잔인한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고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굉장한 코너에 몰려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정당하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악인이라도 같은 인간이 그를 단죄할 수 없다

는 인간의 오만함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90년대 초중반 까지만 해도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었다. 그래도 주변에 공부를 잘하는

어른이 있었고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는 이제는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럼 이제 초등학교 5, 6학년인 나는 어려운 형편의 시골 집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교대에 가서 선생님이 된다면 그야말로 집안의 경사나 자부심 정도가 될 수 있는 것인

그 정도의 어른들이 짜 놓은 내 미래 앞에 아주 어린 나이부터 신물이 났다.


그리고 그 누가 예술가를 한 번쯤 꿈꿔보지 않았겠냐만은 이런 잡을 데 없는 마음이

쏠렸던 피아노. 피아노. 나랑 별로 상관없는 고2 담임선생의 음악실에서의 연습에 대한 꼬장.

주변 어른들과 사람들, 친구들의 부정적이고 예언적이면서도 별 실효성 없는 말, 말, 말.

대학 가면 마음대로 하라는 부모님의 조건적인 명령. 그렇지만 에너지를 다 모두 써버렸고

다시는 그런 열정을 느낄 수 없었다.


빙구 같은 대학시절을 지나며 2학년이 되고 1년 후배가 들어왔고 어찌어찌, 저지 저지

지금은 떠올리기도 싫은 말도 안 되는 밴드를 하며 키보드를 치게 되는데, 17살 때부터 쳤던

쇼팽의 에튀드 첫 부분을 치니 나를 대하는 시선과 공기가 달라졌다. 그러다 건반 연습을

 열심히 하지만 하는 말과 행동과 건반의 터치에서 그 어느 하나 예술적인 느낌을 느낄 수 없었

던, 특히 건반의 터치가 매우 클리셰적이고 억지로 들렸다. 꾸밈음만이 가득한 메인 테마가

없는, 멜로디가 생략된 화려함? 손가락은 많이 움직이고 들리는 음은 많지만 하나도 뭔지

알 수 없는 음악. 그래도 내가 함부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지만 갑자기 한국 대학 생활은

그냥 인 서울에서 경험해봤으니 하고 싶은 거 하러 유학 가겠다는 그의 소식에 나는 너무도

놀랐다. 서울에서의 1년의 대학생활이 그저 하나의 좋은 경험인 셈이라니. 나와는 굉장히

다른 세계이며 온갖 브랜드로 치장하며 나도 모르고 살 수밖에 없었던 내 옷이나 가방의

짝퉁 브랜드에(그냥 검은 가방을 샀는데, 사실은 프라다 짝퉁이었던…) 위아래로 훑어보는

시선을 가진 그가 음악으로 유학을 간다니. 그것도 피아니스트가 된다는 꿈을 꾸면서. 알고 보니

그가 과시하는 브랜드이며 물건이며, 모든 것이 그의 집안이 사채를 해서 벼락부자가 된

이유라니.


과도하게 결벽증적으로 높은 도덕성을 강요하는 분위기의 집안에서 큰 나는…….. 세상에

마상에 사채를 해서 돈을 벌어서 저렇게 자랑을 하며 살고 남을 깎아내리는 것이 자신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위해서 이며 그런 돈으로 내가 그리도 원했던 피아노를 전공하러 독일에

간다니. 내가 가진 자본에 대한 과도한 결벽증 적인 마인드도 그리 잘나고 고매 하며 옳은

것도 아닌 데다, 돈이 있다면 모두 그처럼 행동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지금에 와서는 하나로만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지만 그냥 그도 나도 어린 시절이니 넘어가자 싶어도

1년 후 독일에서 날아온 그의 피아노 연주회 팸플릿에 그냥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주변에서는

 돈으로 바른 것이라고 했지만 돈으로 바르 , 똥으로 바르  음악을 배울  있다니 

라스콜리니코프의 니힐리즘적 광기와 살기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간장종지만 한 마음에

시기와 질투를 담다가도 흘러넘쳐 자기혐오와 자기 우울로 빠져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멍청이였으니…….. 라스콜리니코프의 니힐리즘에 그렇게 심취하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계산하지 못한 전당포 노파의 먼 친척인 이웃 여자가 목격자라는 이유만으로 처참하게

살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바늘구멍만큼의 틈도 없이 자신의 니힐리즘을

완성시켰지만 철저하게 계산한 작가는 그 주인공이 ‘우발적인 살인’을 저질러 죄책감이라는

형벌에서 방황하고 갈등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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