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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bow Apr 07. 2021

2/100 등장인물과 함께 하는 여담- 오필리어 1

미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_   by ‘아마도’ 오필리어





-미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_   by ‘아마도’ 오필리어



오필리어는 왜 진짜로 미쳤는가

연인인 햄릿은 미친척했는데……

게다가 왜 얕은 물가에서 계속 누워있다가 죽은걸까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라고 말했던 연인은 오필리어의 아버지를

죽였다. 그것은 고의가 아니었지만 숨어서 말을 엿들은 자를 처단하겠다고

했는데 사랑하는 연인의 아버지이자 소중한 친구의 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그 것을 알게 된 오필리어는 미치게 된다. 하지만 ‘광증’의 우려는 그 전부터

존재했었다. 바로 주인공인 햄릿이 아버지의 죽음을 알아내려고 ‘미친 척’연기를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오필리어의 가슴은 말라가고 자신이 알았던 사람이랑은

너무도 달라진 연인을 보면서 오필리어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바로 미치는 건 좀 말이 안되는데? 여기서 조금은 순진하고 순수하고

약간은 심약한 오필리어에게 더 큰 시련을 주고 또 햄릿에게는 더 큰 내적 갈등을

갖게 할 이유가 필요했다. 누구에게? 아마도 셰익스피어에게.


오필리어가 이미 가지고 있던 순종적이고 아직 순수하고 연약하고 아름다운

어린 혹은 젊은 여성의 전형성을 갖추고 있고 햄릿은 그녀 앞에서도 자신의

계획을 드러내지 않고 사랑하는 지 조차 알 수 없게끔 관객에게 의문을 가져다

준다. 아마 아직도 자길 사랑하는 지 오필리어도 의심은 했을 것이다.


사실 햄릿의 친구이자 오필리어의 오빠인 레어티스는 햄릿이 오필리어에게 품는

마음이 잠깐의 불장난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햄릿은 왕자이지 않는가. 그러니 그 당시라면 왕자가 연애라는 놀음을 오필리어와

하고 혼인하지 않는다고 해도 걱정일테고 왕가와 사돈을 맺는 일 또한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는 일이었을 거다. 그리고 희곡에서는 레어티스는 오필리어가 괜히 햄릿의

연애적 놀잇감이 되어 버려질 것이라고 생각했기때문에 오필리어에게 단단히

마음 단속을 해놓은 것으로 나온다.


광증을 연기하는 햄릿의 대사는 그 사이에 바늘같이 뾰족한 진실이 존재하기때문에

진짜 미치광이가 말하는 맥락없는 대사와는 다르다. 진짜 감정이기도 하고 진실을

말하기도 하다가 갑자기 오필리어의 아버지를 보고 생선장수냐고 묻기도 한다. 애초에

오필리어의 아버지 플로니어스가 햄릿의 광증에 대해 깊이 관여하게 된 것도

햄릿의 열렬하고 제 정신이 아닌것 같은 사랑고백을 받은 오필리어가 아버지께

그의 상태를 얘기했기때문이다. 그리고 플로니어스는 햄릿의 ‘미친 마음’이 오필리어에

대한 ‘사랑의 열병’이라고 진단한다.


그 후 햄릿은 오필리어와 사랑의 고백과는 정반대되는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햄릿이

오필리어의 아름다운 외모와 정숙함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힐란한다. 햄릿이 이렇게

오필리어에게 막말을 퍼붓는 것은 자신의 어머니가 선왕이 죽은 후 바로 햄릿의 삼촌과

짝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 라는 지독한 클리셰가 바로 햄릿이 자신의 어머니의 욕망과

쉽게 자신의 아버지를 저버린 데서 오는 대사에서 나온다. 햄릿의 어머니 거투루드라는

이름도 여성의 욕정을 강조하는 이름의 유래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은

바 있다.  어머니의 불결함을 목도한 햄릿은 오필리어 또한 아름답지만 정숙한가, 하는

의심을 나름대로 품었을 지 모른다. 아니면 여성에게 배신당할 것이라는 불안감이나

아니면 정숙함이 자신이 죽는다해도 계속 지켜질 지 알 수 없는 마음 때문인지

오필리어에게 수녀원에나 가버리라고 말한다. 이런 막말을 하는 연인이 있을까.

하지만 오필리어는 진정으로 왕자님이 미쳤다고 슬퍼하고 당혹스러워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런 꼴을 보아야 한다니, 참으로 슬프다고 자신의 신세 한탄을 한다.


요즘으로 따지면 둘다 제정신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줏대없이 자신의 마음이나 연애편지를

아버지에게 쪼르르 달려가 햄릿이 자신에게 한 말을 토씨하나 빠뜨리지 않고 말하는

오필리어나 아주 뜨겁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정숙함이라는 잣대를 들이밀며 수녀원에나

가버리라는 햄릿도. 이 희곡이 쓰여진 때를 생각하면 여성에게 정숙이나, 체면, 평판이

전부인 것도 감안할 수 있으나 오필리어는 정말로 미쳐버린다. 그녀의 아버지가 햄릿에게

죽임을 당한 후고 여러 가지 꽃을 따와서 사람들에게 꽃을 나눠준다.


그저 클리셰로 이 장면을 다시 보니, 여자가 머리에 꽃을 꽂으면 미친 여자라고 농담을

하는 것처럼 여자가 슬픔과 우울이라는 신경증에 더 취약해 보이기도 한다. 남자는 알코올

중독에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망가짐의 끝이었다면 여자에겐 미쳐서 머리에 꽃을 꽂게 되는

것과 같은. 실제로 적지 않은 여성 작가들이 우울증이나 조울병을 앓았고 또 남성 작가들은

그의 어머니나 누이, 혹은 가족 중에 누군가가 혹은 자기 자신이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오필리어는 정말로 미쳐버림으로써 그 어떤 여성 등장인물보다 차별성을 갖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예쁘고 순종적이기만 한 여성 등장인물이었다면 아마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남아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필리어는 미쳐도 아름다운 꽃을 한아름 가지고 와 자신의 오빠에게 준다.

만약에 오필리어가 햄릿처럼 미친척을 하는 거였다면 자신의 오빠에게 그 꽃을 주면서

바로 자기가 미쳤다는 것을 알게 하고 햄릿에 대한 복수를 하게 하는 강한 동기까지 주게 한

계산된 행동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계산은 셰익스피어가 한 셈이지만 만약 오필리어가

진짜로 미친 건 아니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해본다.)  


그 꽃 아름에는 로즈마리와 팬지가 있는데 이 꽃들은 연인에게 주는 선물을 의미한다고 한다.

같이 있던 꽃다발에는 아첨을 암시하는 회향초가 있고 메발톱꽃은 불효 혹은 기혼자의 부정을

의미한다. 회향초와 메발톱 꽃은 왕에게 주고 운향초는 왕비에게 줄 때는 회한과 자신의 슬픔을

암시한다고 한다.


오필리어는 이상한 말들을 하고 또 노래를 부르는데 젊은 남자들이 그 짓을 할 기회만 노리고

동침을 하면 혼인을 하겠다고 굳게 결심하다가도 같이 밤을 보내고 나면 남자들이 이렇게 말한다고 노래한다.


‘저 하늘의 태양을 두고 그렇게 맹세하건데 그럴 작정이었소.

만약 그대가 내 잠자리로 오지 않았다면.’


이런 가사가 있는 노래를 한다. 얄궂은 걸 넘어 혼인빙자간음에 해당하는 사기임에도 이런 식으로

오필리어가 당해서 명예가 실추될까 염려한 것은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였다.


가엾은 오필리어는 아버지의 죽음을 자신이 햄릿의 열정에 빠져 잠자리를 했다고 착각해서 이런 말을 한다고 분석하기도 하고 오필리어 자신이 왕비가 되었다고 착각했다고도 분석한다고 한다.


치밀하고 학문적이고 문학적인 접근이 아니더라도 연인인 햄릿이 자신의 어머니의

불륜에 피가 거꾸로 솟아 내뱉었던 말들과 또 아버지와 오빠에게,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금기시 되었던 정절의 압박만으로도 오필리어의 정신은 온갖 강박과 걱정으로 가득했을 지 모른다.


오필리어를 본 왕은 한 편으로는 파렴치한 선왕의 살해자이지만 오필리어가 미친 이유는 정확히 안다.


‘지독한 슬픔이란 독’ 때문이라고. 오필리어가 미쳐버린 것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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