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내 앞에서 울고 있다
지난 주, 라고 쓰려고 하다가 제목만 써놓고 이 글을 발행못한 지 또 일주일이 흘러 지지난 주가 되어 버렸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해야 할 일들과 많은 것들을 다 차치하고 하기에는 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나는) 나중에 써야지, 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많은 것들은 봄의 아지랑이처럼 그냥 휘발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내가 타인의 눈물에 대해서 쓰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러니까 지난 10월 마지막 주에 타인의 눈물을 두 번이나 목격했기때문이다. 눈물이 많은 것은 나였고 과제를 발표하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싸우거나 할 때 주로 우는 역할은 나였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타인의 눈물을 맞닥뜨리는 일은 뭔가 내 감정에 깊은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물론 예전에는 내가 남에게 영향을 끼쳤다.
'저 것이 과연 울일인가? 그거 가지고 왜 울어?' 쯤 되는 폭력적이기도 하지만 일상적인 말을 들었던 탓일 거다.
하지만 10월 마지막 주에는 내가 그 눈물의 목격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눈물의 맥락은 같이 감동적인 영화를 보거나(그렇다면 울지 않는 사람도 '울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상대방이 힘든 일에 대해서 하소연하거나 할 때의 맥락이 아니었다. 그리고 주로 타인이 울 때 쯤이 되면 나도 같이 울 수 있을 정도로 감정이입을 하는 자가 나와 같은 사람이기때문에 타인의 눈물이 이렇게 생경하게 느껴지기는 또 처음이었다.
타인의 눈물을 목격한 그 주 화요일은 수업시간이었다. 밤을 새서 과제를 하고 온 학생도 있었고 선생님께서도 정신이 없으시다면서 좀 헤롱한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우리가 읽고 있는 롤랑 바르트와 가까우면서도 본인의 간증과 가까운 글을 읽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A4용지 18장 정도 되는 긴 글이었다.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말'과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들, 그리고 나아가 현재에 이르는 긴 시간을 배경으로 '말'이라는 하나의 일관되면서도 관통하는 주제를 가지고 있는 글이었다. 선생님께서 읽으시면서 안그래도 가는 목소리가 조금씩 불안해지고 잠시 일시 정지가 있었다. 힘겨워보여서 대신 읽어 드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쉽게 끼어들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흐릿흐릿해지면서도 떨리는 목소리가 수분을 토해냈다. 그리고 죄송하다면서 대신 읽어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누가'
난 그 '누가 ' 되어 글을 더 읽어 내려갔다. 글을 눈으로 보면서 선생님의 음성으로 들었을 때는 희미하게나마 짐작이 되는 유년시절의 사소한 생채기(하지만 본인에게는 너무나 크고 오래갈 수밖에 없는)를 버스 창문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목소리가 되어 글을 읽어나가자 내 몸안에 선생님의 떨리는 목소리가 진동처럼 울리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울 수 없었다. 나는 '읽는 자'이기때문에 울면 안됐다. 대신 깊은 숨으로 그 가늘가늘 거리는 떨림과 울음들을 삼켜야 했다.
읽기는 끝났다. 선생님께서 본인 글임에도 본인 보다 더 리듬감을 살리고 극적으로 읽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과분했다. 그리고 기뻤고 직접 읽는 경험이라는 것이 듣는 것과는 다른 차원을 뛰어넘는 경험이라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그렇게 타인의 눈물은 내 피부 속으로 들어와 잔잔한 물결이 되었다.
그 다음 다음 날인가. 막역한 친구가 집으로 찾아왔다. 아직 아기 고양이가 두 마리 남아 있었다. 좀 안 좋은 일이 있어(나중에 쓰기로) 두 마리는 좀 클 때까지 내가 데리고 있기로 했다. 친구는 온 사방 엉망이 된 집을 보면서 난리도 아니다, 먼저 있던 고양이(라라)가 이제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었다며 마음이 아프다고 조금은 듣기 싫은 소리를 해댔다.
'이 털뭉치들 다 갖다 버려야 돼. 이 것들 다 키워서 내가 잡아 먹어야지. 빨리 정리할 생각해라.'
등등 예상한 말들이 이어졌다. 그는 배기 추리닝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아기 고양이들(삼바와 왈츠)와 함께 놀기 시작했다. 물론 놀면서도 '이 털뭉치들,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라며 하대하는 표현을 계속 써나갔다. 그러려니하고 나는 다른 방에서 쉬고 있었다.
얼마 후 친구는 나를 부르면서 배기 추리닝을 해먹 삼아 아깽이들이 잠들었다고 했다. 어기적 어기적 너무 예쁘다는 모습을 찍으러 핸드폰을 들고 걸어갔다. 그래서 한참 찍었다.(사실 나는 계속 봐온 모습이기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녀석이 폭풍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여태 내가 찔끔찔끔 흘리던 눈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맥락없이 오열을 하면서
'이 미혹한 생명이, 지들도 생명이라고........' 그러면서
아이처럼 엉엉 우는 것이다.
그 순간에 나는 그 마음에 감정이입할 수가 없었다. 다소 엽기적으로 나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너무도 웃겨서 동영상으로 촬영을 했다. 한참을 울더라. 나중엔 자기 자신도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눈물은 그 이후에도 문득 문득 생각나며 그 문맥을 이해하기 위해 갸우뚱 거려야 했다.
그것이 이 인간의 매력인지도 몰랐다. 매사에 부정적인 언행과 좋아하는 것보다 증오하는 것이 더 많고 깨끗한 것을 좋아해 어지르는 생명체들을 싫어하며 언젠간 고양이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는 이 인간의 모순적인 눈물.
타인의 눈물.이란... 참.......
같이 울지 않아도 내게 공백을 만들어주는 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