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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메르 Sep 30. 2024

열쇠를 가진 사람

행복을 찾아서...

얼마 전 제이의 웩슬러 심리 검사를 했다. 지능에 관한 검사는 그러려니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정서에 관한 것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제이는 엄마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가정의 분위기에 의해서 아이 정서가 많이 좌우되고 그 Key를 엄마가 갖고 있다고.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고백하건대 가정에서 뭔가 문제가 생기고 삐거덕거리면 나는 그 문제의 원인을 남편에게 돌리기 바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기대 심리’라는 있다. 어떤 일이나 대상이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는 심리이다. 기대심리가 어떤 일에 대해 발현될 때는 그 일을 성사하기 위한 긍정적인 동기로 작용할 수 있지만 그것이 사람에 대해 발현될 때는 그 대상과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에 대한 기대심리가 컸다. 특히 엄마에게 의존하는 편이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엄마가 다 해주기를 바랐다. 엄마는 꽤 허용적인 편이셔서 내가 원하는 것이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웬만한 부탁은 다 들어주셨다. 기대심리가 충족되는 상태로 꽤 오랜 시간을 살아온 것이다.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 내가 엄마한테 가졌던 기대심리 같은 것이 남편에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랬다. 나름 독립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부 관계에서 나는 많은 것을 남편에게 의존했고 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것이 실현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남편은 모든 면에서 기준이 엄격한 사람이었다. 본인의 기준에서 어긋나는 것은 내가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기대가 어긋날 때마다 나는 모든 책임을 남편에게 전가했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나의 미성숙한 기대심리가 남편과의 관계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편 탓을 하면 잠시는 기분이 풀렸지만, 관계는 악화되었다. 남 탓을 하면 좋지 않은 것이 남 탓을 하는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남 탓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 인생이 너무 괴롭고 힘들 때, 남 탓이라도 해야 속이 풀리지 않던가. 그런데 남 탓을 하게 되면 문제 해결의 열쇠를 남에게 넘겨버린다는 데 진짜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만든 원인을 타인에게 전가하므로 그 해결의 열쇠 또한 그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문제 해결에 있어서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면 상황이 힘들어지고 불만족스럽게 된다. 내가 이 문제 상황이 주가 아닌 객이 되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나름 고치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사실 잘 안 됐다. 그런데 이번 상담을 계기로 진짜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변해야 우리 아이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행복하게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지금 당장 변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얼마 전에 한 그림 가게를 갔는데 제이가 한 그림을 들고 와서 사달라고 했다. 저기 아빠가 안고 있는 아기가 제리 같다고.


따뜻한 가족. 한 번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아이들을 그냥 마음으로 원한다. 엄마랑 아빠랑 저녁을 먹고 거실에 앉아서 시답잖은 이야기에 까르르 웃고 싱거운 장난을 하고 오목 따위를 두면서 흘려보내는 시간. 가족의 온도가 올라가는 이 시간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원한다.


이러한 가정을 만들어주기 위해 부모라면 남편이든 아내든 key를 잡고 행복한 가정으로 가는 문고리를 돌려야 한다. 가정의 행복과 안정은 어느 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고, 그 시작점은 너가 아닌 내가 되어야 한다. 나 역시도 결코 쉽지 않지만 오늘도 한걸음씩 나아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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