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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Nov 10. 2022

무의식에서 꼬인 생각 찾기

셋, 책일기: 언니의 상담실

     친구들, 안녕한가요? 친구들의 책일기를 읽고 난 뒤 줄곧 관계에 관해서 생각하게 되었어요. 우리는 여러 사람과 관계하며 얼기설기 얽혀서 살아가잖아요. 그 거대한 거미줄 속에서 일상의 평화를 지켜내려면 얼마나 사려 깊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요. 그러다가 아는 작가님께 이 책을 선물 받았는데요, 생각 정리에 도움이 되어 소개합니다. 정신과 전문의 반유화 님이 쓰신 <<언니의 상담실>> 이예요. 


     여러 여성이 보내온 고민 편지에 작가님이 쓰신 답장이 여러 편 묶여있어요. 책을 받자 마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완독 해버렸죠. 다양한 사람들의 고민이 친숙하게 느껴졌어요. 언젠가 제가 했던 고민과 똑 닮아있었거든요. 작가님의 답변도 그래요. 오래전 제가 찾은 답과 비슷하게 느껴졌죠. 고백하자면 관계에 당시 저는 약간의 자긍심을 가지고 있던 거 같아요. 꽤 잘 견뎌내는 사람이라서, 누군가를 대할 때 충동적으로 말하거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잘 삼켜낸다고 자부했거든요. 


     그런데 책을 읽고 일기를 써내려 애쓰는 며칠 동안 이런저런 자잘한 사건이 생겨서, 자주 부딪히는 엄마와 신랑에게 섭섭함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어요.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참아내고 있었는데, 토요일쯤 되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 상태가 되어 그저 눈물만 뚝뚝 흐르더라고요. 임신기 호르몬 작용인가 보다, 하고 넘기려 했지만, 너무도 무기력해져서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작정하고 책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읽었어요. 그런데 이번 에는요, 고민편지 하나하나가 다 제 이야기처럼 아프게 다가왔고, 모든 답장이 제가 받는 따스한 손길처럼 느껴졌죠. 


 자기 자신의 감정을 잘 달래고 위로하는 일은 쉬워 보이면서도 사실은 꽤 어려운 일입니다. 이 작업은 자신이 힘든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충분히 알아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영원하지는 않은 것임을 스스로에게 말해주면서 파괴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서서히 진정시키는 과정으로 완성됩니다. - 85


     어릴 적부터 착한아이 증후군을 앓았어요.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그 강박을 벗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저를 다독이는 방식으로 해결해온 것 같아요. 왜냐면 저는 잘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고, 저는 그들을 사랑하니까요. 저는 그게 정서적으로 건강한 방법인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말이죠, ‘나는 잘 견뎌낼 수 있어’ 안에는 ‘나는 죽기 살기로 견뎌야만 하겠지. 언제나 그래 온 것처럼’이라는 원망 섞인 비아냥이 들어있었어요. 다소 자기 파괴적인 방법으로 그들에게 은근히 보복하려고 한 거죠.


     진짜 베베 꼬였죠? 그래서 베베 꼬인 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봐요. 너무... 위선적으로 느껴지잖아요. 저는 얼마나 많은 마음을 스스로에게 숨기면서 살아온 걸까요? 겉으로 평온한 척 웃음 짓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작은 마음을 무의식 속에 스스로 묻어버렸을까요? 피어나는 모든 마음을 인정하는 게 제게는 너무 어려워요.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는데요. 멋진 사람들의 생각 집을 읽어온 탓인지, 본능적으로 멋져 보이는 생각과 그렇지 않은 생각으로 분류해버리거든요.  


 꼬여 있는 자신을 견딜 수 없는 그 느낌에 대해서는, 그 ‘꼬임’은 원희씨 스스로를 보호하고 생존하기 위해 절박하게 붙들어야 했던 밧줄이었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최대한 따뜻한 어조로 말해주었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내 자아를 지키기 위해 과거에는 반드시 필요했던 방식일지 모르지만, 이제는 꼭 그 방식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야’라고 아주 천천히 자신을 설득해주기를 바랍니다. -159

     참고 견디는 건, 일상의 평화를 이어가기 위해서 제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어요. 왜냐면, 가장 위험부담이 작다고 생각했거든요. 혼자서 견디다가 참지 못하면 무너지고 땡이겠죠.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거절당한다면..... 그 상실감을 저는 견딜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어쩌면, 그들이 나를 아끼는 이유는 내가 그다지 손이 가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공감하고, 맞추는 능력은 사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엄청나게 귀한 역량이에요. 그 기술을 안으로 돌려 나라는 타인에게 발휘하기를 바랍니다. 
 물론 한동안 남을 우선순위로 놓는 방식을 고수하려는 관성은 계속될 겁니다. 그럴 대 도움 될만한 생각 중 하나는 ‘타인을 착취적인 사람으로 만들지 말자’입니다. 정연씨가 타인이 자신을 착취한다고 단정 짓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무리해서 스스로를 지우고 타인에게 맞춰주면 그 사람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남을 버겁게 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어요? -57


     그거 아시나요? 사람은 긍정적인 표현보다는 부정적인 표현을 더 기억한다고 해요. 그래서 어느 섭섭한 날 가만히 앉아서 돌이켜보면, 상처받은 순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모양이에요.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잖아요. 이렇게 그 사람들을 좋아하는 걸 보면, 굳이 기억의 방에 저장하지도 않은 행복한 추억이 무수히 많겠죠?


     가만히 앉아서 피어오르는 감정을 하나하나 모두 지켜봤어요.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감정들이 모두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어요. 어렵지 않았어요. 언제나 해왔던 일이니까요. 원래는 이 모든 감정이 가라앉은 뒤에 남은 잔재를 무의식 속에 꽁꽁 숨겨놓았거든요. 이번에는 시간을 들여 문장으로 다듬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했어요. 요즘 어떤 심정인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지 간략하게 정리해서요. 


 소망은 꺾을 필요가 없습니다. 바람직한 세상을 마음껏 소망하고, 마음속에서 생생하게 그려보는 일은 우리를 살아 있게 하고 설레게 합니다. - 219


     무의식에 묻어두면 응어리로 남았을 텐데, 모두 전달하고 나니 개운해졌습니다. 듣는 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척 무서웠지만, 생각보다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어요. 며칠간 모든 평화가 깨져서 힘들었지만, 다시 찾은 평화는 이전보다 훨씬 더 견고하게 느껴져요. 


     적고 보니 소소한 경험인데, 마치 어떤 거대한 무용담처럼 적은 것 같아 부끄럽군요. 하지만 제게는 정말 신비롭고 소중한 도약이었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나를 정말로 사랑했구나. 참고 인내해야 한다는 강박은 어린 시절의 치기와도 같은 것이었구나. 이런 깨달음을 얻었거든요. 뒤죽박죽 행복한 마음이 잘 정리가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갑작스러운 마무리군요. 하하. 아무튼 새롭게 얻은 평화는,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든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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