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아침 생각] 가난이 주는 행복

웅이가 여니에게

by 박 스테파노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오복음 5.3-


극도로 곤궁한 가난이 주는 뜻밖의 선작용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누군가를 크게 미워하거나 더 나아가 잘못되기를 저주할 틈이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 수년 동안 누구를 미워할 겨를이 없었고, 지난 미움의 판단도 내 탓으로 돌이켜 보는 생각을 주었습니다. 하루하루의 생존에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릅니다.


요 며칠, 읽지도 쓰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며 지냈습니다. 항암비용이며 검사비, 약제비에 더해 작은 방세에 에너지 비용, 그리고 하루 한 끼만 제대로 먹는 가난한 밥상 비용까지. 벌이가 난망하니 전화를 붙잡고 앵벌이 같은 하소연의 날들이었습니다.


아직 기십만 원의 부족함이 있음에도 사정 청취 후 거절하는 답변이 속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반응 없고 대답 없는 무관심이 더 두렵지요. 그래도 그들을 미워할 마음 구석은 없습니다. 성내고 화내는 사람 없는 것만으로 참 다행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산상설교의 깊은 뜻을 조금은 눈치챌 수 있었던 지난날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어진 시간과 자리는 뜻을 전하지만 힘들다는 푸념에 눈치조차 채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세상의 분노할 일을 외면하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지만, 각자의 몫이지요. 요즘에는 응원하는 야구팀의 어이없는 역전패보다 분노가 치미는 일은 없습니다. 가난하고 비루한 일상에 미움과 분노까지 더해지면 견딜 수 없으니까요.


나아진 내일에도 누군가 미워하지 않았던 오늘의 가난을 기억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곰탱이 남편의 어여쁜 아내와 나누는 아침 생각-

(사진: 2017년 명동성당, 아내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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